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막내 할머니-안의에서                                                               신경림 시게전 끝께에서 술장사를 하는김막내 할머니는 이 길로 쉰 해째다청춘에 혼자되어 아이 하나 기르면서멀쩡하던 사내 하룻밤새 송장 되는차마 못 견딜 험한 꼴도 보고죽자 사자던 뜨내기 해우채 되챙겨줄행랑놓았을 때는 하늘이 온통 노랬지만전쟁통에는 너른 치마폭에 싸잡아살린 남정네만도 여럿, 지내놓고 나니세상은 서럽기만 한 것도 아니더란다어차피 한세상 눈물은 동무해 사는 것마음은 약하고 몸은 헤펐지만때로는 한숨보다 더 단 노래도 없더란다이제 대신 술청을 드나드는 며느리한테그녀는 아무 할말이 없다돈 못 번다고 게으름 핀다고 아들 닦달하고외상값 안 갚는다고 손님한테 포악 떨어도손녀가 캐온 철이른 씀바귀 다듬으며그녀는 한숨처럼 눈물처럼 중얼거린다세상은 그렇게 얕은 것도 아니라고세상은 또 그렇게 깊은 것도 아니라고 -한국전쟁 세대, 그 이후의 삶 이야기 곡식을 파는 노점 끄트머리에서 쉰 해째 술장사를 하고 있는 김막내 할머니의 개인사를 담고 있는 시다. 얼핏 보면 할머니만의 이야기로 보이지만, 시인이 굳이 이 할머니의 삶을 시의 소재로 삼은 것은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자식 하나 기르면서 한국전쟁으로 대표되는 격변의 세월을 억척으로 살아온 세대들의 삶과 겹쳐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십년째 술장사를 하고 있는 할머니는 “멀쩡하던 사내 하룻밤 새 송장 되”거나 “죽자 사자던 뜨내기”가 돈을 챙겨 줄행랑을 치는 험한 꼴도 많이 보았지만, 거기에 굴하지 않고 살아갈 이유를 찾는다. 할머니는 수시로 아군과 적군이 바뀌는 전쟁 상황에서 남정네들을 치마폭에 감추어 거두어낸다. 이런 할머니의 행동은 혹독한 세월을 견디며 우리 민중들이 체득한, 생명 가진 것들에 대한 사랑과 자비를 보여준다. 그것은 일찍이 남편을 잃고 고생하는 할머니 개인사와도 겹쳐진다. 그 남정네들도 어엿한 한 가정의 남편이고 그에 딸린 가족들의 안위도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 세월이 어언 반세기, 할머니는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면서 한 소식을 던지신다. 이는 “지내놓고 나니/세상은 서럽기만 한 것도 아니더란다”라는 간접화법 속에 담겨 있다. 간접인용은 “어차피 한 세상 눈물은 동무해 사는 것”, “한숨보다 더 단 노래도 없더란다”로 이어지다가, “세상은 그렇게 얕은 것도” “깊은 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달관의 자세로까지 나아간다.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이하면서 김막내 할머니와 같은 험한 세월을 살아온 많은 이들의 삶을 떠올려 본다. 연일 방송에서는 6.25 참전용사와 이산가족, 흥남 철수 때 빅토리아호에서 태어난 이경필, 손양영 같은 분들의 삶이 회자되고 있다. 아픈 사연의 삶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는 처연하다. 그들의 한을 누가 풀어줄 것인가? 그러나 현실의 삶은 해피 엔딩만 존재하기는 어렵다. 아프면 아픈 대로, 힘들면 힘든 대로 보듬고 감싸안고, 낮고 외로운 자리에 함께 서고, 그들과 하나가 되어 살아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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