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최고의 여성 성악가를 뽑으라면, 마리아 칼라스(M.Callas/1923-1977)를 빼놓을 수 없다. 단아한 용모, 뛰어난 실력, 그리고 기품 있는 무대매너로 제2차 세계대전 후 최고의 오페라 가수로 각광받았다. 하지만 그녀 역시 처음에는 프리마돈나를 꿈꾸는 풋내기 가수에 불과했다. 이탈리아 밀라노에 위치한 라 스칼라 극장은 오페라 가수라면 누구나 꼭 서고 싶은 꿈의 무대다. 1778년 오스트리아의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a)의 명에 따라 설립된 이래로 로시니, 베르디, 푸치니 등 이탈리아 오페라의 영웅들이 이곳에서 명작을 발표했다. 라 스칼라의 주연배우는 이탈리아 전국구를 넘어서 국제적 스타로 인정받았다. 칼라스가 이탈리아로 넘어 온 때는 토스카니니가 캐스팅한 레나타 테발디(R.Tebaldi/1922-2004)가 라 스칼라의 여왕으로 군림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당시 칼라스에게 테발디는 넘지 못할 벽처럼 보였다. 그리스계 미국인이란 사실도 핸디캡이었다. 하지만 칼라스는 칼을 갈며 준비했고, 마침내 기회를 잡는다. 1950년 오페라 아이다 공연을 앞두고, 테발디를 대신해 무대에 서는 행운을 얻게 된 것이다. 이후 성악가로서는 꽃길을 걷는다. 칼라스가 데뷔할 당시에는 사실주의 베리스모(verismo) 오페라가 대세였다. 반면 여성 성악가의 기량을 중시하는 벨칸토 오페라는 구닥다리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칼라스는 19세기 초반의 벨칸토 오페라를 20세기에 부활시킨 일등공신으로 평가받는다. 이는 자신의 성악역량을 최대치로 부각시키는 일이기도 했다. 칼라스가 부른 벨리니의 노르마 타이틀 롤은 특히 극찬을 받았다. 그녀 자신도 비올레타나 토스카가 아닌 노르마 역을 가장 좋아했다. 하지만 칼라스는 벨칸토 창법에만 능통한 가수가 아니었다. 거의 모든 장르의 오페라를 소화할 줄 알았다. 영화배우로 치면, 한 명의 배우가 멜로, 로맨틱 코미디, 심지어는 호러나 스릴러까지 모든 분야에서 주연을 맡는 거랑 비슷하다. 이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래서 사람들은 칼라스를 소프라노 아솔루타(Soprano Asoluta)라고 부른다. 직역하면 절대적인 소프라노다. 더 이상의 찬사는 없을 것 같다. 칼라스는 연애 스케일도 남다르다. 아버지 연배의 부유한 사업가와 결혼 후 바람이 난다. 불륜의 상대는 그리스의 유명한 선박왕 오나시스였다. 하지만 오나시스가 케네디 대통령의 미망인 재클린과 사랑에 빠지면서 멀어진다. 칼라스는 일세를 풍미한 스타였지만 그녀의 말년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