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열 시가 넘어서 아들이랑 산책을 나섰다. 목적 없이 걷던 우리의 시선을 끈 것은 공원에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기합소리였다. 가봤더니 이종격투기를 연습하는 일단의 젊은이들이었다. 둘씩 한 조를 이루어 주먹을 휘두르고 그걸 피하는 커플, 복근 단련 중인지 주먹을 매기고 오만상을 지으며 자신의 배를 아낌없이(?) 내주는 커플도 보인다. 코로나19를 극복하려는 그들의 기합 소리가 참 건강했다.
‘메이드 인 코리아’로 유명한 게 김치나 K-POP의 선봉장 BTS만은 아닌 모양이다. 타고 온 자동차 안에서 바로 검사를 받는 드라이브 스루(drive-through), 공중전화 부스처럼 생긴 1인 검체 채취 방식(walk-through)은,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한국산(産) 대박 콘텐츠다. 이들의 ‘스피드’, ‘접근 가능성’, 그리고 ‘정확성’에 감동한 여러 나라에서 따라 하고 있다.
코로나를 대하는 모습도 다양하다. 자가 격리 중인 이탈리아 사람들은 노래와 춤으로 코로나와 싸운다고 한다. 서로를 위로하고 기운을 북돋기 위함이다. 아이는 냄비 뚜껑을 두드리고 어른은 기타를 치고 우리로 치면 아리랑(‘나를 안아 달라’는 뜻의 제목인 노래 ‘아브라치아미Abbracciami’)을 부르는데 화음까지 넣는다. 흥겨워 보이기까지 하다. 바이러스가 아무리 강력해도 우리는 보란 듯이 살아 있어 이렇게 노래를 부른다는 식이다. 육체는 격리되어 있지만 코로나를 극복하려는 마음만큼은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다.
코로나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이 시급한 지금, 미국의 스탠퍼드 대학은 각 가정집에서 사용하거나 놀고 있는 개인 컴퓨터(PC)를 활용해 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백신을 개발하는데 필요한 엄청난 양의 계산을 감당할 슈퍼컴퓨터가 필요한데 지금 당장 많이 없으니 문제다. 그래서 나온 아이디어가 ‘글로벌 분산 컴퓨팅 프로젝트’다. 전 세계에 산재한 개인용 컴퓨터를 연결하여 슈퍼컴퓨터를 대체하자는 것이다. 현재 100만 대 이상이 연동 중에 있다고 하니 하루빨리 코로나를 극복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적(敵) 코로나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글로벌 금융 서비스 업체인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금년 가을에 코로나 바이러스 2차 침공이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사스나 메르스 때처럼 2차 유행은 없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지만, 현재까지 4700 여개 변종이 보고된 점으로 볼 때 코로나의 재공격은 우려스럽지만 충분히 가능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코로나 피로감은 이미 극에 달했다. 지금까지 자기 방역과 격리에 최선을 다해왔으니 보상을 받고 싶은 심정이고 분위기다. 하지만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이번 서울 클럽에서 발생한 신규 확진자가 새롭게 보고되는 걸 보니 바이러스가 결코 호락호락할 것 같진 않다.
변종 바이러스의 무차별 공격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우리는 또 얼마나 긴장하고 조심해야 할까? 마스크와 비누로 손 씻기가 인류에게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 충분히 알게 된 지금, 우린 또 무슨 교훈을 기다려야 할 운명이란 말인가?
조선시대만 해도 사대부들은 기본적으로 의약을 배우고 익혀왔다고 한다. 의학 지식이 소수의 전문 집단만의 것이 아니란 말이다. 삶과 죽음의 문제는 누구에게나 공평하듯 말이다. 선조가 허준(許浚: 1539~1615)에게 《동의보감》 편찬을 명하면서, 질병과 처방을 다루는 임상서 말고 섭생(攝生)과 수양(修養)을 우선으로 하는 양생서를 주문했다는 사실은 눈여겨봐야 한다.
기침하고 목 아프면 진찰은 병원에서, 약은 약국에서 해결해 준다. 의료 분업화는 몸과 그 주체마저 분리시켜 버렸다. 병원이나 약국에서 아픈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입을 최대한 벌리거나 카드를 긁는 일뿐이다. ‘질병은 섭생을 조절하지 못한 데서 생기는 것이니 수양이 최선이고, 약물은 그다음’이라는 《동의보감》은 어쩌면 방치하고 있던 우리 역할을 환기하는 게 아닌가 싶다. 내 몸(精氣神:면역체계)은 누가 뭐래도 내가 지킨다는 역할 말이다. ‘평범한 감기를 앓았던 사람 중에 코로나19에 대한 면역력이 생겼다’는 미국 캘리포니아 라호야 면역연구소의 보고가 반가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