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지리지』에 의하면 경주부 동경관(東京館) 객사(客舍) 서쪽에 의풍루(倚風樓)가 있었다고 전한다. 의풍(倚風)은 표면적으로 난간에 기대어 풍광을 감상하는 듯 연상되지만, 망국의 한이 서린 담긴 어구(語句)로도 활용된다.
객사는 객관(客館)이라고도 불리며, 『고려사』에 충렬왕 5년(1279) 8월에 객관을 지었다고 전한다. 사신의 숙소로 사용되었고, 조선에 이르러 전패(殿牌)를 모셨으며 1776년 당주(鐺洲) 박종(朴琮,1735~1793)은 이곳에서 「신라십무(新羅十舞)를 관람하는 등 객사에서 연회도 가졌다.
의풍루는 현재의 모습을 보기가 어렵고 다만 고전에 전하는 글로 그 존재를 짐작한다. 가정(稼亭) 이곡(李穀,1298~1351)은 「계림부공관서루시서(鷄林府公館西樓詩序)」에서 “내가 동경(東京) 객사에 이르러 동루(東樓)에 올랐지만 별로 아름다운 경치가 없고, 서루(西樓)에 오르니 자못 장대하고 탁 트여서 성곽과 산천을 한눈에 다 볼 수 있었다. 삼장법사(三藏法師) 선공(旋公)의 크게 쓴 의풍루(倚風樓) 석 자가 있고, 제영시(題詠詩)는 없었다.(余至東京客舍 登東樓 殊無佳致 迺陟西樓 頗壯麗軒豁 城郭山川 一覽而盡 三藏法師旋公 大書倚風樓三字 而無題詠者)”며 의풍루의 탁 트인 조망에 대해 언급하였고, 의풍루 현판은 『임하필기』제11권,「문헌지장편(文獻指掌編)·전조(前朝)의 궁전(宮殿)」이 뒷받침한다.
사가 서거정(1420~1488)은 1462년 「동헌기(東軒記)」에서 “객관이 누추하고 좁고, 비록 의풍루 한 채가 있으나, 올라가 조망(眺望)하며 답답한 심회를 시원히 펴기에는 부족하였다. 이것이 이 고을의 큰 결점이었다”며 객사의 초라함을 아쉬워하였고, 이후「경주부객관중신기(慶州府客館重新記)」를 통해 객사를 고쳐 지은 연유를 설명하였다. 선공은 고려의 선승(禪僧) 순암(順菴) 조의선(趙義旋)을 말하며, 원(元) 황제로부터 ‘정혜원통(定慧圓通) 지견무애(知見無礙) 삼장법사’의 호를 받았다. 큰 글씨를 잘 썼던 조의선은 천태교학(天台敎學)을 크게 선양하며 현오대선사(玄悟大禪師)로 불리며, 권문세가의 세속적 신분을 버리고 출가하여 원과 고려의 대찰(大刹)에 주석하면서 많은 불사를 일으킨 인물이다. 이처럼 의풍루 높은 누대에 올라 천년고도를 굽어보는 그 즐거움이 짐짓 크지만, 아쉽게도 동경관은 1552년 화재로 소실되었다.
계림부윤 제정(霽亭) 이달충(李達衷,1309~1384)의 「倚風樓」,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의 「奉寄雞林尹河壯元」, 송당(松堂) 조준(趙浚,1346~1405)의 「次鷄林倚風樓詩韻」, 별동(別洞) 윤상(尹祥,1373~1455)의 「次慶州倚風樓韻」,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1431~1492)의 「送洪府尹兼善」, 사가 서거정의 「次韻慶州倚風樓」,「送梁中樞順石出尹慶州四首」, 창설재(蒼雪齋) 권두경(權斗經,1654~1725)의 「東都尹權子定以鎭求次李稼亭倚風樓韻 成一律却寄」등 고려·조선의 문인들이 의풍루를 읊조린 작품이 산재해 있다.
특히 서거정은 1462년 당시 의풍루를 직접 목격한 인물로 객사의 서루 의풍루에 올라 차운시를 남겼고 중수 기문도 지었다. 게다가 경주가 주(州)가 된 것이 고려 때부터라면 이미 5·600년이 지났고, 이 고을에 부임했던 관리 가운데 어진 이가 몇이고, 유능한 이가 몇이었는데, 어찌 부서지고 무너진 것을 수리한 이가 한 사람도 없어서 이 지경이 되었는가? 한탄하였다.
1385년(우왕11) 계림부윤을 지낸 이달충은 1326년(충숙왕13)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좨주(成均館祭酒)를 거쳐서 전리판서(典理判書)·감찰대부(監察大夫)를 역임하였고, 1359년(공민왕8) 호부상서로 동북면병마사, 1366년 밀직제학(密直提學)을 역임한 훌륭한 목민관이었다. 그는 동경관 의풍루에 올라 옛 신라를 다음과 같이 애상하였다. 의풍루 시는 『경주지』와 『동문선』에 실려있다.(倚風樓見慶州誌及東文選) 當時自謂小中華 당시 소중화(小中華)라 불린 신라半月城空鎖晩霞 텅 빈 반월성 저녁노을에 잠겼네里有苔碑金佛刹 고을엔 이끼 낀 비석과 금불 사찰이 있고境連蓬島玉僊家 지세는 봉래산 신선의 집과 연결되어 있네北川水落灘聲咽 북천 물이 줄어드니 여울 소리 오열하고西嶽雲奔雨脚斜 서악 구름 달리니 빗발이 비스듬히 날리네一瞬興亡多少事 한순간의 흥망이 얼마나 많았던가? 憑軒朗詠岸烏紗 오사모 쓰고 난간에 기대어 읊조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