‘구슬이 서 말 이어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훌륭한 작가가 좋은 작업을 하더라도 자신과 작품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세일하지 않으면 잊혀지고 마는 시대다. 좋은 작품과 작가를 알게 되고 작품을 공유하게 되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작가군이 두터운 경주에서 그 이름들을 알리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지난달, 국가기관인 국립현대미술관 정부미술은행 기관제안형을 통한 작품선정에서, 공립미술관인 경주예술의전당 알천미술관에서 추천한 경주지역 작가 세 명(김서한, 박청용, 이상수(가나다 순))의 작품이 최종 매입되는 경사가 있었다. 침체돼있던 지역미술계에 좋은 선례로 남을 이번 일은 경주 지역 미술인들에게 고무적인 현상으로서 사기 진작에도 큰 역할을 했을뿐만 아니라 경주의 작가군에 대한 재발견이기도 했다. 권위있는 기관에서의 구입과 소장은 매우 환영할 일이었다. 이번 결실의 중심에는 (재)경주문화재단 예술지원팀 김아림 차장(경주예술의전당 알천미술관 학예연구사)의 경주 작가들에 대한 애정과 보이지 않는 노력이 숨어있었던 결과였다. 세 명의 작가와의 전화인터뷰를 통해 그간의 작업과 소감도 들어보았다. -“국립현대미술관 정부미술은행 소장은 ‘인증마크’ 찍혀 작가로서의 입지 인정받는 것” 김아림 차장은 “경주 작가들의 그림을 매입할 수 있는 예산이 없어 학예사로서 부채감과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난해부터는 일단 도전을 해보았죠. 경주작가릴레이전에 참여했던 작가와 경주미술협회서 추천받은 작가들을 추천했습니다. 전국의 국공립미술관에서 각각 응모했는데, 우리 지역에선 총 6명 작가를 추천해 3명의 작품이 매입이 결정돼 매우 기뻤습니다. 세 작가는 자신의 세계가 확고하고 열심히 작업하는 분들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정부미술은행에서의 매입은 작가 개인에 인증마크가 찍히는 것과 같다고 봅니다. 어느 정도 그림가격도 형성되고 작가로서의 입지를 인정받는 것이기 때문이죠. 또한 이 기관이 소장처가 된다는 것은 국공립미술관이나 사립미술관에서의 기획전시나 정부 공공시설 환경미화전 등에 대여가 가능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공공시설이나 미술관 전시에 노출될 수 있는 권한과 기회가 잦고 더불어 작품을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죠”라고 하면서 이번 선정의 의미를 짚어주었다. 지역의 숨어있는 작가들을 발굴해 중앙에 진출시키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는 측면에서 성과가 큰 것이다. -김서한 작가...“이런 공모들이 매년 여러 번 진행되므로 꾸준한 시도가 필요해 보입니다” 김서한 작가는 자신만의 독보적인 화업을 구축한 이다. 이번 출품작 ‘계획도시(2019, 130.3 x 97, 한지에 먹, 아크릴)’에서처럼 새로운 해석, 독보적인 기법이 두드러지는 김서한 작가의 작품에서의 색상은 사찰의 단청색상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단청에서 사용되는 색을 사용해 색상의 재배치로 재해석을 하고 전통적인 색상을 현대적 시공간으로 끌어내 표현한다. 이 작업을 위해 2년간(2006~2008) 국내외 자료 수집을 하고 유사한 작업이 있는지를 확인부터 했다고 한다. 확신을 가지고 시작한 작업은 신선하다는 평을 얻으며 그 빛을 발한다. “단청에서의 강렬한 원색의 색상들이 처음은 무겁고 거부감이 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각각의 원색이 서로 맞물려 어우러지는 것에 영감을 받았고 작품의 초기 작업에는 사찰의 풍경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도시와 일반 풍경 등을 주로 그리고 있는데 관람자들이 화려한 원색의 채색으로 인해 따듯하고 화사하게 작품을 감상하기도 하고 강한 원색의 채색에서 겉으로 보이기 싫은 숨어있는 나를 찾아내기도 하더군요. 