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경주박물관은 지난해 10월 말에 중단한 경주 대릉원 내 금령총에 대한 3차 재발굴조사를 상반기 내 착수할 예정이다. 호석 내부 봉토부와 매장주체부, 지난 2차 발굴조사때 새로 발견된 옹관묘 등에 대한 발굴조사를 통해 금령총의 전체 구조 및 축조기법, 새롭게 발견된 타 고분과의 관계 확인 등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된다. 금령총은 인접한 식리총과 함께 일제강점기인 1924년에 조사됐다. 당시 금관(보물 제338호), 금허리띠, 금·은팔찌 등의 장신구를 비롯해 기마인물형토기(국보 제91호), 채화칠기, 유리용기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됐으며, 출토품 가운데 특이한 금제방울이 포함돼 있어 ‘금령총’으로 불리게 됐다. 우메하라 스에지에의해 1930~1931년에 보고서가 발간됐으나, 훼손된 봉토와 적석부를 걷어내고 매장 주체부만 노출한 뒤 다량의 부장품을 수습하는 방식으로 진행돼 단 22일 만에 조사를 완료했다. 이에 국립경주박물관은 2018년부터 일제강점기에 발굴된 금령총의 미진한 조사내용을 보완하고 전체 유적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재발굴 조사를 시작했다. 조사를 통해 고분 주변의 제의 행위 및 부가시설 을 확인하고, 고분의 축조 기법 및 경관을 복원해 신라 능묘 조사에 필요한 기초자료를 확보하고 있다. 1차 재발굴조사(2018.7.2.~12.14)에서 조사단은 먼저 지하물리탐사(GPR) 및 자력 탐사를 통해 봉분 지하의 유구현황과 범위를 파악했다. 본격적인 내부 조사 결과, 일제강점기 당시 잔존한 것으로 알려진 서쪽 봉토부의 일부분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봉토부 조사 도중 일제강점기에 세웠던 석표(유적 표시석)가 발견됐다. 2차 재발굴조사(2019.4.22.~10.31)에서는 봉분 주변으로 제토 범위를 확장해 호석의 전체 양상을 밝히는 데 주력했으며, 기대와 예상을 뛰어넘은 성과를 거뒀다. 무덤 바깥면을 둘러쌓은 호석의 전모가 드러났다. 금령총의 호석은 기반 층 위에 바로 설치했으며, 2단의 계단식 구조에 너비 약 1.3~1.5m, 높이 약 1.6m 규모의 일정하지 않은 크기와 형태의 냇돌이 사용됐다. 이를 기준으로 금령총의 직경은 종래에 알려진 크기보다 8m가량이 더 큰 28m 내외로 추정되며, 기존에 지하식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관묘]으로 알려진 금령총의 구조가 지상식 적석목곽묘 구조임을 확인했다. 호석 바깥으로는 약 40cm 두께의 정지층이 확인됐으며, 흙을 다진 뒤 잔자갈을 깔았고, 그 주변에서 30여개체에 달하는 제사용 토기들이 수습됐다. 제사용 토기 안팎에는 동물 뼈(말, 소, 기타 포유류 등)를 비롯해 각종 패각류(굴, 고동, 조개류)와 뚜껑접시(개배 蓋杯), 토제방울, 유리구슬, 쇠스랑 등이 확인됐으며, 특히 말 모양 토기 1정이 출토돼 주목된다. 말 모양 토기는 높이 56cm로 지금까지 확인된 것 중 가장 크며, 일제강점기에 수습된 국보 제91호 기마인물형토기와 제작 기법이 거의 동일하다. 다만, 입을 벌리고 혀를 내밀고 있는 모습이나 얼굴과 턱, 목, 발굽 등 각 부위를 정밀하게 표현한 점, 실제 말의 비율에 가깝게 제작된 점 등은 차이를 보인다. 현재는 머리와 앞다리 쪽만 확인됐는데 등과 배 부분이 깔끔하게 절단된 듯한 흔적이 보여 의도적으로 깨뜨려 넣은 것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봉토와 호석을 갖춘 옹관묘를 비롯해 적석목관묘 2기, 소형 분묘 1기 등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무덤 4기가 새로 발견됐으며, 고분 주변의 층위 양상을 파악한 결과로는 현재 지면보다 약 2m 아래에서 5~6세기 신라 문화층이 확인되는 등 금령총 2차 재발굴조사에서 국립경주박물관은 값진 성과를 거뒀다. 국립경주박물관은 올해 조사가 마무리되면 일제강점기 조사내용을 포함한 종합 발굴조사보고서를 발간하고 그 내용을 일반에 공개하는 특별전을 개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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