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인)
강가의 모래밭에
누렁덩이 호박 하나
지난 번 큰물에도
떠내려가지 않았었네.
깡마른 줄기가
가면 안 돼, 안 돼
꽉 잡아 주었겠지.
“저를 데려가 주세요.
식탁에 올려주세요.”
“밭 주인이 따로 있을 텐데,
괜히 욕 얻어먹을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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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비가 밥도 안 먹은 듯 계속 내리는가 싶더니, 어느 새 얼굴없는 가을이 오고 있음을 느끼는 때이기도 하다. ‘아, 가을!’ 하고 상념을 풀어놓듯 새로운 기분을 느끼겠지만, 우리네 삶이 뾰족한 수 없이 연속되고 있는 것 보면 산다는게 그게 그것 아닌가 싶다.
이 시에서 그냥 넘어가기엔 너무나 아쉬운 발걸음인 것은, 지난 여름 홍수때 ‘강가의 모래밭에 누렁덩이 호박 하나’ 가 흔적처럼 남겨져 있는 것이다. 나그네는 길에서 쉬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만 나그네인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풍경 아닌가.
집 나온 아이와 같이, 전쟁통에 집 잃고 길 헤매는 아이와 같이, 아무 잘 못 없으면서 버려져 있는 ‘누렁덩이 호박 하나’인 것이다.
아주 재미있으면서 기발한 표현이 있는데 ‘깡마른 줄기가 / 가면 안 돼, 안 돼 / 꽉 잡아 주었겠지.’ 가 그 대목이다. 어머니와 같이 비록 깡마르긴 했으나 자식을 놓지 않으려는 진한 모성애도 풍긴다. 거기다가 누가 가져가도 될텐데, 자신의 것이 아닌 이상 견물생심을 경계하는 곧은 심성도 이 시에서 한몫 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시인의 눈은 항상 깨어있어야 하고 열려 있어야 하듯, 참으로 보기 드물게 동심의 눈으로 바라본 현장감 있는 작품으로 읽힌다. 우리 주위에 이런 일들이, 풍경들이 없는지 살펴봄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