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사자가 서식하지 않았으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을 통해 삼국시대부터 사자의 존재를 이미 인식하고 있었다. 사자상이 불법(佛法)을 지키기 위한 상징적 수호상으로 표현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사자의 도상과 용맹스런 기질에 대한 인식이었다. 특히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면 불교적 상징물로써의 역할을 넘어 고분 미술과 일상생활에서도 폭넓게 애용된다.
즉, 중국 당나라의 능묘제도가 도입되면서 사자가 무덤을 지키는 수호상으로 나타나며 탑의 장식품이나 불교공예품, 기와 및 생활용품 등으로 폭넓게 수용돼 사자의 장엄함과 다양함을 살펴 볼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단단한 화강암을 소재로 한 석조품에 사자상이 많이 나타나고 있으며 사사자(四獅子)석탑과 쌍사자석등은 통일신라시대부터 등장해 다른 나라에는 없는 독특한 예다. 또한 장항리 절터 부처 대좌의 사자상과 부석사 자인당 비로자나불 하대석에 표현된 사자상 등은 용맹스럽다기보다는
절로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해학미를 선보이고 있어 신라인의 미의식을 엿볼 수 있다. 이국에서 전래된 사자상이지만 우리 정서에 맞는 사자상의 이미지를 만들어낸 신라인의 조형미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본 기사는 ‘신라(新羅)의 사자(獅子), (국립경주박물관, 2006)’에서 인용하고 재구성했다. 크게 불교미술품과 능묘조각품들을 중심으로 해 특히 경주에서 만날 수 있는 사자상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불법(佛法)의 수호…불상을 수호하는 사자, 불탑을 수호하는 사자, 석조물에 표현된 사자
일찍이 불교에서는 사자가 두려움이 없고 모든 동물을 능히 굴복시키는 ‘백수의 왕’이라는 관념이 도입돼 부처를 사자에 비유하기도 했다. 불법을 수호하는 신비스런 동물로 인식된 사자상은 불교의 발생국인 인도에서 기원전 3세기경 나타난다. 서서히 불교의 동점(東漸)과 함께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도 불법의 수호자로서 사자상이 도입돼 불상의 대좌를 비롯해 불탑, 석등, 부도 등 불교와 관련된 다양한 석조물에 적극 활용된다.
-불상을 수호하는 사자...불상의 대좌에 채용돼 다양한 형태의 사자좌 제작 불법의 수호자로 도입된 사자상은 불상의 대좌에 채용돼 다양한 형태의 사자좌가 제작되기 시작한다. 불상의 대좌 하단에 사자를 표현한 사자좌는 삼국시대 불상 중에는 그 예가 드문 편이며 통일신라 후기가 되면 화엄종의 확산에 따라 화엄종 주불인 비로자나불의 대좌에 사자가 집중적으로 표현된다.
경주 남산 용장계곡서 수습된 칠사자 부처 대좌에는 7마리가 원각으로 배치되었고 상반신만을 표현했다. 남산 탑곡 마애조상군 북면, 석장사터 사자무늬전편, 안계리 절터 장방형대석, 장항리절터 부처 대좌 하대석에는 안상을 마련하고 안상 내에 사자상과 신장상을 번갈아가며 조각했는데 매우 익살스런 표정을 짓고 있으며 원숙한 솜씨로 화강암을 조각한 통일신라의 양식을 잘 보여준다.
또 호법신의 사자 장식으로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신장상 가운데 사천왕상이나 갑옷을 입은 무장형 십이지상을 보면 어깨나 배 부분에 괴수가 신체의 일부를 물고 있는 예가 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사천왕사터 출토 사천왕사전의 사천왕 어깨에 표현된 장식 문양을 들 수 있고 이는 현재 남아있는 가장 이른 예에 속한다. 또 석굴암 전실에 부조된 건달바의 사자관(獅子冠)은 사자관 중 가장 이른 예다. 감은사 동탑 금동사리함의 동탑의 외함과 서탑의 금동사리함에 괴수의 얼굴이 표현되었다. 원원사터 동서삼층석탑의 1층 탑신에는 사천왕상이 새겨져있고 그 어깨에 이빨을 드러낸 괴수의 얼굴이 표현돼 있다. 성덕왕릉 십이지상 중 원숭이상의 양 어깨와 김유신 묘 십이지상 중 말상 어깨에도 있다. 건달바의 사자관(獅子冠)은 석굴암 건달바, 숭복사터 동서삼층석탑 건달바가 있다.
-불탑을 수호하는 사자...사사자(四獅子)석탑이나 쌍사자석등은 다른 나라에는 없는 우리만의 독특한 형식 삼국시대에 이어 통일신라시대가 되면 사자상은 불상 대좌 뿐만 아니라 석탑, 석등, 부도 등 불교와 관련된 다양한 석조물에 표현되기 시작한다. 이 중 사사자(四獅子)석탑이나 쌍사자석등은 다른 나라에는 없는 우리만의 독특한 형식이다. 탑에 사자상을 배치하는 방법에 따라 탑의 기단부 등 네 모서리에 독립상을 배치하는 형식과 탑의 상층 기단부 역할을 하면서 탑신석을 받치는 사사자석탑 형식의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감은사 동탑 집모양 사리기의 기단부 네 모서리에는 사자상이 각 각 배치돼 있다. 분황사 모전석탑 석사자는 총 6구로 4구는 모전석탑의 기단부 네 모서리에 있으며 나머지 2구는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다. 불국사 다보탑 석사자는 현재 서쪽 기단 상면 중앙에 1구의 사자상이 있다. 다보탑에는 원래 4구의 사자상이 있었으나 3구는 일제강점기 때 없어졌다.
