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봉에는 마치 마법사의 지팡이처럼 특별한 힘이 있다. 지휘자가 이것으로 허공을 가르기만 하면 각양각색의 악기들이 신기하게도 하모니를 만들어낸다. 어떤 단체의 대표자가 된 것을 두고 흔히 ‘지휘봉을 잡았다’라고 표현하는데, 매우 적절한 표현이다. 이처럼 지휘봉은 권력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지휘봉에 얽힌 유명한 일화가 있다. 멘델스존(F.Mendelssohn/1809-1847)은 19세기 초반 지휘봉 보급에 큰 역할을 한 사람이다. 그는 고래 뼈로 만든 명품 지휘봉을 존경하는 선배 작곡가인 베를리오즈(L.H.Berlioz/1803-1869)에게 선물했다고 한다. 가난한 베를리오즈는 후배에게 답례로 라임 나뭇가지를 주었다고 하는데, 이때 한 말이 정말 괴짜답다. “후배님, 다듬어 쓰세요!” 진짜로 나뭇가지를 다듬어 쓰는 음악가는 다름 아닌 정명훈이다. 그는 자택에 심은 올리브나무에서 나뭇가지를 잘라내어 직접 지휘봉을 만든다고 한다. 나뭇가지의 자연스러움을 그대로 보여주는 지휘봉은 조각 작품이나 마찬가지다. 그의 지휘봉은 가끔씩 자선경매에 등장해 높은 가격에 낙찰되기도 한다. 보통의 지휘봉은 막대 부분인 케인과 손잡이 부분인 핸들로 구성되어 있다. 케인은 나무나 플라스틱 소재로 만들고, 핸들은 알루미늄이나 코르크로 만든 것이 많다. 길이는 대개 50㎝안팎이다. 지휘봉이 등장한 건 19세기 초반이고, 이전에는 둘둘 만 종이 악보나 바이올린 활이 지휘봉을 대신했다. 지휘봉이 있어도 세이지(O.Seiji)처럼 맨손으로 지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게르기예프(V.Gergiev)처럼 이쑤시개만한 지휘봉을 쓰는 사람도 있다. 프랑스 오페라의 아버지로 불리는 륄리(J.B.Lully/1632-1687)는 음악사에서 가장 어이없게 죽은 사람 중의 하나다. 당시에는 큰 나무 봉을 바닥에 쿵쿵 찍으면서 지휘를 했는데, 그만 자신의 발을 찧고 만 것이다. 결국 상처가 곪아터져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지휘봉이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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