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경호(21세기 교육행정연구원장, 교육행정학 박사) ‘아는 사람’이라고 하면 더불어 사는 우리 인간생활에 있어서 절대로 끊어서는 안되는 좋은 사이를 말한다. 부족사회나 친족사회의 생활관습이 남아 있는 우리에게는 어려울 때나 기쁠 때나 항상 아는 사람과 연락하고, 만나고 싶어한다. 아는 사람과의 관계는 늘 좋아야 하고 남들에게도 아는 사람 많은 것이 자랑이 된다. 서로에게 득이 되며 세상 살아가는 데도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우리 속담에는 ‘아는 놈이 도둑놈’이란 말이 있는가 하면 무슨 사건이 생기면 ‘근자지소행’으로 돌린다. 우리가 만든 말이지만 듣기에 거북스럽다. 아는 사람이란 이웃과 동료 그리고 일가, 친척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조심하라니 누굴 믿고 살아야 한단 말인가. 가을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몇 년 전에 강원도 춘성의 북한강 상류에 위치한 남이섬에 간 일이 기억난다. 푸른 강줄기따라 펼쳐진 20만 평에 이르는 섬 입구에 남이장군의 무덤이 정말 외롭게 남아있다. 세조때 병조정랑(6도의 정5품)에 까지 올랐던 류자광은 자기보다 높은 벼슬에 있거나 다른 사람이 임금의 사랑을 받는 일이 있으면 그냥 두지 못하는 성미였다. 이러한 그의 심성 때문에 목숨을 잃은 자가 부지기수였다. 그는 재능과 벼슬이 자기보다 높은 남이 장군을 모반을 했다.결국 남이장군은 그의 모함에 옥사당했다. 당시 남이장군은 세조의 각별한 총애를 받아. 27세 나이에 병조판서에 올랐던 귀재였다. 그의 여진 토벌 때 읊은 시는 너무나 유명하다. 사나이 20세/나라을 평정하지 못하면 후세에 누가 일러/대장부라 하리오. 남이장군을 주살케 한 류자광은 그 공로로 익대공신 1등에다 무령군에 봉해졌다. 이후 기세가 등등하여 연산군 때는 80명의 학자를 일거에 죽인 무오사화를 일으켰고, 중종 반정때는 역적으로 몰리기는 커녕 오히려 공신으로 둔갑할 정도로 모사꾼이었다. 잔재주는 밑천이 짧다는 말대로 중상모략과 무고로 점철하던 그도 당대의 실력자인 칠삭동이 한명회까지 모함하다 파직되었다. 끝내는 유배생활 끝에 눈이 먼 채 비참한 생애를 마치게 되었다. 이것은 역사가 던져준 하나의 큰 교훈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잘 아는 사람에 의해서 피해를 보고 시달리고 있다. 나의 경계 대상은 바로 나를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시기하고 질투하고 모함하고, 투서하고, 흉보고, 배아파 하는 사람이 바로 나를 아는 사람이다. 이웃과 직장 심지어는 동업자나 동기생이 나를 괴롭히고 속인다. 철학자요 사회학자인 럿셀 경도 ‘아는 관계가 편리하지만 때로는 무섭고 겁이 난다.’라고 했고, 다산 정약용도 ‘아는 사람 조심하라, 이웃과 친구는 자신을 관리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했다. 예수님이 로마 병정에게 잡히던 전날 밤 제자들과의 마지막 대화의 장면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에 남아 있다. 그 그림을 자세히 보면 예수님 바로 오른쪽에 앉아서 돈주머니를 들고 아양과 수다를 떨면서 설치는 자가 바로 예수를 헐값에 팔게 되는 가롯 유다다. 제자가 스승을 은 30에 판 것이다. 토정비결에도 ‘아는 사람에게 화를 입는다.’라는 글귀가 자주 나온다 왜 그럴까? 인간적인 정이 얕아서 그럴까? 아니면 내 자신의 인격과 덕망이 부족한 탓일까? 성자이신 예수님도 당하는 것을 보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사회는 다 그렇다는 걸까? 몇 해 전 워싱턴에 가서 들은 이야기이다. 조지 부시 미행정부내에 한국계 인물 한 사람이 처음으로 미국 정부의 고위직에 임명되어서 한국인들의 어깨가 으쓱해졌던 모양이다. 그런데 왠일일까? 오래지 않아 미국에 있는 우리 교포들의 투서질이 빌미가 되어 그 뛰어나고 훌륭한 두뇌를 써 먹지도 못하고 쫓겨났다는 불쾌한 얘기가 교포 사회에 파다하였다. 못 살게 한 것도 우리 민족이요, 쫓아 낸 사람도 우리 교포다. 우리의 국민성을 새삼 의심케 하는 불상사가 아닐 수 없다. 소수민족으로 교포의 지위가 격상된 것은 경사스러운 일임에 틀림없는데도, 우리끼리라면 혹 몰라도 낯설고 물설은 해외에 나가서까지 동족끼리 헐뜯는 추태야말로 크게 반성해야 할 문제이다. 오늘도 가까운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만나서 저녁이나 같이 먹자고 자주 찾는다. 그런데 왠 일이냐? 모두가 그 사람을 싫어하는 것 같다. “그 사람 가까이도 하지 말고, 멀리도 하지 마라 무서운 사람이다.”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망설여진다. 지금부터라도 아는 사람끼리 서로 아끼고 칭찬하며 진심으로 돌봐주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형제여! 남의 눈에 티끌은 꼬집으면서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는가?” 진리의 말씀을 다시한 번 새겨 듣고 나 자신부터 깊이 반성하면서 「아는사람」을 도우고 함께 정을 나누는 사회가 되길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고 싶다. 아는사람을 먼저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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