-석조물에 표현된 사자...사자 위력으로 진리의 빛을 수호한다는 믿음에서 석등의 간주석으로 사자상이 대체 통일신라 후기에는 부도(浮屠), 석비(石碑) 등 불교와 관련된 석조물이 기단부에도 다양하게 표현될 뿐만 아니라 석등의 간주석으로 사자상이 대체되어 쌍사자 석등이라는 독특한 형식이 창출된다, 부도는 선승의 사리를 모시는 탑으로 승탑이라고도 한다. 부도의 사자상은 불상 대좌에 표현된 사자상에 비해 다양하고 역동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이 많으나 10세기 이후로는 점차 생략되다가 사라진다. 석등에 사자를 장식한 것은 백수의 왕인 사자가 그 위력으로 진리의 빛을 수호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근거한다. 이외에 기타 석조물로는 창림사터 석비부 등이 있다.
-권위의 상징…능묘의 사자, 왕성(王城)의 수호
-능묘의 사자... 성덕왕릉을 시작으로 괘릉 석사자상은 세부 표현이 사실적이고 정교해 통일 신라 능묘 조각의 대표적인 작품 우리나라에서는 백제 무녕왕릉에 석수(石獸)가 등장한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중국 당나라의 능묘제도가 도입되고 능묘의 사자는 성덕왕릉(736년경)을 시작으로 이후 통일신라 능묘제도의 완성을 이룬 괘릉과 흥덕왕릉에 그 예가 남아있다. 석인상과 더불어 왕릉을 호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성덕왕릉 석사자상 2구는 서로 마주보고 있으며 봉분 뒤 2구는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괘릉 석사자상은 방형 대좌위에 앉아 2구씩 서로 마주보고 있는데 세부 표현이 조금씩 다르다.
가슴 근육이 발달했으며 세부 표현이 사실적이고 정교해 통일 신라 능묘 조각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손꼽힌다. 흥덕왕릉 사자상은 봉분의 사방에 배치하고 있다. 4구 모두 귀가 쳐져있는 것이 성덕왕릉과 괘릉 사자상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또 구정 방형분 모서리 기둥의 한쪽에 서역의 영향이 짙은 사자상이 돋을새김 되어 있다. 교동 석사자상은 원래 어디에 세웠는지 알 수 없는 사자상이다.
-왕성(王城)의 수호...사자상을 장엄해 왕성을 지키는 역할 춘양교(일정교)와 월정교는 760년경에 조성된 왕경 지구의 다리로 이 두 다리 앞에는 상단에 사자상을 안치한 높은 화표석(華表石)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화표석은 신성한 구역을 표시하는 의미로 세우는 것인데 위에 사자상을 장엄해 왕성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 춘양교터 석사자, 월정교터 석사자 등이 그것이다.
-생활의 의장…공예품의 사자, 사자무늬막새
-공예품의 사자, 사자 문양이 생활속 의장으로도 활용 통일신라시대 불교공예품 속에 등장하는 사자는 대부분 불을 수호하는 역할을 하며 향로에 주로 표현되고 있다. 분황사에서 발견된 사자추는 곡물이나 금속의 무게를 잴 때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사자 문양이 생활속 의장으로도 활용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동궁과월지의 사자 향로 뚜껑에서 사자는 바닥면의 뚫린 구멍을 통해 연기가 코, 입, 귀로 나올 수 있도록 고안했다. 통일신라 사자 중 가장 표현이 정교한 잡품으로 손꼽힌다. 분황사 사자상, 인왕동 사자상 등이 있다.
-사자무늬막새, 월성과 동궁과월지 및 흥륜사터와 황룡사터 등에서 많이 출토 통일신라의 기와 가운데 수막새와 타원막새, 마루수막새에 사자 무늬가 표현된 것이 있다. 사자는 입상(立像)과 좌상(坐像)으로 구분되는데 좌상이 수량도 많고 형식적인 변화도 다양하다. 입상은 날개가 달린 유익형이어서 서역과의 문화적 교류를 짐작케 한다. 좌상의 사자문이 배치된 수막새는 8세기 중반에 많이 만들어졌다. 경주의 월성과 동궁과월지 및 그 주변 건물인 동궁터, 흥륜사터와 황룡사터 등에서 많이 출토되고 있다. 사자무늬타원막새는 기와지붕의 회첨골(처마가 ‘ㄱ’ 자 모양으로 꺾여 굽은 곳의 지붕골)에 사용된 기와이고 마루수막새의 사자는 도식화된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