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도 모르게 힐링 돼 돌아오는 동네가 경주도심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명활산이 병풍처럼 감싸고 마을 옆으로 드넓은 보문들이 펼쳐져 있으며 바로 지척에는 신라 26대 진평왕릉과 보문사지, 명활산성, 신라왕경숲 등과 연접해있는 보문동 ‘숲머리마을’이다. ‘숲머리’는 수머리(數머리 혹은 숫머리)로, 오리수(五里數)라는 숲이 시작하는 곳에 자리잡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며 옛날에는 주막이 있었다고 전한다. 보문동 ‘수머리’는 강싱이, 봉각단, 곡각단, 능각단, 양지말 등과 함께 자연마을 중 하나다. 숲머리마을은 보문관광단지로 가는 초입에서 오른쪽 샛길로 들어서는 동네다. 보문행 버스 10번, 100번, 150번을 타고 숲머리정류장에 내리면 바로 이 동네에 도착할 수 있는데, 도롯가 양쪽에는 짧은 개화를 마치고 수명을 다해가는 듯 분홍 꽃비가 하늘거리는 포물선으로 낙화하고 있었다. 명활산성과 진평왕릉 사이의 집들 모두 ‘숲머리길’이라는 도로명을 가진 이 동네 양 옆 대로변에는 경주숲머리음식촌이 도열해 있고 사이사이 몇 곳에는 크고 작은 카페들이 들어서 있다. 보문동 ‘숲머리마을’이라고 하면 언뜻 보문 진입로 식당가를 떠올리는 이가 많을 것이다. 실상 식당가는 대로변 주위로 길다랗게 이어져있고 상가들 바로 안쪽으로는 오래된 토박이들과 새로 정착한 이들이 살고 있는 한옥주택이 대부분이었다. 상가와 주택들로 이뤄진 마을이었지만 상흔보다는 훈훈한 인심이 조용한 이 마을에 더욱 정감있게 스며든 곳이었다. 특히 이 마을은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한다. 마을 뒤로는 뚝방길이, 앞쪽으로는 신라왕경숲이 80여 채 한옥 주택을 에워싸고 있는 것이다. 뚝방길 위에서 내려보는 숲머리마을은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4월의 모든 은총이 이 마을에 쏟아지는 듯한..., 텃밭 일구는 할아버지와 놀아달라고 보채는 손자가 함께 있는 봄날의 텃밭은 그대로 한폭의 풍경화다. 봄빛이 제법 따가운 날, 김밥 사들고 보문동 뚝방길 산책로 벤취에서 이 마을 스케치를 시작했다. 자 이제, 보문동 숲머리마을 여행을 시작한다. -‘숲머리음식촌’과 카페들...각종 한정식과 다양한 메뉴의 식당촌, 현대식 한옥에서 즐기는 커피 한 잔 이 동네 앞쪽 대로변은 거의가 식당들과 카페다. 각종 한정식을 시작으로 다양한 메뉴의 식당촌과 카페들이 곳곳에 형성돼 있다. 고색한 한옥음식점들이 밀집해 있으니 취향대로 식당을 고르면 된다. 이곳에서 배불리 식사 한 끼를 즐겼다면 커피 한 잔 들고 바로 뒤편 뚝방길에 올라 봄 기운 가득한 개울가를 산책해 보길 바란다. 뚝방길에서 내려다보는 숲머리마을 한옥 지붕들의 맞닿은 처마 선들은 기가 막히다. 더불어 이 동네 속살을 보기 위해선 골목에 잦아들어 한 바퀴 돌아도 좋을 듯하다. 숲머리 음식촌의 주요 식당을 몇 곳을 둘러보았다. 기와골 맷돌순두부, 이조한정식, 행복한세상, 무청시래기찌개정식, 토함 한정식, 나연 한식집, 달개비 옛날불고기돌솥밥집, 숯불돼지고기집 산해, 참숯생오리구이집, 전통맷돌순두부 옛고을 토속순두부 등의 식당이 도열해있다. 이 중 ‘전통맷돌순두부’는 20년 전통의 순두부집이다. 골목 안 끝집 ‘산해’는 주인장이 살던 옛집을 식당으로 개조한 것으로 돼지석쇠구이를 전문으로 한다. ‘아리랑’은 토종닭으로 닭 샤브샤브 코스요리를 내어 놓는 집이다. 한편, 카페 인 그리고 통, 까페 비천, 커피점 뭉클, 커피와춤을추는남자 등은 카페들이다. 카페 ‘커피와춤을추는남자’는 현대식 한옥으로 지어진 깔끔한 외관과 예스러움을 자랑한다. 커피집 아래층에는 한식집도 있다. ‘카페 인 그리고 통’은 세련된 외관과 인테리어를 뽐내는 곳으로 커피도 마시고 밥도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카페 ‘비천’은 커피와 절묘하게 잘 어울리는 수제초콜릿의 진한 맛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이 카페는 유독 단골 매니아 층들이 많이 찾는 입소문난 카페다. 이들 사이로 눈에 띄는 오래된 구멍가게가 하나 있다. 그 가게에는 유난히 1980~90년대 출시된 과자들이 많았다. 가게 한쪽에 놓인 둥근 테이블에는 이 동네사람으로 보이는 주민이 막걸리 한 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세월을 거슬러 가는 듯한 구멍가게였다. 