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아스팔트 위에 흰색으로 선명하게 각인된다. 도로 한가운데 피아노 건반처럼 하얗게 빛나는 횡단보도 위에는 고개를 숙이고 굽은 어깨를 한 채 어디론가 향해 걷고 있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누구에서부터 시작된 지 알 길 없는 ‘횡단의 움직임’을 좇아 사람들은 길을 건넌다.
김화정 작가의 ‘The Moment of life’전이 경주예술의전당 알천미술관 갤러리 달에서 개막했다. 김화정 작가는 (재)경주문화재단 지역예술인 지원사업으로 마련된 2020 경주작가릴레이전 선정작가로 동국대 경주캠퍼스에서 회화과를 갓 졸업한 신진작가다. 이번 전시에서 김화정 작가는 상실과 소외된 처지에 놓인 오늘날 청년들의 복합적인 감정을 회화, 영상 등으로 다양하게 시도한 34점의 작품을 전시한다.
군중 속의 소외, 현대인이 감기처럼 달고 사는 병이다. 대학 시절 사회적 문제나 상황을 작품에 담아내고자 끊임없이 고민했던 작가는 취업 시장의 신조어 3포 세대, 5포 세대, 7포 세대에서 나아가 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세대를 N.po로 캐릭터화시켰다.
김성호 미술 평론가는 김화정 작가의 작품을 “주체적 자아를 망각하거나 상실한 채 사는 현대인의 삶에 짙은 연민을 드리우면서도 그들의 ‘탈주체적 삶’에 대한 통렬한 비판적 문제의식을 잊지 않는다”면서 “특히 현대인으로 상징되는 도시인의 삶을 ‘횡단보도 위의 풍경’으로 끌어들여 은유하면서 인생이라는 거시적 담론을 다양한 방식으로 성찰한다”고 평했다.
현대인의 우울한 삶과 맞닥뜨린 사실의 순간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며 궁극적으로 불안한 인간의 주체를 깨우는 ‘어둠 속 희망’을 작품으로 보여주고 있는 김화정 작가.
“우리의 삶은 살아감에 있어서 많은 선택지 앞에 놓이게 됩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보다는 남들과 같고 편안한 삶을 선택하게 되죠. 결국 삶의 방향성을 잃어버린 순간에 자아정체성을 잃고 혼란스러워합니다”
작가는 주체성을 상실하고 소외된 처지에 빠진 이 시대 젊은이들의 소외를 잃어버린 삶을 살아가는 캐릭터인 N.po를 통해 작품에 녹여내고 있다.
상황을 극대화 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재료와 기법을 시도해온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유화는 물론 크레파스, 잡지, 글루건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작가 내면적 상태를 작품에 옮겨 놓았다.
“데미안 허스트 작품 중 ‘삶과 죽음의 경계’라는 작품이 있어요. 죽음에 관한 설치작품인데 소머리의 사체가 있고 그 안에서 계속 구더기가 태어나지만, 내부에 설치된 전기충격 장치로 인해 다시 수많은 벌레가 죽고 태어나는 과정을 반복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죠. 한편으론 윤리적인 비판이 일기도 하지만 독특한 그의 작품세계에 저는 신선한 충격과 자극을 받았어요. 앞으로 끊임없는 시도와 도전으로 회화, 영상, 설치 등 다양한 장르의 시각 예술작품을 선보이고 싶습니다”
작품을 통해 위안을 얻거나 공감이 됐다는 말을 들을 때 가장 힘이 된다는 작가는 어떠한 특정 작품으로 기억되기보다는 작품으로 메시지를 주는 작가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한다.
김화정 작가의 전시는 8월 9일까지며, 이어 11일부터는 코로나 19로 연기된 이상수 작가의 ‘경주, 또 다른 풍경’전시<관련기사 본지 1428호 ‘금주의 문화’ 참조>가 이어진다.
김화정 작가와의 만남은 29일 오후 5시. 전시 관람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