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에서는 돈 없이도 베풀 수 있는 일곱 가지를 무재칠시(無財七施)라 한다. 환한 얼굴로 상대방을 대하는 화안시(和顔施), 공손한 말로 사람을 대하는 언사시(言辭施), 몸가짐을 바르게 하여 남을 돕는 신시(身施), 편안한 눈빛으로 남을 대하는 안시(眼施), 어진 마음으로 상대를 대하는 심시(心施), 남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좌시(座施), 잠자리가 없는 사람을 재워 주는 방사시(房舍施)가 바로 그것이다. 부처님은 이 중에서 화안시를 으뜸으로 꼽으셨다. 우리나라에서 무재칠시 중 화안시를 가장 잘 표현한 불보살상이 바로 석굴암 본존불 뒷면 중앙에 있는 십일면관음보살상이다. 이 보살상을 대하면 절로 마음이 밝아지고 편안해지는가 하면 남에게 무언가 베풀고 싶다는 생각이 우러나온다. 이 보살상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 11개의 얼굴 모습을 갖추고 있다. 관음보살은 자비심으로 중생을 구제한다는 보살로, 얼굴을 여러 개로 형상화하였는데, 이것은 여러 종류의 성품을 가진 중생을 구제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석굴암 십일면관음은 9면이다. 그러나 이는 일본인이 2면을 떼어감으로써 9면이 되었던 것으로 원래는 11면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1면관음보살을 뒷받침하는 경전은 ‘십일면관음신주심경(十一面觀音神呪心經)’이다. 이 경전에는 그 형상과 의미가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11면이란, 관세음보살의 정면인 본 얼굴을 제외하고 머리 부분에 부가된 면이 11면이기 때문이다. 경전에는 두부 전면에 3면이 있고, 그 좌우에 각각 3면, 그리고 후면에 1면, 정상에 1면 도합 11면을 가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이 11면은 다방면의 기능과 양상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고 하며, 다음과 같이 각 면을 설명하고 있다. “앞의 3면은 자상(慈相)인데, 착한 중생을 보고 자심(慈心)을 일으켜 이를 찬양함을 나타낸 것이고, 왼쪽의 3면은 진상(瞋相)인데, 악한 중생을 보고 비심(悲心)을 일으켜 그를 고통에서 구하려 함을 나타낸 것이며, 또 오른쪽의 3면은 흰 이를 드러내고 웃는 모습인 백아상출상(白牙上出相)으로, 정업(淨業)을 행하고 있는 자를 보고는 더욱 불도에 정진하도록 권장함을 나타낸 것이다. 뒤의 1면은 폭대소상(暴大笑相)으로서 착하고, 악한 모든 부류의 중생들이 함께 뒤섞여 있는 모습을 보고 이들을 모두 포섭하려는 큰 도량을 보이는 것이요, 정상의 불면(佛面)은 대승근기(大乘根機)를 가진 자들에게 불도의 구경(究竟)에 관하여 설함을 나타낸 것이다” 중생의 근기에 따라 노하고 때로는 부드럽게 대하나, 늘 자비로운 웃음을 잃지 않고 그러한 모든 것들을 포용하는 크나큰 미소 속에 중생을 안주시키려는 대자대비가 충만함이 관세음보살의 면모이다. 우리 주위를 살펴보면 좋은 일을 행하고도 전혀 내색을 하지 않는 관음보살과 같은 분들이 참 많다. 최근 언론 보도를 보면 기초수급 대상자이면서도 자신보다 더 불우한 이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며 500만 원이라는 큰돈을 내놓은 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 달라며 매년 수천만 원의 돈을 남몰래 주민센터로 보낸 분, 이분을 언론에서는 얼굴 없는 천사라고 하지만 필자는 관음보살이라 믿고 싶다. 이 외에도 코로나19라는 재앙 속에서도 환자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 의료진 등 자세히 살펴보면 도처에 관음보살을 만날 수 있다.시조 시인 김상옥은 이 십일면관음상을 보고는 이렇게 노래했다.으즈시 연좌 위에 발돋움하고 서서, 속눈섭 조으는 듯 동해를 굽어 보고 그 무슨 연유 깊은 일 하마 말씀하실까. 몸짓만 사리어도 흔들리는 구슬소리, 옷자락 겹친 속에 살결이 꾀비치고, 도도록 내민 젖가슴 숨도 고이 쉬도다. 해마다 봄날 밤에 두견이 슬피 울고, 허구헌 긴 세월이 덧없이 흐르건만, 황홀한 꿈속에 쌓여 홀로 미소하시다. 필자는 이 시를 처음 대하면서 ‘조으는’, ‘사리어도’, ‘꾀비치고’ 등 아름다운 우리 말에 전율을 느꼈었다. 일부에서는 본존에 기리어져 십일면관음이 동해를 굽어본다는 표현에 거부감을 나타내기도 하나 시인은 협시보살인 관음보살이 본존의 시선을 통해 동해를 굽어보고 있다고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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