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는 신라 천 년, 고려와 조선의 천 년 고도(古都)로서 문화재의 보고(寶庫)이다. 그래서 ‘담 없는 박물관’이라거나 ‘노천 박물관’이라 쉬이 부르고 있다. 지정문화재를 볼 때 국보나 보물과 같은 동산 문화재와 사적의 수나 면적, 중요무형문화재, 천연기념물 등이 한국을 대표할 만큼 으뜸이다. 총 수량에서는 6월말 현재 350건에 이르며, 국가지정문화재(총 235건)로 국보 36건, 보물 98건, 사적 77건, 천연기념물 5건, 국가무형문화재 4건, 국가민속문화재 15건이 있다. 또 등록문화재가 2건이며, 경상북도지정문화재(총 113건)에는 유형문화재 40건, 무형문화재 5건, 기념물 18건, 민속문화재 3건, 문화재자료 47건이 있다. 여기에 청와대 석불상(경주방형대좌석조여래좌상)과 같이 경주 출처로 타지에 가 있거나 기관 소장의 유물까지 더하면 그 수는 훨씬 늘어난다. 이처럼 규모면에서 따라올 도시가 없을뿐더러 유네스코(UNESCO) 세계유산 등재에서도 1995년 불국사와 석굴암, 2000년 경주역사유적지구, 2010년 하회·양동 역사마을, 2019년 한국의 서원(옥산서원 외)이 등재되어 경주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여기에 경주, 신라로부터 유래된 처용무(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까지 합하면 경주의 값어치는 한층 높아진다. 이제 한걸음 더 나아가 아직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문화재를 찾아내어 ‘경주의 보고’를 더욱 채워나가야겠다. 토함산 만호봉(522.2m) 꼭대기에는 거품이 식어서 만든 것 같은 화산돌이 무수히 많다. 조선시대에 이 돌이 산호처럼 생겼다 해서 산호 호(瑚)자를 써서 만호봉(曼瑚峯)이라 부르기도 했다. <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태종무열왕에는 4년(657년) ‘7월 ..... 동쪽 토함산(吐含山)의 땅이 타기 시작하여 3년 만에 꺼졌다’는 기록이 있다. 이 역사적 사실이 있는 이곳의 희귀한 돌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한다든가 잘 알려지지 않은 신라, 고려, 조선의 문화재를 찾아내어 등록시키는 일을 서둘러야 할 때이다. 천도교(동학)의 발상지인 용담정을 사적으로 지정하는 일이라던지 그 창시자 수운 최제우 선생의 생가나 태묘 앞에 세워진 석인상의 문화재 등록도 기념관 건립에 앞서야 하는 일이다. 또 경주시에는 ‘비지정문화재’라는 목록이 있다. 이는 지정문화재 밖에 존재한 문화재란 말이다. 여기서도 옥석을 가려내면 어떠할까. 즉 근대 문화재를 등록하는 일도 서둘러야 할 즈음이다. 철거되는 동해남부선 철도상의 경주역, 불국사역 등의 지정이나 일제강점기 건축물도 없어지기 전에 지정해야 마땅하다. 서울특별시에서는 지난 2013년부터 ‘서울시 미래유산’ 지정사업을 펼치고 있다. 서울의 역사를 미래 세대에게 전하기 위해 가치가 있는 자산을 발굴하여 보전하는 프로젝트이며, 지정ㆍ등록문화재로 등재되지 않은 유ㆍ무형 자산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경주가 본받아야 할 대목이다. 미래 세대를 위한 근현대 문화재의 지정, 참 멋있는 제도이다. 경주는 문화재의 수가 너무 많아서 관리할 인력도 모자라고 예산도 늘부족인 것은 현실이다. 그렇다고 귀중한 선조들의 유산을 그냥 둘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지정문화재 수량에 비례한 전문 학예직 공무원을 더 확충하여 일의 무게도 줄이고 민원의 스트레스도 줄여 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몇 년 되지 않아 타기관으로 이직을 불사하는 다반사가 없어질 것이다. 제대로 된 일꾼을 구해 놓고 경주의 문화재 보고, 곳간을 더 채워나가자. 오늘의 경주인이 해야 할 의무이자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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