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에 국립경주박물관은 “선비-고도(古都)를 읊다, 조선시대 한시로 본 경주” 특별전을 개최한 바가 있으며, 조선시대 선비들이 남긴 48편의 한시와 6편의 기행문을 통해 경주의 조선문화와 유람지로서 경주를 조명하였다.
필자는 2017년도 『동양한문학회』 KCI논문에서 “조선시대 경주지역 유람(遊覽)과 유기(遊記)의 특징 고찰”을 발표하며 경주와 조선의 연결고리를 기행문에서 찾고자 시도하였으며, 선애경 문화전문 기자의 ‘경주오디세이’를 통해 3부작으로 상세소개 되었다. 민선 7기 주낙영 경주시장은 2019년 경주시의 시정운영 방향을 ‘경제 살리기와 역사문화관광도시 위상 회복’으로 정하고 경주 미래 천년의 힘찬 도약과 새로운 변화를 주장하였다. 이른바 경주는 국내를 벗어나 세계적인 관광지 경주, 수학여행지 경주, 불국사·석굴암이 있는 경주 등 문화관광지 경주로 그 명성이 자자하다.
앞서 신라의 화랑과 고려의 벼슬아치 그리고 조선의 많은 선비들이 세월을 거슬러 신라의 웅장한 무덤과 원사정재, 첨성대와 안압지, 폐허가 된 궁전과 아름다운 사찰, 남산과 포석정, 토함산과 동해바다 등 정제된 언어로 옛 사건과 선현의 일을 상세히 기록하였다. 이렇듯 명소로 거듭난 경주는 시대를 초월해 많은 이들이 다녀가면서 수많은 기록유산을 남겼다.
경주를 배경으로 기록된 수많은 유기작품은 산수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으며, 서로가 다른 유람배경을 안고 동경(東京:경주)으로 유람을 떠났다. 이들이 유람 중 보고 들은 모든 것이 경주를 대변할만하였으며, 주관적으로 서술된 유기이지만, 내용면에서는 객관적인 시각으로 경주를 보려고 노력하였다.
옛 신라의 문화유적 불국사․백률사 등 곳곳에 산재한 융성한 불교의 문화를 보고, 월성․첨성대 등을 중심으로 사방에 이어진 찬란한 문화와 역사의 숨결을 체험하였으며, 옥산서원․인산서원 등 도통연원의 근원지를 둘러보며, 문인으로써 입지와 정체성을 확립하였다. 특히 식산 이만부(1664~1732)의 「동도잡록」, 석당 김상정(1722~1788)의 「동경방고기」, 강와 임필대(1709~1773)의 「유동도록」, 당주 박종(1735~1793)의 「동경유록」, 지촌 박이곤(1730~1783)의 「유동경록」 등은 경주지역을 대변하는 체계적이면서 지침서격 유기로써, 절목화․일정별․항목별 등 다양한 글쓰기방식이 활용․향유되었으며, 다분히 객관적으로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의도적 글쓰기방식을 활용한 조선후기 유기의 보편적 서술방식이 표면화되었다. 또한 이들 유기들은 다양한 각도에서 경주 구석구석을 바라보았고, 역사․문화․민속 관련 중요한 사료 역할을 하며, 경주지역 유기의 확대와 보편화 등 타인의 유기작품 양상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동경잡기(東京雜記)』권1,「산천(山川)」에 고려시대 문인 김극기(金克己)가 읊조린 「불계시(祓禊詩)」에 “금년 봄은 맑게 개인 날 적으니, 열흘 장맛비에 강물이 뒤집혔네. 홀연히 씻은 듯 구름 걷히고, 남산에 얽힌 푸른 능선이 드러나니 즐거워라. 월정교 어귀로 흘러 내려가, 놀란 물결 부서지며 옥처럼 울리네. 엄장루 아래 점점 아득히 넓어지니, 잔잔한 물결 평평한 모래는 화려한 촉나라 비단을 펼친 듯. 낙읍의 제생 십 일만 명, 물가에서 불계하니 어깨 서로 닿는구나.(濕蟄少開霽 十日愁霖如倒河 忽喜陰雲淨似掃 南山萬朶開靑螺 … 走向月精橋口過 驚瀾崩碎響鳴珂 嚴莊樓下漸汗漫 浪息沙平鋪蜀羅 洛邑諸生十一萬指 臨流祓禊肩相磨)”월정교(月精橋)와 엄장루(嚴莊樓)가 등장한다.
불계(祓禊])는 재액(災厄)을 떨어버리는 일로 춘계(春禊)라 한다. 옛날 곽우(郭虞)라는 사람이 3월 3일 상신일(上辰日)에 두 딸을 낳고, 상사일(上巳日)에 딸 하나를 더 낳았는데, 세 딸을 모두 기르지 못하였다. 세속에서 그날을 꺼리어, 3월 상사일이 되면 동류수(東流水) 가로 나가 신에게 기도하고 따라서 유상곡수(流觴曲水) 놀이를 했다고 전한다. 엄장루 아래 펼쳐진 모래사장은 무늬가 고운 촉나라 비단처럼 아름답고, 남송 오증(吳曾)의『능개재만록(能改齋漫錄)』권15에 “뒤에 경사(京師)로 돌아와 장마철이 지나자, 오와 절강의 비단은 모두 색이 변했으나, 오직 촉나라 비단만이 예전과 같았다.” 또 『촉금보(蜀錦譜)』에 “촉나라와 제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좋은 비단이 많이 났다고 한다.” 며 문천의 풍경이 어떠하였는지 짐작이 간다. 엄장루는 문무왕 때 남악(南岳)에서 암자를 짓고 농사일에 힘쓴 승려 엄장(嚴莊:『삼국유사』「감통」편 광덕엄장)과 관련이 있다.
이렇듯 기록은 당시의 모습과 풍습을 회상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가 된다. 그 옛날 문천(蚊川:汶川) 가에 즐비한 누각과 아름다운 모래사장의 찬란한 물결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으니, 상상해보라! 월정교 엄장루 아래로 흐르는 문천의 맑은 물줄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