색은 화려하지만 정돈되고 운동감이 없는 정적인 채색에서 화려한 색상 뒤 숨어있는 또 다른 나를 표현하려 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전통채색에 대한 주관적 해석을 통해 관습화된 화풍이나 의식으로부터 구애 받지 않고 정형화된 여백이나 선묘에 이끌리지 않게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경주에서의 작품 활동은 20여 년째입니다. 경주에는 작가가 많은 편인데 그 활동에 비해 아트페어(미술시장) 등에서 활동하는 이는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수년전부터는 경주 지역 작가도 미술시장에 출품하고 경주의 갤러리들도 다른 도시의 미술시장에서 활동을 시작하더군요. 저도 2012년 미술시장에 나가면서부터 그림이 정돈되고 많은 변화를 이뤘습니다. 경주 작가들도 서서히 전국적인 작가망으로 발돋움하려는 출발점에 있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고무적인 성과들도 보일 것이고요”   “저도 경주에서 그림만 그리다가 2012년부터 겨우 외부로 출품을 시작했으니 경주 작가들보다는 빠른 시작이었지만 타 도시 작가에 비해선 한참 늦은 출발이었어요. 작가들이 밖으로 홍보하고 소위 ‘잘나가는’ 작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그림시장도 분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런 공모들이 매년 여러 번 진행되므로 계속적인 시도와 공모에 응해 보려는 시도가 필요해 보입니다. 저도 매년 여러 번 공모를 하는데 탈락된 곳이 더 많아요(웃음)” 김 작가는 이 흐름의 선두에 있으며 결과도 좋아 지역의 작가들에게 자극제가 되고 있다. 김서한 작가는 개인전 9회, 부스개인전 및 국내외 아트 페어 27회, 단체전 100회를 가졌다. 작품 소장처로는 국립현대미술관 정부미술은행(‘계획도시’, 2020), 국립해양박물관(‘삶과의 대면_용궁사’, 2020),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시간의 기억’, 2018), 박찬욱 감독 단편영화 `청출어람` 산수화 참여 외 개인소장 다수. 현재 동국대학교 미술학과에 출강하고 있다. -박청용 작가...기호화된 사람들을 통해 생명의 몸짓과 간절함을 담아내 박청용 작가는 경주 출신으로 충북 보은에서 조용히 작업하고 있다. 작가 스스로 ‘바깥 활동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라고 하는 그는 경주에서의 인연이 고맙고 감사하다며 경주에서 작품으로 더욱 자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이번 출품작 ‘물들다(2018, 한지에 수묵담채, 121x93cm)’는 국민예술협회가 주관한 ‘제24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입상한 작품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을 단순화한 형태로 표현하고 있다. 먹으로 기도하는 이들을 각기 다르게 그리면서도 작가 스스로 수행하는 듯한 작품이다. 박 작가는 한지 등 전통 소재 위에 먹, 물감을 이용해 염원(念願)의 마음, 마음의 소리, 인간의 삶 속 다양한 유·무형의 모습들을 붓끝으로 그리고 마음으로 새기며 작업을 해오고 있다. 작품 속에 표현된 사람들은 표정과 입체감은 없지만 필선으로 기호화된 사람들을 통해 생명의 몸짓과 간절함을 담아낸다. “삶의 일상적인 모습과 내면의 감정을 비롯해 생활 속 크고 작은 기쁨과 내면의 성숙해 가는 모습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저만의 관념과 관조, 적막과 고립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에 직면한 인간의 모습을 대변하며 수많은 인간상을 통해 생명을 부여하고 희망을 전했으면 좋겠습니다. 작은 마음들이 모여 삶의 모습과 아름다운 풍경을 머금고 물들어 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전달되었으면 합니다” 우리는 작가의 작품에서 재밌는 사실을 찾을 수 있다. 