이 마을은 주말엔 사람들이 장사진을 쳤지만 최근엔 이곳도 코로나19를 피할 수 없다고 한다. -‘신라왕경숲’...이 마을 속살 중 가장 빼어난 풍광 자랑 구황동에서 시작돼 숲머리마을까지 이어지는 ‘신라왕경숲’은 잘 드러나지 않지만 이 동네의 속살 중 가장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이 숲은 신라시대에 왕경지구의 하천 범람을 막기 위해 명활산성부터 분황사까지 이어지는 5리(약2km)의 구간에 자연 치수를 위해 조성된 숲을 재현한 것이다. 5리 길이로 조성한 숲이라 해서 ‘오리수’라 불렀다고 전한다. 신라왕경숲이 이어지는 숲머리 음식촌의 ‘숲머리’라는 지명도 그 일대가 오리수가 조성되었던 곳이라 유래한 것이라 한다. 분황사 인근인 구황교 쪽에 1차로 숲이 조성되었고 숲머리 음식촌 인근에 2차로 숲이 조성되었는데 경관이 좋고 한적해 산책하고 피크닉하기 최고다. -‘숲머리 뚝방길’...2㎞ 농수로 따라 500여 그루 붉은 겹벚꽃이 자지러지게 피는 길 숲머리마을 음식촌 뒤편에 농사용 수로를 따라 길다란 둑이 있다. 그 둑 위를 거닐 수 있는 오솔길이 있다. 명활산성과 진평왕릉을 잇는 약 2km 구간의 ‘숲머리 뚝방길’이 바로 그것이다. 봄이면 2㎞ 호젓한 길을 따라 찔레꽃이 별처럼 환하게 농수로 주변을 밝힌다. 또 500여 그루 붉은 겹벚꽃은 가지가 휘도록 자지러지게 피어 도심의 벚꽃이 허무하게 낙화한 뒤의 허전함을 채워주는 아름다운 길이다. 시에서는 이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위해 지난 2018년 10월 이 길을 대대적으로 정비했다. 약 2킬로미터 구간에 목교 등을 설치해 보다 쾌적한 환경에서 산책길을 만끽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숲머리음식촌에서 식사 후 산책 즐기기에 딱 좋은 위치다. -“이 동네는 상가 포함해서 약 80여 가구쯤 될 겁니다” “필지를 나눠 동네 어르신들이 심지뽑기를 통해 분양 받았다고 해요” 이 동네도 1970년대 후반에 조성된 여타 한옥지구처럼 반듯하고 시원스런 골목이었다. 한 골목 끝집에서는 마당 단장이 한창이었다. 이 동네서 태어나고 지금껏 살고 있다는 주인은 이곳 토박이었다. “원래는 이 동네 전체가 논이었다고 해요. 보문들판의 연장선이었던 거죠. 이 동네는 상가 포함해서 약 80여 가구쯤 될 겁니다. 그 중 상가가 20여 가구고 나머지는 일반 주택이지요. 우리 마을은 바로 옆이 보문들판이지만 시내권이라는 느낌이 강하지요. 2년전 뚝방길이 정비돼서 마을 환경이 더욱 좋아졌어요. 요즘 벚꽃 피니까 사람들의 발길이 더욱 잦아졌고요” “지금의 ‘기와골맷돌순두부’ 식당 자리가 예전에는 방앗간이었다고 합디다. 거기에 집이 한 채 있었고 나머지는 전부 논이었던 거죠. 1970년대 후반 박정희 대통령 시절 보문관광단지 개발과 관련해서 입구 마을로 조성됐습니다. 답(畓)을 주택지로 변경한 뒤 필지를 나눠 동네 어르신들이 심지뽑기를 통해 분양을 받았다고 해요. 운이 좋았던 어르신들은 도로가에 있는 필지를 분양받을 수 있었지요. 공평했지만 집의 위치가 달라졌고 시세도 달라지는 결과가 나온거죠” -“이제는 유입된 인구가 더 많아요” “정말 살기 좋은 마을이에요. 경주시내 이런 마을은 없을 겁니다” 이 동네 주요 큰 도로가는 현재 도로확장 공사중이었다. 또 숲머리경로당을 끼고 있는 동네 한복판 골목도 소방도로로 정비할 계획이어서 현재 보상을 마쳤거나 보상중이라고 한다. 상가 안쪽 골목에서 만난 주민들은 밝고 친절했다. “이 도로공사가 끝나면 주요 도로변에는 더욱 많은 상가가 들어설겁니다. 이제는 유입된 인구가 더 많아요. 저희도 몇 년전 이 동네 들어왔어요. 정말 살기 좋은 마을이예요. 경주시내 이런 마을이 없다고 봐요. 1970년대 후반 한옥들이지만 살기 편리하도록 리모델링 해서 사는 집들이 많아요” 주민의 말이다. 40년 동안 이 동네서 살았다고 하는 한 어르신은 “원래 이 동네는 상업지역이어서 특별하게 일반 가정집도 농촌민박이 허용돼요. 펜션을 운영하는 집도 있어요. 점차 상업하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욱 늘어날 전망이라고 해요”라고 했다. 작은 유모차를 개조한 이동기구에 호미와 씨앗 자루를 옹기종기 싣고 가는 할머니를 만났다. 자식들 이 동네에서 다 키우고 이제 할아버지마저 떠나보낸 할머니는 허리가 굽어졌다. 집 근처 텃밭에 씨앗 뿌리고 오는 길이라며 “영감 떠나보내고 나 혼자 살아. 하하” 크게 웃었지만 여운은 쓸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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