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는 6살 정도부터 합기도 학원에 다녔다. 그때에도 합기도 관장이 둘째를 보며 “작품을 만들어 보겠다”고 다짐할 정도로 둘째는 운동 능력이 뛰어나다. 그런 둘째와 집순이 수준인 첫째가 발길질을 하며 누구 발이 높이 올라가는지 보란다. 냉정한 법률가인 나는 한 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고 주도면밀한 관찰로 판정한다. “언니 발이 더 높이 올라감” 둘째가 아무리 운동 능력이 좋다고는 해도 첫째 키가 30cm 정도 더 크다. 그걸 운동능력으로 극복하기란 쉽지 않다. 그 말에 둘째가 쏜살같이 달려와 한 마디 한다. “이건 불공정하잖아” 그렇다. 지금의 시대는 초등학교 2학년짜리도 “불공정함”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한다.
비단 “공정함”에 대해서뿐만이 아니다. 할머니가 소파에 아무렇게나 앉아 있는 얘들에게 “여자는 자세를 단정하게 해서 앉아야해”라는 말을 하기가 무섭게 “할머니, 그거 여성 차별적인 말이에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조금이라도 무섭게 혼내자면 “이거 학대 아냐”라는 말이 돌아온다. 공정, 성차별, 학대... 지금의 젊은 세대는 이런 개념을 철저하게 교육받은 세대다.
얼마 전, 사내 인사팀으로부터 신입직원 윤리교육을 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본다. 젊은 세대의 눈으로 보자면 당장 급여를 받는 것부터 평가까지 그리고 단순한 잔심부름까지 모두 불공정의 대상이다. 신입직원의 입장에선 내가 일은 제일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급여는 제일 낮다. 자신이 보기에 업무 능력이 모자라 진급이 늦은 고참 차장이 자기보다 훨씬 많은 급여를 받는 현실은 부당하고, 평정기간에 단순히 연차가 많다는 이유로 부장이 고참 차장에게 평정 점수를 몰아주는 것은 더욱 부당하다. 일도 별로 하지도 않는 사람이 왜 그렇게 지출처리나 잔심부름은 나한테 다 시키는지. 반대쪽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다. 나도 다 그런 과정을 겪어 봤다는 것이다. 낮은 급여에도 밤 새워 일했었고, 평정 점수는 당연히 진급을 앞둔 선배 몫이었다. 그 때 손해 본 것을 이제 좀 챙기려는데, 그것이 부당한가? 과거에도 신구세대 사이에 갈등이 있었겠지만, 지금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가치관의 차이는 참으로 크다.
어느 조사에 따르면 회사의 임원급은 한 달에 2번 정도는 저녁 회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반면 주임급은 회식이란 필요 없고, 하더라도 간단한 점심 회식 정도를 원한다. 임원들은 큰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면 회식을 가지는 것이 직원들을 격려하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젊은 세대는 그런 회식 자리 자체가 불편하다. 이런 인식의 차이가 어느 한 편의 입장에서는 ‘불공정’의 원인이 된다.
기관 외부에서도 마찬가지다. 소위 ‘인국공 사건’ 즉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둘러싸고 세상이 시끄럽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취임 이후 인천공항을 방문해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선언할 당시만해도 비정규직 전환 문제가 공정성을 일으키리라고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생각하지 못했으리라. 많은 사람들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거나 그러한 문제에 공공기관이 앞장 서야 한다는 입장에 대해서는 박수를 쳤다. 그러나 그러한 이상을 현실에 적용하려다 보니, 이런 저런 문제가 불거진다.
우선 대통령의 방문 시점을 기준으로 공개 채용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공정한가의 문제이다.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방침을 정한 날을 기준으로 하여 기존의 근로자에게 어느 정도의 기득권을 인정해 주는 것이 공정하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반면, 정규직으로 전환이 되면 직업의 안정과 더불어 상당 부분 처우 개선이 될 것은 분명한데, 그런 일자리를 별다른 경쟁 없이 기득권을 인정하는 것이 공정한가라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무엇이 더 공정하냐에 대해 나는 쉽게 답하지는 못하겠다. 그러나 하나 분명한 것은 나는 우리 딸들이 좀더 공정한 세상에서 살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공정한 세상을 만드는 것은, 첫째는 눈치보지 않는 문제제기이고, 그 다음은 서로 다른 입장에 있는 사람들 사이의 대화와 소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