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가 드디어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을 받았다. 역사적 디딤돌이다. 향가를 전문으로 하는 필자는 이에 깊은 의미를 부여한다. 향가가 일종의 영화나 연극의 각본이기 때문이다.
1500여 년 전 신라, 신라인들은 찬기파랑가나 처용가와 같은 세계 최고 수준의 작품을 만들어 무대에 올리고 있었다. 그때 벌써 신라에는 감독이 있었고, 그 감독은 각본을 바탕으로 배우들을 조직했다. 우리나라의 정사 삼국사기를 보면 향가 공연 팀은 감독(監), 가수(歌尺), 무희(舞尺), 연주가(琴尺)로 구성돼 있었다. 서동요와 같은 화제성 대작이 만들어져 무대에 오르기나 하면 월성 전체가 소문으로 가득 차 난리 버거지가 났다.
봉준호 감독은 한국 영화사의 빛나는 순간에 박수갈채를 받으며 이리 말했다. “땡큐, 그레이트 오너(감사합니다, 큰 영광입니다)” “대사를 멋진 화면에 옮겨준 배우들에게 감사드린다” “시나리오를 쓴다는 게 사실 고독하고 외로운 작업이다” 이러한 문화적 대형사건을 어떻게 봐야 할까. 개인적 천재성이나, 우연히 일어난 일로 보아야 할까.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우리는 순두부 식당을 가더라도 원조집을 찾는 민족이다. 국 한그릇에서 조차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따져 먹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말도 있다. 1대 부자는 집을 보면 알고, 2대 부자는 옷을 보면 알고, 3대 부자는 그 집 안주인 음식맛을 보면 안다고. 이러한 말들은 문화란 역사의 깊이에서 나온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이처럼 우리 민족이 문화로 세계의 지평을 뒤흔든 초대형 사건들, 아카데미 석권이나 싸이나 BTS 출현같은 현상들은 결코 뿌리없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러한 사건들의 깊은 뿌리를 우리의 역사에서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필연적으로 만나는 문화적 지점이 있다. 그것은 신라의 향가문화다. 향가문화는 아시아는 물론 세계사적으로 보아도 매우 특이한 문화적 현상이었다. 향가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불행하게도 그간 우리는 이를 단순한 서정시로 알아왔다. 그러나 그것에 그침이 아니었다. 경주신문에서 보도되고, 동아시아 고대학회에서 발표된 대로 그것은 시가 아니고, 연극이나 영화의 각본에 해당하는 작품이었다. 1500여년 전 신라에서는 향가라는 공연작품을 상당량 가지고 있었고, 신라인들은 그것을 문화상품으로서 대량 소비하고 있었다. 이러한 문화적 전통을 가지고 있는 민족이 과연 세계에 몇 나라나 될 것인가.
향가에 대한 안목이 없다면 이번 아카데미 수상은 몇 명의 기발한 천재들이 이루어낸 돌발적이고 우연한 사건이다.
그러나 향가의 전통을 알고 보면, 이 일은 향가에서 발원된 우리민족의 문화적 저력 위에 피어난 꽃사건이 된다. 경주로부터 발원된 공연문화의 강이 민족의 심성 위를 가로 지르고 있는 것이다. 아카데미 사건은 나올 데서 나왔다. 바로 대한민국이다.
향가라는 위대한 업적을 만들어낸 월성의 후예, 경주분들에게 이번 사건은 각별하고 반가운 사건이다. 천 년 전 월성 뒷골목에서 고독 속에 각본을 만들고 있던 향가 작가분들에게 후예들이 만들어낸 이번 사건을 자랑스러움을 담아 보고 드린다. 21세기 충무로 뒷골목에서 외로움을 씹으며 영화 ‘기생충’을 만들어낸 관계자들에게도 진심을 휘저어 축하를 보낸다. 경주 시민들에게 태초에 세계 공연 문화의 빛이 있었고, 그 빛은 경주로부터였다고 알려드린다. 경주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