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용어 중에 ‘착안대국(着眼大局) 착수소국(着手小局)’이라는 말이 있다. 대국적으로 생각하고 멀리 보되, 실행에 들어가서는 한 수 한 수에 집중하라는 뜻이다. 석굴암에 대한 글을 쓰면서 늘 이 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불국토 전체를 보여주면서 조각상 하나하나에도 빈틈이 없다.
석굴암 석굴 벽면의 십대제자상 윗단에는 본존불의 정면과 후면을 제외한 좌우에 5개씩 10개의 감실이 마련되어 있다. 이 감실은 석굴과 잘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움을 더한 동시에 공간이 더욱 확대되는 느낌을 주고 있다. 돔 천정과 아래쪽의 조각상을 연결해 주고 있는데 만약 그 자리가 모두 벽면일 경우 주실 전체가 답답하고 무미건조할 것이다. 또 일부에서는 이 감실 안쪽으로부터 환기가 됨으로 굴 내부 이슬 맺힘을 막아주기도 한다는 주장도 있다.
감실 아랫단의 본존불을 둘러싼 조각상이 모두 입상이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윗단은 모두 좌상인 보살상이다. 한결같이 기쁨에 넘쳐 부처의 공덕을 찬양하는 듯한 다양한 자세를 하고 있다.
본존불을 향하여 좌우 양측의 제1 감실은 비어 있다. 이 첫 감실에도 분명히 무엇인가 봉안되어 있었겠지만 이와 관련된 자료가 없어 확인할 수는 없다. 감실을 만들어 두고 아무것도 안치하지 않았다는 것은 완벽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석굴암의 경우에는 상상할 수가 없다. 일출 때 해가 본존불의 미간을 비추면 백호의 반사광이 이 감실 속 옥으로 만든 보살상에 비치도록 하였다는데,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반출되었을 것으로 보는 이들이 다수 있다.
이에 대해 한정호 동국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는 현재 비어 있는 감실 안에는 본존 뒤의 11면관음 앞에 있던 자그마한 오층석탑을 비롯한 두 기의 탑이 봉안되어 있었다고 주장한다. 감실 불상 도난설은 후대 지어낸 이야기라는 것이다.
본존을 향하여 우측으로부터 제2상은 연화대 위에 앉아 있는데 편안하게 앉은 모습이 자연스럽다. 얼굴과 머리 부분은 마멸이 심하여 알아보기 힘드나 보관을 썼고, 오른팔을 굽혀 위로 올리고 오른손에 든 것은 확실하지는 않으나 경권(經卷)인 듯하다. 지물이 경권이라면 문수보살일 것이다. 왼손은 자연스럽게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우측 제3상은 왼쪽 다리를 세워 그 무릎 위에 팔을 놓고 손가락을 편 손등으로 턱을 받친 채 사유하는 상이다. 오른손은 좌대를 짚고 머리에는 역시 영락이 장식되어 있고 보관을 썼다. 구슬을 꿴 목걸이를 걸치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매우 유려하고 규격을 무시한 자연스러움이 있으며, 경청하거나 명상을 하는 듯하다. 용모가 아름답고 어깨에 늘어진 머리카락 등의 모습으로 미루어 이 상을 여인상으로 보기도 하고 또는 반가사유상과 비슷한 점을 들어 미륵보살로 보기도 한다.
우측 제4상은 다른 상과는 달리 정면을 향하고 있다. 오른손은 손바닥을 펴고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펴고 가운데 세 손가락을 가볍게 굽힌 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있다. 왼손은 가슴 위까지 올려놓았는데, 그 손가락 모습은 분명하지 않으나 가운데 세 손가락을 굽히고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펴고 있는 듯하다. 이 상은 가부좌를 틀고 있는 유일한 상이다. 머리에 관을 쓰고 영락으로 장식한 모습은 다른 상과 비슷하다.
우측 제5상은 몸을 오른쪽으로 돌린 모습으로 관 · 영락 · 천의 등이 다른 상과 같지만 손가락 형태가 특이하다. 두 손 모두 새끼손가락과 넷째 손가락을 굽히고 나머지 세 손가락을 다 펴고 있으며, 오른손은 무릎과 평행이 되게 구부렸고 살짝 손목을 쳐들었다. 왼팔은 배꼽 위에 두고 손바닥을 펴고 있다. 좌측으로부터 제2상은 우측 제5상과 비슷한데 자세가 앞으로 더욱 굽어있다. 손가락은 가운데 두 손가락을 굽히고 나머지 세 손가락을 펴고 있다. 이 상은 현존하는 상들 중 좌측 제3상과 더불어 가장 선명한 선을 보여주고 있다.
좌측 제3상은 가부좌를 하고 있으며 오른손은 자연스럽게 무릎 위에 놓였고 가운데 손가락을 가볍게 굽히고 있다. 왼손은 가슴 위에 올려 보주를 들고 있고 정상에 화불이 있는 점으로 보아 관음보살로 보인다.
좌측 제4상은 원정무발[圓頂無髮, 머리를 깎아 둥글게 보이는 머리]의 가부좌상을 하고 있는데 지장보살임이 분명하다. 오른손은 가슴까지 올렸고, 왼손은 배꼽 위에 늘인 채 보주를 받들고 있으며 오른손 엄지와 가운데 손가락으로 원을 그려 보이고 있다. 정면을 응시하고 그 표정이 매우 엄숙하다.
좌측 제5상은 얼굴이 늙어 보이며, 두건을 쓴 듯하고, 장의(長衣)를 입었다. 좌대는 연화대좌가 아니라 방좌 위에 앉은 자세로 허리를 굽히고 오른쪽 다리를 세워 왼쪽 방향을 향하여 무언가 말을 하는 듯한 모습인데 유마거사로 보인다. 일부에서는 이 상이 미완성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유마거사는 재가불자이다. 불보살과는 격이 다름을 이런 형태로 표현한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