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윤식(문인) 보도에 의하면 이번 여름 더위로 프랑스에서는 일만명이 넘는 노인들이 죽은 채 발견되는 참변이 벌어졌다고 한다. 젊은이들이 바캉스 간 사이 집에 있던 노인네들이 대부분인데 휴가철이 지난 작금에 이르기까지 유족이 나타나지 않은 경우가 많아 송장 처리에 당국자들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소식도 함께 전해지고 있다. 서양의 전통적인 사상이나 종교가 무력해진 현상을 ‘신이 죽었다’면서 ‘초인’ 정신을 부르짖던 니체의 맥을 이은 사르뜨르가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라는 기치 아래 일세를 풍미하던 ‘인간 실존’의 나라 프랑스에서 젊은 세대들에 의한 집단학살이나 다름없는 이번 노인 유기 폐사 사건을 접하면서 우리는 실존주의를 위시한 이들의 주의, 주장이 얼마나 공허한 관념의 유희이며 극단적인 이기주의인가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제가백가의 한 사람인 묵자의 겸애설에 대해 맹자는 ‘자기 부모나 남의 부모를 평등하게 사랑하라는 것은 자신을 낳고 길러준 부모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묵자의 사상에는 진정한 휴머니즘 정신이 깃들여 있다는 점에서 서양의 유사한 주장과는 차원이 다르다. 지난 31일 경주 노서고분(금관총) 특설무대에서 공연된 시립극단의 뮤지컬 ‘조신의 꿈’을 관람하면서 서양의 개인중심주의나 중국의 미지근한 박애주의를 능가하는 우리 고유의 가치관이나 미적 감각 내지 멋을 접할 수 있어서 모처럼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 삼국유사의 ‘낙산의 두 보살 관음·정취와 조신’ 편에 있는 스님 조신에 대한 부분을 극화한 작품인데 해방 직후에 쓴 춘원 이광수의 소설 ‘꿈’을 모델로 삼은 것 같다.삼국유사에 의하면 세달사의 장원 관리인이던 조신이란 스님이 고을 태수의 딸을 깊이 사랑하여 낙산사 관음보살에게 두 사람이 짝이 되게 하여 주십사하고 빌었다. 그러다 하루는 관음보살이 자기의 소원을 이루어 주지 않음을 원망하며 날이 저물도록 슬피 울다가 지쳐서 그 자리에서 잠이 들었다. 곧 꿈을 꾸었는데 그 꿈속에서 오매불망하던 연인을 만나게 되었고 40여년을 함께 살면서 자녀 다섯을 두었으나 15세가 된 큰아이는 굶어 죽고 10세 된 계집아이는 밥을 얻으러 다니는 거지로 되는 등 온갖 고생 끝에 마침내 부인의 제안으로 둘이 헤어져 각자의 길을 떠나려 할때 꿈을 깨었다. 그로부터 인생이란 좁쌀밥이 다 되기 전에 꾸는 한 꿈이라는 것을 깨달은 조신이 사재를 기울여 정토사를 세우는 등 착하게 살았는데 그 후에 어디에서 세상을 마쳤는지는 모른다는 줄거리로 되어 있다. 춘원은 그의 유려한 필치로 이 이야기를 윤색함으로써 그의 친일 행각을 간접적으로 변명하는 소설로 꾸몄으며 작가 김흥우가 이를 극화한 것을 경주시립극단에서 야외공연용으로 재편성하여 8경 15곡의 뮤지컬로 무대에 올리게 된 것이었다. 창단 이후 최초로 시도된 뮤지컬인데다 야외 무대에서 그것도 외래 배우나 음악인들의 도움 없이 시립극단 단원들만으로 공연 되었음에도 수 천명의 관객들로부터 열광적인 박수와 갈채를 받았다. 이에는 단원들의 각고의 노력은 물론이지만 화려한 무대와 휘황한 조명시설 등을 설치해준 시청 문화 예술 담당 공무원들의 파격적인 지원과 성원에 힘입은 바 컸음도 간과 할 수 없다. 궂은 날씨였음에도 시장과 시의회 의장 및 다수 시의원들이나 부시장, 행정지원국장, 전 ·현 문화예술국장과 과장, 계장, 평직원들이 모두 참석하여 진지하게 관람하는 모습에서 많은 시민들이 이를 실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틀 공연 예정이었으나 30일은 우천으로 공연이 취소된 점이 아쉽다.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었고 수개월 동안 연습한 단원들의 노고를 생각해서라도 엑스포 기간 중에 몇 번 더 공연했으면 한다. 요즘 경주시민에게 큰 희망과 기대를 갖게 하는 문화사업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이미 예산까지 확보된 것만도 ‘남천·서천·북천의 생태계 부활과 자전거 도로와 조깅 코스들이 갖춰지는 둔치의 건설 작업’(2003. 7. 7일자 경주신문)과 사업비 52억원이 투입되는 ‘시립노인전문병원’과 ‘중증장애인 요양시설’건립(9월1일자 경주신문)사업이 있다. 이번 뮤지컬 공연을 보면서 이러한 사업들이 꼭 성취되리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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