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신라의 밤이여 불국사의 종소리 들리어온다/ 지나가는 나그네여 걸음을 멈추어라/ 고요한 달빛 어린 금오산 기슭에서/ 노래를 불러 보자 신라의 밤 노래를/’ -가요 ‘신라의 달밤’ 중에서. 불국사역 앞 구정동(九政洞) 로터리에는 2000년 8월 건립된 ‘신라의 달밤’ 노래비가 있다. 서라벌의 옛 영광을 재현한 노래비다.
구정동은 대한민국 관광 일번지 불국사로 통하는 관문인 곳으로, 역사문화의 풍성한 이야깃거리가 넘쳐 자긍심이 넘치는 동네다. 불국사라는 위대한 문화유산이 지척이며 기차의 기적소리가 토함산 불국 정토의 여명을 깨우며 밝힌 지 102년째인 불국사역은 또 어떠한가. 구정동 방형분과 올해로 98년된 구정교회와 지금은 쇠락한 옛 철도관사, 불국공설시장, 1948년 개교한 불국사초등학교 등이 있는 구정동은 경주에서도 고대부터 근현대사까지 삶의 지층을 다양하게 간직한 동네다.
예전에는 불국사극장이 있었을만큼 구정동은 중심상권이 몰려있고 근린생활 공간이 집중되었던 불국지역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최근엔 유명 맛집들이 생겨나면서 구정동이 북적이며 젊어지고 있다. 수 년 전부터는 구정동 맛집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평일에도 길게 줄을 서고 있는 풍경을 흔하게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불국사 주변에 맛집이 있을까 싶지만 구정동에는 의외로 밀면으로 명성을 얻고있는 식당들이 많다. 불국사 밀면집, 불국사토함산밀면 등 오래된 밀면집을 바탕으로 밀면집들이 하나둘씩 늘고 있는 것. 또 쑥떡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구정떡방앗간도 쉴새없이 주문을 받는다.
지난 22일, 망종(芒種)을 지난 구정동 작은 텃밭들에도 활기는 더해졌다. 옥수수가 수염을 달고 익어가고 토마토는 토실토실 살이 올랐고 바야흐로 도라지꽃은 꽃망울을 피우고 있었다. 풋내나는 구정동의 여름속으로 걸어보았다.
이번호 구정동에 관한 기사를 더욱 풍성하게 구성하는데는 ‘불국지역 향토사(불국지역 역사문화 편찬위원회, 2018)’의 영향이 컸다. 기사내용과 자료사진 일부를 인용발췌했음을 밝힌다.
-정승이 아홉이나 배출돼 ‘구정리’ 라 불러, 불국사역과 시장마을에 이르기까지 지역의 중심 구정(九政)은 불국사역과 로터리에서 시장마을에 이르기까지 지역의 중심이 되는 곳으로 예로부터 ‘소정각단’으로 불리다가 고려조에서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정승이 아홉이나 배출되었다하여 ‘구정리’라 불렸다는 설이 있다. 구정(九政), 탑거리(塔巨里), 다릿거리, 방천촌(防川村), 밭가운데, 웃마을, 장터마을, 소정각단(蘇亭閣單), 정거장마을 등의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구정동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의해 내동면 구정리라 불렀다. 1998년 행정동인 불국동(마동, 진현동, 하동)과 정래동(구정동, 시동, 시래동, 조양동)을 합해 현재는 불국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구정동은 불국사역 주변이 14통, 성애원 주변이 15통, 불국사초등학교가 16통, 상동마을 17통 등 불국동의 4개 행정통으로 구성돼 있으며 불국장터길, 구정1길~3길, 산업로 등의 도로명을 가진다. 공공시설로는 불국사역, 불국사초등학교, 불국공설시장, 사회복지시설 성애원, 나자레원, 민제양로원, 명화원 등이 있고 문화재로는 경주시 구정동 방형분(사적27호), 분성김씨정려각, 구정동 고분군 등이 있다. 이외에도 불국사온천, 덕봉고택터, 구정교회 등이 있다.
