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부터 왼쪽 어깨가 아팠다. 팔을 위로 들 때마다 어김없이 통증이 심하다. 팔을 어깨 높이까지 드는 건 쉬운데 그 이상은 아무래도 불편하다. ‘아, 이번에도 쉽게 올라가지 않을 텐데’ 그저 팔 하나 드는데 이런 생각이 먼저 들 정도로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유일하게 좋아하는 수영을 쉰 것이 원인이었나? 혼자 끙끙 앓고 있으니 보기에 답답했던지 와이프가 시내 유명하다는 통증의학과 주소를 카톡으로 찍어준다. 다음 날, 일찍 길을 나섰기에 병원은 한산하리라 생각했는데 웬걸 어르신들은 죄다 병원에 모여 계시는 게 아닌가? 클럽이나 유흥가에서 다시 기어 나온 코로나가 이런 어르신에게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젊은이들이야 감염이 되어도 가볍게 지나간다지만 보통 기저질환이 있거나 상대적으로 면역력이 약한 어르신들에게는 심각한 생존의 문제가 아닐 수 없다. 80대 이상 확진자의 경우 사망률이 25%에 육박한다고 하니 말이다. 그래서일까, 지금 요양원에 계시는 내 어머니와 비슷한 몸집의 어느 어르신에게 자꾸 눈이 간다. 반갑기도 하고 한편으론 안쓰럽기도 하다. 쓰고 계신 모자가 참 곱다. 지금 미국에서는 ‘27번의 배웅(원제: 27 Good-byes)’이라는 이름의 책이 화제라고 한다. 저자는 1995년부터 2017년까지 차 안에서 자신을 배웅하는 부모님을 찍은 사진작가 디나 디크만(Deanna Dikeman)이다. 사진 속에서 다정히 손을 흔들던 노부부는 2009년 한 사람만 남게 되고 2017년을 끝으로 집 앞에서의 자식 배웅은 멈춘다. 이렇게 기록하고 전시한 사진들이 책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 운전석에서 찍은 부모님 두 분은 항상 웃고 있다. 주인처럼 오래된 복장에 점점 기력도 쇠해가는 모습이지만 딸을 향한 미소만큼은 한결같이 따뜻하다. 할아버지의 어색한 웃음과 흔드는 깡마른 손길은 마음을 아프게 한다. 반대로 자동차 뒷자리엔 유아용 안전시트가 보이기 시작하고 새로 태어난 손자는 사진 속에서 웃고 있다. 그 옆엔 반려견도 한 마리 보인다. 그 사이 할아버지 손에는 지팡이가 하나 들려 있다. 흑백이던 사진은 어느덧 칼라로 바뀌었지만 사진 속 할머니의 웃음은 여전하지만 할아버지 없이 혼자다. 늘 차고(車庫) 옆을 배경으로 찍던 카메라 렌즈는 어느새 집 안 거실로 들어왔다. 거동이 불편해진 이후로 의지하던 보조 보행기를 옆에 둔 할머니는 여전히 곱다. 그러던 어느 날, 20년째 이어온 가족 의식(ritual)은 주인 없는 나지막한 집 사진을 끝으로 멈춘다. 그러고 보니 세상은 참 많이 바뀌었다. 기록 문화가 없어서 지식을 입에서 입으로 전할 수밖에 없던 시대나, 특히 자연의 흐름을 볼 줄 알아야 가능했던 우리 같은 농경 사회에서, 어르신은 그 자체로 소금과도 같은 존재였다. 한 평생 완성해 온 경험과 지식은 그들을 가장 지혜롭고 또한 가장 권위 있는 존재로 만들었다. 그만큼 자식들은 어른에게 존경과 순응으로 반응해 왔다. 지속될 줄 알았던 이런 관계는 디지털 시대를 맞게 되면서 어른의 역할과 권위는 예전 같지가 않다. 새 시대와 보조를 맞출 디지털 기기와 서비스를 자녀 수준으로 활용하거나 이해하고 있는 부모는 그다지 많지 않다. 햄버거 가게에서 주문을 못해 키오스크(kiosk:주문과 결제를 돕는 무인 정보단말기) 앞에서 우물쭈물하는 어르신들을 자주 본다. 이제 자녀의 정보 습득과 활용 능력이 부모를 훨씬 뛰어넘는 세상이다. 기본적으로 개인화 서비스인 스마트폰과 SNS 등은 부모의 접근이 원천적으로 차단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분명히 공부 안 하고 딴짓을 하는 중학생 아들, 심증은 가는데 물증이 없어서 소리 없이 다가가 보면 뭘 눌렀는지 이미 다른 화면으로 바뀐 지 오래다. “너 좀 전에 본 거 뭐야? 내놔 봐!” 하고 윽박지르기만 할 뿐, 잠금장치가 되어 있는 녀석의 핸드폰은 결코 다가갈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다. 어른들의 취향이던 트로트 문화에 젊은이가 열광하는 요즘이다. 이러다가 노래에서조차 설 자리를 잃을 판이다. 저 멀리 손 흔들며 배웅하고 있을 내 부모 모습과 스마트폰 만지작거리는 자식에게도 다가갈 수 없는 내 모습이 겹쳐서일까, 가슴 한편이 허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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