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감정을 가지고 있고, 생각을 하는 존재이다. 인간만이 감정을 가지고 있고, 생각을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이 가진 감정과 생각은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세계를 추구하게 만들어 창의적인 고도의 문명발전을 이루어왔다.
특히 사후세계에 대한 두려움은 신에 대한 외경을 불러일으키며 인간을 더욱 겸손하게 만들고,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하는 교육적인 존재임을 부각시킨다. 이런 측면에서 국가가 주도하는 평생교육은 단순한 기술과 예능을 배우는 단계를 넘어선 개개인의 정체성과 인간존재에 대한 철학적이고도 교육적인 논의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
평생교육이 성인교육이라는 약간의 소극적 의미로 볼 때 교육의 사각지대였던 노인교육이 사회복지와 결합되어 평생교육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 중 어르신유치원이라는 이름으로 인원을 모집하고 있는 홍보물이 눈에 많이 뜨인다. 평생교육과 선진적인 사회복지의 결합으로 낮 시간동안 돌봄의 사각지대에 있는 어른신들을 잘 돌보기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이기도 하고, 프로그램 그 자체의 이름이기도 하다. 아이들을 어린이집 혹은 유치원에 맡겨놓는 시스템에서, 대상을 바꾸어서 낮 시간동안 돌봄이 필요한 부모들을 위해 끼니를 챙기고 정서를 교감하며 재활과 건강증진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굳이 설명을 곁들이지 않더라도 어르신 유치원이라는 이름에서 의미를 유추해볼 수 있어서 어느 사이엔가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명칭으로 굳어져 가는 것 같다. 필자는 지면을 빌어 이 프로그램과 그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시스템에 관련한 문제를 제기하기보다는 어르신유치원이라는 명칭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보고자 한다.
유치(幼稚)는 어리고 미숙하기 때문에 계몽과 돌봄이 필요한 매우 수동적인 학습자의 역할이 기대된다. 교육과 돌봄을 필요로 하다는 결정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러한 뜻을 가진 유치원과 어르신이라는 단어가 조합되는 것에 어색함과 불편함을 말하고자 한다.
유치원은 학령 미달의 어린이를 보육하여 심신의 발달을 도모하는 교육시설)로 교육법에 의한 학교의 하나이다. 어르신유치원에서 관리하는 대상은 어린아이들처럼 심신미약 등의 이유로 돌봄을 받아야 할 대상으로만 봐서는 안 되는 분들이다. 그런 시설이라면 요양원등이 운영되고 있다.
한때는 10대였고, 20대였고, 30대였던 그분들은 현재는 바로 우리들의 미래의 모습들이다. 40대, 50대, 60대까지 비록 이름 없는 국민으로 한 구성원에 불과할 뿐이기는 했지만 격변했던 대한민국의 산증인들이고 오늘의 대한민국발전의 중심축에서 굳건히 자리를 지킨 민초들이다,
역사의 앞자리에 서서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거나, 혹은 역사적 사건에서 희생이 된 분들만 역사의 주축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름 없이 모든 것을 견뎌 낸, 농사꾼으로, 회사원으로, 혹은 많은 직업의 현장에서 버텨준 사람들, 그리고 부모의 모습으로 자녀를 키워낸 그들은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의 밑거름의 역할을 한 분들이다.
현재 경제적 주체에서 밀려나 있고 가족들이나 사회를 위한 정신적, 육체적 버팀이 되는 상황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미숙한 아이들을 가르치는 유치원이라는 이름으로 어르신들을 모시는 과정에 대해 심사숙고를 할 필요가 있다.
이름은 중요하다. 이름은 정체성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한자어문화권에 있는 우리는 뜻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한다. 어르신이라고 이름을 붙인 이유를 생각해보면 이름이 이름만이 아닌 그들이 한평생 쌓은 것들로 인해 이루어진 현재를 감사해야 하며 후세대가 배워야 할 존재들이란 것을 기억하기 위해서이다. 프로그램의 구성원으로서만이 아니라, 돌봄의 기능을 넘어서서 그분들의 감정과 생각이 드러나는 ‘어르신’의 정체성이 살아있는 합당한 명칭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우리 모두가 머지않은 시점에 ‘어르신유치원’에 기꺼이 입학하길 원한다면 그 이름을 그대로 써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