-경주온천관광호텔 내 연꽃으로 유명한 못은 덕봉고택의 후원인 ‘내당제’였다// 아직도 남아있는 옛 빨래터 ‘상보’...겨울에는 김이 모락모락, 여름이면 발이 시릴 정도 불국로에 있는 현, 경주온천관광호텔 내 연꽃으로 유명한 못은 덕봉고택의 후원인 내당제였다고 한다. 그러니 덕봉고택터에 지금의 호텔이 들어선 것이다. 내당제는 구정동 주거지와 가깝고 불국로와 인접해 연꽃이 필 때면 우거진 솔밭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뤘다고 한다. 덕봉고택은 조선 영조때 사헌부 장령을 지낸 덕봉 이진택이 만년을 보낸 집으로 소정각단에 있었다. ‘ㅁ’ 자 와가로 전형적인 조선조의 가옥이었다. 덕봉고택에서는 1942년 일제강점기 국어보급강습회가 열리기도 했다.
구정동에는 온천수가 솟아 물이 좋기로 유명하고 상보, 중보, 하보, 용마내보 등 4개의 보가 있다. 이 보는 동네 아낙네들의 빨래터로 이용되는가하면, 여름이면 멱을 감곤 했다고. 겨울에는 김이 모락모락 솟을 정도로 따뜻했고 여름이면 발이 시릴 정도로 차서 발을 오래 담그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 중 불국사역 바로 인접한 곳에 위치한 상보는 아직도 그 형태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상보 옆에는 농협 창고가 있어 ‘창고거랑’이라고도 불렀다. 창고거랑에도 온천수가 나왔다. 2018년 보수 및 환경 정비를 한 상보의 빨래터에서 한 어르신이 마침 빨래를 하고 있었다. “이곳 물이 너무 좋아요. 요즈음은 동네사람들도 빨래를 잘 하지 않아요. 세탁기가 없던 시절엔 이곳서 주로 빨래를 했었어요” 세탁기에 밀려 이제는 이곳을 찾는 인적이 드물지만 예전엔 마을 주민들의 사랑방이었으리라.
-불국사역 곳곳은 수많은 이들의 추억의 저장소, 주변의 다양한 문화자원 결합해 새로운 도약해야// 구정동 철도관사...일제강점기 불국사역 철도 종사자들 주거 안정 위해 지어진 주택 구정동의 핵심 불국사역. 관광 경주의 영광스런 시간을 함께하며 굉음 소리를 길게 냈을 불국사역 곳곳은 수많은 이들의 추억의 저장소다. 불국사역은 일제강점기인 1918년 영업운전을 시작했으니 102년 영욕의 세월을 겪은 역이다. 하지만 현재, 근현대사 경주 관광관문으로서 기여했던 불국사역은 발이 묶일 예정이다. 동해선 복선화 사업으로 노선이 변경돼 폐역이 될 상황에 처해있는 것. 구정동을 찾는 많은 이들은 한결같이 불국사역 주변의 넓은 철도 용지를 개발해 주변의 자원을 결합해 조화롭게 새로운 관광단지를 조성한다면 많은 관광객이 찾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구정중앙교회를 돌아 지나면 옛 철도관사가 남아있다. 일제강점기 불국사역 철도종사자들의 주거 안정을 위해 지어진 주택으로 불국사역의 동남쪽에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위치한다. 불국사역 관사는 언제 건립되었는지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울산 ~경주 표준궤 완공때 경주역의 배후 주택지로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황오동 철도 관사와 시기를 같이한 1930년대 중반으로 보고 있다. 당시 구정동 관사는 다다미 방을 갖춘 일본식 목조주택으로 독립형 관사 1동과 두 가구가 거주하는 연립형 2동으로 모두 3동에 다섯 가구가 거주했다고 한다. 독립형 한 동은 ‘역장집’으로 불린 역장 관사였고 다른 동에는 선로반장과 역무원들이 거주했다고. 현재는 거주자의 편의로 개조되거나 허물고 신축되었으나 옛 일본식 관사의 모습이 어렴풋하게 남아있다.
