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읍성 유적발굴조사 중 조선시대 축조한 성벽에서 통일신라시대 석탑에 사용된 팔부중상(八部衆像)이 발견됐다. 문화재청, 경주시의 의뢰로 학술발굴을 추진 중인 한국문화재단은 경주읍성 동북쪽 성벽에서 신라 팔부중상 면석 3점이 기단석으로 재사용됐음을 확인했다고 21일 밝혔다.팔부중은 부처의 설법 청중을 구성하는 다양한 무리 중 하나로, 인간 이외의 다양한 존재를 일컫는 용어다. 천(天), 가루라(迦樓羅), 용(龍), 야차(夜叉), 건달바(乾闥婆), 아수라(阿修羅), 긴나라(緊那羅), 마후라가(摩喉羅伽) 등 천신, 지신과 축생, 수신, 그리고 반인반신(半人半神)이나 귀신같은 것들을 의미한다. 이번에 확인된 팔부중상 면석 3점에는 각각 1쌍의 팔부중상이 새겨져있다. 긴나라·마후라가를 새긴 북쪽, 아수라·건달바를 새겨 넣은 남쪽, 야차·용을 표현한 동쪽 부분 등 3점이 발견된 것.천·가루라를 새긴 서쪽 면석은 발견되지 않았다. 3면의 면석 너비는 75cm, 두께는 약 20cm다. 길이는 북쪽면 148cm, 남쪽면 184cm, 동쪽면166cm로 차이를 보였다. 한국문화재단 관계자는 “팔부중상 면석은 다른 나라 탑에서는 유례를 찾을 수 없고 통일신라시대 석탑에서 창안된 독특한 부조상”이라며 “8세기 조각에 비해 정교하지 못한 편이고, 천의 자락 날림이 부자연스럽고 손 모양도 변형된 점 등으로 미뤄 9세기 중반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3개 면석이 동일한 석탑에서 나온 것은 맞다”면서 “현재까지 경주지역에서 발견된 팔부중상이 새겨진 석탑 및 탑재 중 동일한 도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팔부중상이 새겨진 3개 면석은 읍성 5구간(경주읍성 향일문 및 성벽의 북쪽구간으로 북벽으로 연결되는 구간)의 성벽에 덧대어 있는 치성의 가장 아래인 기단석으로 사용됐다. 5구간에서 치성은 현재 1개소만 확인됐는데 최근까지 주택이 있었던 자리로 기초석과 기단석 정도만 남아있다. 또 면석은 치성 기단의 북쪽과 동쪽 모서리를 연결하며 놓여 있으며, 기단석에는 팔부중상뿐만 아니라 탑 부재들과 건물 주초석 등이 사용됐다. 치성을 올리기 위한 기초석의 범위는 동서 길이 11m, 남북 너비 11m, 기단석은 길이 10m, 너비 8m다.재단 관계자는 “현재 기초석 침하로 팔부중상 면석들은 한쪽으로 약간 기울어진 상태”라며 “팔부중상 조각 면이 위로 보며 놓여 있기 때문에 축조할 당시 그 위로 많은 석재들이 올려져있어 성벽 외부에서는 아예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한국문화재재단 박종섭 팀장은 “경주읍성이 고려시대에 처음 성을 쌓았지만 치성은 조선시대에 축조됐다”며 “팔부중상 석탑재가 성벽 석재로 사용됐다는 것은 당시 불교에 대한 인식과 사상적 배경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밝혔다.한편 경주지역에서 팔부중상이 새겨진 석탑 및 탑재는 담엄사지 석탑재, 창림사지 석탑, 남산리사지 서탑, 숭복사지 동·서탑, 인왕동사지 동서탑재, 사제사지 탑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