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와 ‘분만실’의 조합은 마치 물과 기름 같다. 하지만 결혼생활에서 아기를 계획하다 보면 꼭 한 번은 이 둘이 섞일 때가 온다. 이 역시 준비되어 있다거나 익숙한 모습은 아니다. 나만 해도 딱, 어디서 꿰다 놓은 보리자락 같았다. 이제 곧 가족이 될 아기 짐가방을 양손 가득 든 체 구석진 곳에 서서 주위를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병원에 나와 똑같은 보리자락들(?)이 여럿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어색한 눈인사와 바싹 마른입에서 덕담들이 오가지만 얼어붙은 초짜(!) 아빠들 얼굴은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
이런 현상을 심리학적으로 해석해보면 이렇다. 아내의 임신 소식에 박수를 치는 남자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남자들은 자신이 아빠가 된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기는커녕 4~6주 정도가 지나면 정말 심각한 불안감을 느끼기까지 한다. 그렇다고 힘들어하는 산모에게 자신의 두려움을 드러낼 수도 없다. 드라마에서처럼 ‘내가 이제 아빠가 된다는 거야?’ 하고 실실 웃음이 나고 생각만 해도 행복해야 할 바로 이때 남자들은 사실 정말 혼란스럽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배가 점점 불러오는 산모처럼 입덧을 한다거나 아침마다 구역질을 하지는 않지만, 남자들도 아내의 임신과 더불어 급격한 변화를 겪는다고 한다. 감정적으로, 신체적으로, 호르몬적으로 말이다.
하버드대학교 연구진에 따르면 예비 아빠에게서 두 가지 중요한 호르몬 변화가 관찰된다는데,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떨어지고 푸로락틴 수치는 올라간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는 예비 엄마의 피부와 땀샘에서 분비되는 페로몬(pheromone, 일종의 천연 임신 화학물질)이 공기를 통해 아빠에게 전달이 되면서 생긴 변화라는 것이다. 남자는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지만 이 호르몬들이 남자를 ‘아빠’로 준비시킨다고 한다. 이 같은 호르몬의 변화를 어려운 말로 ‘공감(共感) 임신’이라고 한다.
가는 것이 있으면 오는 것이 있어야 하는 법. 이제는 역으로 아빠가 분비한 페로몬이 공기를 매질로 엄마 콧속으로 들어가면 엄마의 뇌 회로의 성장을 촉진하는 호르몬이 분비된다. 이런 걸 생물학적 ‘주거니 받거니’라고 명명해야 할까? 엄마 뇌는 아빠 뇌의 형성을 돕고, 같은 방식으로 아빠 뇌는 엄마 뇌를 세팅하는 것이다. 그냥 남녀로 시작된 관계가 서로의 도움에 힘입어 엄마 아빠로 거듭나는 셈이다. 와, 생각할수록 경이롭고 아름다운 자연의 이치다. 곧 등장할 아이를 통해 남녀는 비로소 어른이 되고 가정을 완성해 간다. 물론 아이 없이 서로에게 더욱 집중하는 가정도 있지만 말이다.
엄마·아빠를 선물한(생소한 표현이지만 최고의 선물임에는 분명하다.) 그 아기가 이제 말을 배울 시간이 되었다. 초짜(!) 부모들로서는 가장 흥분된 시간이기도 하다. 엄마는 자신을 가리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난 네 엄마야. 자, 따라해 봐 엄~마”한다. 근데 아기는 눈만 껌뻑거리지 별 반응이 없다. 시작은 다 이렇다. 우리 아기는 다를 거야 기대하며 아기의 이목을 끌어보지만 결과는 마찬가지다.
시간을 두고 이런 과정을 거쳐 아기가 체득하는 것은 ‘순서 주고받기(turn-taking)’다. 엄마가 눈을 크게 뜨고 과장된 목소리로 까꿍~하면 가만히 쳐다보던 아기는 꺄르르 하고 웃는다. 엄마 차례 다음이 자신의 차례란 걸 이제 알게 된 거다. ‘까짓 거 기분이다. 날 위해 저렇게들 고생하는데 한번 웃어줘?’ 하고 웃으면 바로 앞의 엄마 아빠는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한다. 이 과정이 아기의 생존에 필수적인 것처럼, 순서 주고받기가 원활하지 않으면 아기 엄마가 산후 우울증에 걸리기도 한다.
사실 어디건 간에 언어와 비언어(미소나 몸짓 같은)가 원활히 소통되는 사회는 건강하고 풍요롭다. 작게는 한 가정에서 크게는 거대 사회에 이르기까지 결국 중요한 건 관계(맺기) 아닐까 싶다. 나를 엄마나 아빠로 만들어 준 우리 아이들에게 더 웃어주고 더 감격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