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랑[黃], 파랑[靑], 하양[白], 빨강[赤], 까망[黑]의 5가지 색은 한국의 전통 색깔로 굳은지도 오래다. 이를 오방색이라 하며, 방향으로는 각각 중앙, 동쪽, 서쪽, 남쪽, 북쪽을 가리키고 계절로는 4계절, 봄, 가을, 여름, 겨울을 뜻한다. 사람에 견주면 몸, 눈, 코, 혀, 귀에 해당한다. 우리에게 봄은 왔으나 봄 같지 않은 이 봄에, 봄의 꽃을 피우려는 이들이 오방색을 방불케 하는 색색의 현수막을 내 걸었다. 옷차림까지 깔 맞춤하여 산지사방 ‘똘마니’처럼 허리를 굽신대고 다닌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 임하는 후보자들의 모습이지만 왠지 색다른 ‘똘마니’라는 느낌이 확 다가온다. “똘똘한 나를 마카다 찍으면 니 좋고 나 좋다”
경주에서 총선공약의 단골 메뉴는 무엇이었을까? 줄기차게 외친 말은 “경주시민의 머슴 같은 일꾼이 되겠다”, “경주를 살기 좋게 확 바꾸겠다”로 좁혀진다. 시민에게 묻고 싶다. “20년, 10년, 아니 4년 전보다 경주가 확 바뀌었나요?” 이번 총선에도 무려 7명이 도전하여 제각기 경주를 발전을 이끌 적임자라며 한목소리이다. 이미 국회의원을 한 분이 3명 이며, 1명은 재도전, 나머지는 첫 도전자이다. 이분들께 감히 질문을 던져 본다. “과연 그동안 살면서 경주를 위해 무엇을 하였습니까?”
경주의 정체성이자 시민을 자랑스럽게 하는 것은 역사와 문화라 할 수 있다. 경주의 수많은 현안을 뒤로 하더라도 이 역사와 문화를 위해서는 어떤 일들을 해왔는지 묻고 싶다. 부처님은 상응부경전(相應部經典)에서 “이것이 있으면 곧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면 곧 저것이 생기고 이것이 없으면 곧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하면 곧 저것이 멸한다” 고 설파하였다. 연기법(緣起法)으로 일컬어지는 이 말씀은 과거의 행적과 지금의 활약이 앞날을 예견한다는 의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 시민은 과거를 거울삼아 더 나은 미래를 열어 갈 재목을 고르는 것이 총선에서의 역할이다.
경주는 신라가 약 천 년에 이르는 동안 한 곳에서 나라를 경영한 왕도(王都)이다. 따라서 문화유산 분포지수가 단연 1순위라 한국역사의 보고(寶庫)이다. 역사의 자양분으로 형성된 문화 또한 ‘양반’에 속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경주를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국내외에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 뛰어든 분들의 공약을 보면 형식적이라 실현 가능한 약속이 부족하다. 면면을 보면 “보존할 곳은 확실히 보존하고 개발할 곳은 확실히 개발하겠다. 문화관광도시 1번지, 경주의 자존심을 회복 하겠다”거나 “역사문화특별시를 추진하겠다. 관광청을 신설하여 유치하고 신라왕경 복원사업을 안정적으로 추진하겠다” 고 말하고 있다. 또 “경주를 세계관광문화중심 허브로 탈바꿈시키겠다. 신라문화제를 세계인의 축제로 격상하고 관광전문 고등학교 및 대학교를 세우겠다”, “세계로 향한 역사문화도시 경주의 씨앗을 길러내겠다. 대릉원 담장을 허무는 등 걸어서 경주관광을 하겠다”, “동남권(해오름동맹) 관광 허브도시를 만들겠다. 신라왕궁 재현단지를 건설하겠다”, “신라왕경 복원사업을 추진하겠다” 미흡하나마 대안을 제시한 분도 있으나 대부분 그냥 던지고 보자는 식의 구호성 일색이다. 전체 공약 중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낮으니 이것이 출마자들의 현 모습인가 싶다.
경주의 문화유산이 처한 현실을 분석하고 하는 공약인지, 경주의 문화양상을 이해하고 하는 구호인지, 경주의 관광실태를 파악하고 하는 약속인지 참 궁금하다. 1913년 경주에서 강탈해 가서 청와대 경내에 있는 불상(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 보물 제1977호)을 되찾아 오겠다는 이가 없다. 이 불상이 있었던 도지동 이거사(移車寺) 터는 논밭도 사들이지 못한 채 양해를 얻어 겨우 발굴을 추진하는 현실이다. 이밖에 경주에서 옮겨간 금관이며 불상 등 문화유산은 또 얼마나 많으며, 경주 남산을 비롯한 산과 들에 나뒹굴고 있는 문화유산이 또 얼마나 많은가. ‘문화재보호법’이든 ‘고도보존 육성에 관한 특별법’이나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ㆍ정비에 관한 특별법’ 등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이를 재정적인 뒷받침을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인 공약이 절실하다.
신라로부터 유래된 처용무(處容舞, 유네스코 세계인류무형유산)를 계승할 전승센터를 만들겠다는 이가 없다. 우리가 관심 두지 않는 사이 처용무는 오래전에 울산에서 차지하다시피 하였다. 1962년부터 시작된 신라문화제는 큰 매력 없이 아직도 비전문가인 시청 공무원 손에서 주물러지고 있는 현실이며, 경주문화를 대변하는 공공단체인 경주문화원(1964년 설립)이 제 사무실이 없어 국가(한국자산관리공사)로부터 체납된 건물사용료 6억 원을 납부하라는 독촉장을 받아 들고 벌벌 떠는데 무슨 문화를 운운할 것인가. 문화를 꽃피울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이끄는 공약이 필요하다.
수학여행지의 1순위였던 경주의 추억을 되돌려 놓겠다는 이가 없다. 불국사 지역을 비롯한 단체 숙박시설은 텅 빈 채 귀곡산장으로 변해가고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마저 발길이 뜸해졌다. 경주방문 관광객이 1990년 550만명 대비 2019년 1314만명으로 늘었다지만 과연 숙박을 하며 머무르고 가는 관광객이 얼마나 되는지 분석해 볼 일이다. 현시대의 관광 수요는 무엇이며, 이에 대한 대안 제시와 역사적 실체의 재가공 등의 공약이 필요하다.
‘똘마니’를 아시나요?. 똘마니는 명사로 ‘범죄 집단 따위의 조직에서 부림을 당하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경주시민이 원하는 국회의원은 ‘시민의 똘마니’인 것이다. 오방색의 당색만 나타낼 것이 아니라 경주의 동서남북을 제대로 살핀 뒤 진정으로 살기 좋은 오방형통(五方亨通)을 만들어 가는 똘마니가 필요하다. 당선되더라도 지금의 마음을 봄·가을·여름·겨울 쭉 이어가는 똘마니, 시민의 눈·코·혀·귀에 행복을 주는 똘마니가 필요하다. 2년 전의 TV드라마 ‘슬기로운 깜방생활’의 명대사, “충성! 저는 영원한 똘마니입니다!”처럼 시민에게 끝까지 충성을 다하는 그런 ‘똘마니’가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