그것은 기도하는 사람들을 통해 미술 표현에서 의 가장 기초가 되는 점, 선, 면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작가는 줄지어 기도하는 사람들을 한지에 가득 메움으로써 모양, 크기, 질감의 변화를 통해 다양함을 표현한다. 이렇게 작가의 작품에서 점, 선, 면의 요소들을 찾을 수 있으며 확장의 연장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박청용 작가는 경주고등학교 졸업, 서울시립대학교 수석 졸업, 2020경주작가릴레이전, 2019기도하는사람들-박청용 그림전, 2018보은동학제 특별초대전, 2015美갤러리초대전 등을 가진 바 있다. -이상수 작가...“미술시장에 내놓은 기분 좋은 출발이었습니다. 제 작업 되돌아보게 하는 좋은 계기” 이번 출품작 ‘나도 왕이다!(2000, 170 x 85 x 80, 35kg, 합성수지에 아크릴)’은 한국미술협회에서 주관한 ‘제19회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입상한 작품이다. 이상수 작가는 날카로운 풍자를 통해 혁명의 타락과 과장을 명쾌히 그려낸 조지오웰의 대표작 ‘동물농장’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을 제작했다. 인간(동물)들이 자신의 객관적 주체를 상실한 채 분에 맞지 않는 자리를 탐하고 있는 사회를 풍자하고 있으며 재료는 폴리에스터 수지를 사용했다. 폴리에스터 수지는 가볍고 표현과 보관의 측면에서 용이한 편이다. 그 위에 아크릴 물감으로 브론즈 효과를 내 권력자의 권위적 이미지와 위엄의 이미지를 표현해냈다. 이 작가는 “어떤 모순성을 한꺼번에 주는 것이죠. 해학적 내용을 바탕으로 숭고한 이미지, 사색적이고 관조적인 철학적 깊이를 함께 주려고 했어요”라고 설명했다. ‘지금껏 이런 유형의 출품을 해본 적이 없다’고 첫 운을 떼는 이상수 작가는 먼저 추천을 해 준 김아림 학예사에게 고마움부터 전했다. 이 작가는 예술은 시대를 반영하여야 한다며 정치나 사회현상에 관심이 많은 작가로 사회참여와 함께 예술성이 동반되는 작업을 추구해 온 작가다. “기분 좋은 일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된다는 것 자체가 작가들에게는 매우 영광스런 일입니다. 미술시장에 내놓은 기분 좋은 출발이었습니다. 저의 이번 응모작은 20년 전 작품입니다. 조금씩 제 작업이 변화했으나 바뀌지 않은 하나는 사회참여적인 메시지를 추구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사회를 반영하는 것을 주요 모티브로 삼아왔던 거죠. 그러나 제 작품을 홍보하거나 SNS 활동을 통해 알리는 것에 매우 부족했습니다. 늘 자신감을 가지고 작업에 임해왔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작업에 더욱 확신을 가지게 됐다고 할까요? 그리고 예전 작업을 돌아보고 다시 작업해서 발표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습니다. 이전의 작업을 홍보하지 않고 늘 새로운 작업만 하다 보니 결국은 무명작가가 되더라구요. 모두 전략의 미비였고 부재였지요. 사람들이 제 작품을 알게 된 이번 계기를 바탕으로 예전 작업도 재조명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시 한 번 제 작업을 되돌아보게 하는 좋은 계기였습니다” 한편, 이 작가는 “판매를 염두에 둔 작업도 중요하지만 반드시 알려지고 유명해져야만 훌륭한 화가는 아닙니다. 유명하지 않아도 주목해야 할 작가가 많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라고 전했다. 이상수 작가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와 동 미술대학원을 수료했다. 개인전 4회, 북경아트살롱, 화랑미술제, 부산국제아트페어, 대한민국 청년 비엔날레, 대한민국 청년작가 축전, 한국현대조형작가국제전, 홍천환경설치미술전, 광장조각회전(세종문화회관), 평택 해군사령부 상징조형물 외 다수의 활동을 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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