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가면서 마음속에 다시 새겨지는 우리 속담이 있다. 먼저 ‘급할수록 돌아가라’다. 급해 죽겠는데 돌아가라니 이 무슨 궤변인가? 중요한 약속이 있는데 시간이 늦게 되면 우리는 평소에 가지 않던 샛길을 알아보거나 과속을 하게 된다. 같은 샛길을 찾아서 가더라도, 그리고 같은 과속을 하더라도 우리 마음에 여유가 있을 때와 여유가 없을 때는 큰 차이가 있다. 마음에 여유가 없는데 낯선 길을 가거나 과속까지 하게 되면 여러 가지 탈이 나게 마련일 것이다. 업무 때도 마찬가지다. 일정을 맞추기가 어렵다거나 어떤 일을 꼭 해야 하는데 뭔가가 부족할 때 우리는 편법을 생각하게 된다. 큰 사업을 하시는 분으로 평소에 뵐 때 꽤 영민하신 분이구나 하고 생각했던 분이 있었다. 그런데, 그 분이 갑작스레 연락을 해 통장이 신고로 막혔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으신다. 알고 보니, 큰 사업을 앞에 두고 사업 자금이 조금 모자랐던 이 분이 급한 마음에 돈을 쉽게 빌려 준다는 곳에 통장을 빌려 줬다는 것이다. 그 밖에 잠깐의 궁함을 한 번에 해결하려고 회사 돈에 손을 대거나 도박에 빠지는 경우도 봤다. 이 모두 평소라면 생각하지도 않았을 샛길을 급히 간 것이리라. 급할 때 돌아가는 길은 우회하는 길이 아니라 정도(正道)인 것이다. 그 다음으로 마음에 새기는 속담은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이다. 딸 둘을 키우고 있는데, 그 두 딸이 그렇게 다를 수가 없다. 둘째는 어쩌면 이런 애가 있을까 할 정도다. 팔푼이가 좀 되자면 맛있는 간식을 보면 첫째는 딴 사람들이 먹기 전에 먼저 달려드는 반면 둘째는 하나를 먼저 집어 “할머니 드셔 보세요” 한다. 숙제를 미루면 큰 일 나는 줄 알고 늦게라도 꼭 하고야 만다. 휴대폰보다는 책을 가까이 한다. 보고 있자면 예쁨이 넘쳐흐른다. 반면 첫째 놈은 경주말로 하자면 털팔이도 이런 털팔이가 없다. 음식을 먹을 때는 꼭 흘리고 먹는다. 큰일을 보고 물을 안 내리는 경우도 많다. 걸음을 걸을 때는 쿵쾅거리며 걷는다. 잔소리하자면 하루 종일 붙어서 해야 할 정도다. 그 뿐인가? 휴대폰 게임 좀 그만하라는 말을 달고 살아야 한다. 휴대폰 사용 시간을 좀 통제해 보려고 휴대폰 시간 통제 앱을 깔아 줬더니 그 녀석이 맘대로 지워버려서 크게 혼내기도 했다. 열불이 난다. 그런 첫째 놈을 볼 때마다 나 스스로 다짐하는 말이 바로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자’다. 24시간 화만 내고 있을 수는 없으니 아주 자그마한 예쁜 짓을 하면 이 말을 새기며 침소봉대해 간식이라도 주며 달래고 있다. 친소관계를 떠나 공평·공정하게 일을 처리해야 하는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에게 편견을 가지면 안 되겠지만, 그래도 나도 사람이다 보니 좀 더 친한 사람이 있고 덜 친한 사람이 있고 보기만 해도 싫은 사람이 있다. 나와 친한 사람이 내게 하나를 부탁하면 하나를 더 주고 싶고, 나와 불편한 사람이 내게 뭔가 하나를 부탁하면 이 빠진 것을 주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아닌가? 그때마다 나는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자’를 되새긴다. 그렇다. ‘미운 놈’에게는 ‘떡 하나’를 더 줘야 한다. 그래야 내가 마음을 주고 있는 ‘고운 놈’과 공평해지는 것 아니겠는가? 경주시가 자매결연 도시에 방역용품을 지원한 것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은 모양이다. 마음으로부터 내키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그런 나라도 있을 수 있다. 더구나 우리가 보기에 미운 짓만 골라하는 사람이 총리인 나라야 더 그럴 것이다. 그런 사람, 그런 나라를 보지도 않고 가지도 않고 살 수 있으면 어떻게 하던 무슨 대수겠는가? 그러나 우리 인생이라는 것이, 국제관계라는 것이 그럴 수 없을 때가 많을 것이다. 혈연으로 얽힌 가족일 수도 있고, 매일 얼굴을 맞대야 하는 회사 동료일 수도 있고 이래저래 왕래가 빈번한 이웃나라일 수 있다. 아예 안 보고 살 수 없다면, 더구나 그 관계가 사적 관계가 아닌 공적 관계라면 미운 놈에게 떡 하나 더 줘 놓는 것이 상책일 수 있다. 매일매일 얼굴을 보는 사이인데 으르렁 대고서만 살 수는 없지 않겠나?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생각으로 생글생글 웃으며 대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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