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가 일본 자매·우호도시에 코로나19 방역물품을 지원한 것과 관련, 논란이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SNS와 경주시청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는 이를 비난하는 글이 쏟아졌고, 경주시장 해임과 방역물자 지원 금지를 요청하는 청와대 국민청원도 올라왔다. 반면 악화된 한·일 관계 속에서 이로 인해 양국 도시 간, 그리고 민간교류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경주시는 지난 21일 코로나19로 방역물자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본 자매·우호도시에 시 비축 방호복 등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시는 먼저 올해 자매결연 50주년을 맞은 일본 나라시와 우호도시 교토시에 방호복 1200세트와 방호용 안경 각각 1000개를 지난 17일 항공편으로 지원했다. 나머지 우호도시에는 방호복 각 500세트와 방호용 안경 각 500개를 지원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주낙영 시장은 지원 당시 “어려울 때 돕는 것이 진정한 친구이자 이웃”이라며 “누가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지금은 한일 양국이 코로나 대응을 위해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방역물품을 받은 교토시는 주 시장의 응원 영상메시지와 경주시 코로나 대응 사례집을 교토시 공식 유튜브 채널과 세계역사도시연맹 홈페이지에 소개할 의사를 전해오기도 왔다.그러나 경주시의 지원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부 시민들은 한·일간 외교 갈등이 해결되지 않은 시점에서 일본에 방역물품을 지원한 것은 적절치 못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경주시 홈페이지에는 “지금이 어느 때인데 일본에게 지원을 하느냐” “지원하고 싶으면 개인 비용으로 하라”는 등의 비난 글이 쏟아졌다. 이에 주 시장은 지난 22일과 24일 두 차례에 걸쳐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입장을 밝혔다. 주 시장은 먼저 “지원과 관련해 밤사이 엄청난 비난과 공격에 시달렸다”며 “토착왜구다, 쪽발이다, 정신 나갔냐 등등 평생 먹을 욕을 밤사이 다 먹은 것 같다”고 운을 뗐다. 주 시장은 “2016년 경주 지진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을 때 우리는 일본을 비롯한 해외 자매·우호도시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번 방역물품 지원은 상호주의 원칙하에 지원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일본이 우리보다 방역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경제대국 일본이 비닐 방역복과 플라스틱 고글이 없어 검사를 제때 못하고 있다. 이럴 때 대승적 차원에서 도움을 주는 것이 문화대국인 우리의 아량이고 진정으로 일본을 이기는 길이 아닐까요?”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어 주 시장은 “전쟁 중 적에게도 의료 등 인도주의적인 지원은 하는 법”이라며 “한·중·일 관계는 역사의 굴곡도 깊고 국민감정도 교차하지만 긴 호흡을 가지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할 관계”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주 시장은 “그런 복합적 관점에서 방역에 다소 여유가 생긴 우리 시가 지원을 하게 됐다는 점을 이해해 주기 바라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반일이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극일이라는 점을 간곡히 호소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이 같은 입장 표명에도 논란이 쉽게 가라앉지 않자 주 시장은 24일 재차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주 시장은 “시민들께 큰 심려를 끼쳐드려 시장으로서 무한한 책임감을 느끼며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저에게 쏟아지는 개인적인 비난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지만 저로 인해 경주시와 경주시민 전체가 무차별 공격을 당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당혹스럽기도 하고 무척 가슴이 아프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옳고 그름을 떠나 지금의 격앙된 반일정서상 제 참뜻을 받아드리기 어려운 분위기라는 것도 충분히 이해한다”며 “그런 뜻에서 일본의 다른 우호·자매도시에 지원하기로 했던 방역물품 지원계획은 취소하겠다”고 했다. 이어 “이밖에도 앞으로 어떤 결정을 할 때는 국민정서를 감안해 매사 더욱 신중을 기하도록 하겠다”면서 “하지만 한일관계의 조속한 복원과 정상화가 양국의 미래발전을 위해 바람직하다는 소신에는 변함이 없으며 지자체 차원의 교류와 협력은 지속적으로 확대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대한민국과 우리 경주시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겠다. 그게 옳은 일이라면 친일파가 아니라 더한 욕을 먹더라도 소신껏 일하겠다”며 “저의 유일한 소망은 경주시의 발전과 시민의 행복증진으로 이를 위해 무소의 뿔처럼 묵묵히 걸어가겠다”고 했다. -양국 도시 및 민간 교류는 지속돼야 이번에 방역물품을 지원한 일본 나라시와 교토시는 역사도시라는 공통점을 갖고 경주시와 오랜 기간 교류해오고 있다. 특히 일본 나라시와는 지난 1970년 자매도시 결연을 맺은 뒤 올해로 50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양 시의 역대 시장, 시의장, 상공회의소 회장들은 모두 서로 명예시민이 돼 우정을 이어가고 있다. 또 탁구협회, 건축사회, 정구협회, 검도협회 등 민간 차원의 교류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재난 발생에 따른 나라시의 지원도 있었다. 지난 1998년 태풍으로 경주가 큰 피해를 입었을 당시 나라시는 시민성금 1억3000여만원을 전달해왔고, 2016년 경주지진 당시에는 나라시 건축사회가 240여만원의 성금과 함께 조속한 피해극복을 기원하는 편지 등을 보내왔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제력이 일본에 비해 열악했던 1976년부터 19년간은 경주지역 학생 157명이 나라시 시수회의 장학금 1억4000여만원을 받기도 했다. 또 나라시 치벤학원은 지난 1975년부터 지금까지 45년간 해마다 수학여행단을 보내오고 있다. 이 학교는 조상들이 지은 식민지배의 만행을 사죄하고 자라나는 미래세대에 올바른 역사의식을 심어주고 있다. 교토시 또한 지난해 경주시와 우호도시 협정을 맺었다. 매년 5000만명이 찾는 일본의 대표적인 역사문화관광도시로, 현재 양 도시 간 천년고도를 잇는 크루즈 뱃길을 열기 위한 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 교토시는 지난 1987년 결성된 세계역사도시연맹 회장도시이며, 경주시는 이사도시로서 긴밀한 협조도 이뤄지고 있다. 이 연맹은 66개국 119개 회원도시가 참여하고 있다. 이 같은 지속적인 교류와 상호 지원 등을 통해 쌓아온 도시 간 우정과 인연이 이번에 인도적인 차원에서 방역물품을 지원하게 된 이유라는게 경주시의 설명이다. 특히 한·일 도시 간 교류는 일본에 대한 정부의 ‘투트랙’ 정책기조와도 맞물린다. 과거사 문제와 미래지향적 관계를 분리하는 것으로 악화된 한·일 관계의 매듭은 정부가 풀고, 도시 간 또는 민간 교류는 유지해야 한다는 것. 이에 따라 이번 방역물품 지원과 관련한 논란이 도시와 민간 교류에까지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 중론이다. 경주의 시민단체 관계자는 “위안부, 독도 등 문제로 한일이 껄끄러운 관계에 있지만 경제는 경제, 외교는 외교, 역사는 역사대로 별도로 풀어나가면서 도시 간 민간교류만은 반드시 확대해야 한다”면서 “순수한 인도주의적 차원의 지원을 확대 해석해 마녀사냥식으로 몰아가는 것은 국익을 위해서도 좋지 않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에 일본 자매·우호도시에 지원한 방호복과 방호안경은 경주시가 원전 소재도시로서 비축하고 있던 것으로, 유효기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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