-구정교회와 구정중앙교회 & 1등 4회, 2등 19회 당첨 자랑하는 ‘불국사명당복권’ 구정동에는 교회가 둘 있다. 구정 1길 구정동방형분 맞은편으로 보이는 구정교회는 이국적인 외관으로 독특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스테인드글라스가 장식돼 근대 건축물의 기품을 간직한 구정교회는 1922년 12월 조양교회에서 분리해 구정리에서 설립됐다. 구정 3길에 있는 구정중앙교회 또한 구정동에선 우뚝한 건축물이다. 구정교회 맞은편 불국사초등학교가는 길은 불국사초등길이다. 이 길에는 이 동네 터줏대감격인 50년 시간의 ‘중앙이용소’가 있다. 불국사초등학교 바로 앞에는 여느 초등학교에서나 볼 수 있는 작은 분식집과 문구사가 있었다. 불국사의 기운 덕일까. 구정동엔 1등 잘되기로 소문난 복권 명당집이 있다. 산업로 대로변에 ‘1등 4회, 2등 19회’ 당첨을 자랑하는 ‘불국사 명당 복권’ 복권판매점이 있는 것.
-말해 뭐해!! 구정동 맛집 모여라...‘불국사 밀면’, ‘구정떡방앗간’, ‘불국사토함산밀면’, ‘카페 아사’ 불국공설시장 바로 한쪽 불국장터길에는 불국사 밀면집이 있다. 불국사 근처 가성비 좋은 맛집이라는 소문이 자자한 이곳 면은 쫄깃한 식감이 일품이라는 평을 얻고 있다. 면은 밀가루와 고구마전분을 황금 비율로 섞어 사용하는데 특히 옥수수전분, 말린 꾸지뽕잎 가루를 넣어주는 것이 비법이라고 한다. 지난 21일 일요일에 찾은 이 집엔 길게 줄을 서있는 손님들로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불국사토함산밀면’에서 맛난 밀면과 떡갈비 맛에도 역시 감동을 받는다. 이곳 역시 많은 관광객들이 선택하는 구정동 대표 맛집이다. 불국사 역 사거리쪽에 2018년 문을 연 ‘카페아사(cafe Asa)’는 질 좋은 원두로 다양한 커피를 선보이고 주인이 직접 제다한 화차와 전통차를 제공한다.
50여 년 세월의 구정떡방앗간은 전국에 택배로 발송할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떡집이다. 이 집의 대표 떡은 쑥떡이다. 방앗간을 운영하며 일하느라 여념이 없는 주인장을 만났다.
“남편이 부모님 대를 이어 2대째 운영하고 있습니다. 다른 집에 비해 쑥 함유량이 두 배 이상 들어갑니다. 100% 찹쌀이 들어가고요. 주로 인근 포항, 울산 등지에서 가장 많이 찾아오시는데 요즈음은 입소문을 타고 전국에서 문의해오십니다. 일년 내내 만들진 않고 자연쑥을 캘 수 있는 시기까지만 만들고 있어요. 스팀기에 푹 쪄서 쑥 향과 고유의 맛을 그대로 살려내고 있어요. 물기를 제거하기 위해 전용탈수기에 완벽하게 탈수를 해 물기를 깔금하게 제거하고요”
정성이 듬뿍 들어간 이 쑥떡이 히트할 수 밖에 없는 이유들이다. 이야기를 듣는 중에도 연달아 주문 전화가 오는 쑥떡은 한 되 3만원. -‘시장종합잡화’...구정동에서 50년 넘게 운영해 온 만물상 같은 잡화점 불국공설시장 한 켠에는 50년 넘게 운영해 온 만물상 같은 잡화점이 하나 있다. ‘시장종합잡화’라는 이름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온갖 물건을 파는 집이다. 올해 봄 강풍에 떨어져나간 간판을 아직 달지 못한 채 희미하게 불을 켜 둔 가게로 ‘쓰윽’ 들어갔다. 장사를 그만둔 것은 아닐까 했던 걱정은 기우였다.
이 잡화점 주인이신 할머니(90·홍영우)는 여전히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자형의 작고 낮은 한옥 한 채에 간이 공간을 덧달아 낸 이 잡화점은 제법 호시절도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장사 안돼. 하던 거라 그냥 하지 뭐”
오래된 것은 낡은 것이기도 하지만 시간속에서 사람과 함께 해 온 켜켜이 묵은 감동이 서린 곳이다. 이 곳 역시 이 일대 구정동 서민들과 세월을 함께해 온 정겨운 공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