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국민권익위원회의 공공기관 청렴도 조사 결과 발표가 있었다. 권익위의 청렴도 평가는 그 자체로 언론에 공표되어 기관의 명예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하고 경영 평가에도 일정 부분 반영되어 공공기관 소속 직원들의 성과급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권익위의 청렴도 평가는 외부 청렴도 평가와 내부 청렴도 평가로 이루어지는데, 대개의 기관들이 외부 청렴도 점수보다는 내부 청렴도 점수가 더 낮게 나온다. 2019년의 경우도 공공기관 평균 외부 청렴도 점수가 8.47점인데 반해 내부 청렴도 점수는 7.64점이다. 외부 고객들 즉 민원인이나 협력업체 관계자보다 내부 고객 즉 내부 공무원·직원이 소속 기관의 청렴도가 더 낮다고 인식한다는 것이다. 청렴도 점수가 자신이 지급받게 되는 성과급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외부 고객보다 더 박한 점수를 주고 있다니 의외의 일이 아닐 수 없다.
내부청렴도 평가 항목 중에서 특히 낮게 나오는 부분이 ‘업무지시 공정성’(6.88점) 부분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현 정부에서 중점 추진하고 있는 갑질 근절이나 2019년 7월 시행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과 연관 지어 생각할 수도 있겠다. 지난 1월 12일 국무조정실이 발표한 ‘갑질에 대한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8.9%가 우리 사회의 갑질이 심각하다고 답했고 갑질이 가장 심각한 관계로는 ‘직장 내 상사-부하 관계’가 24.8%로 ‘본사-협력업체 관계’의 24%와 비슷한 수준이다.
그렇다면 어떤 행위가 불공정한 업무지시인가? 고용노동부가 발간한 직장 내 괴롭힘 매뉴얼에는 ‘육아 휴직 후 복직한 직원을 내쫓기 위해 따돌림 할 것을 지시한 사건’, ‘선배인 가해자가 후배인 피해자에게 술자리를 마련하지 않으면 인사상 불이익을 주겠다고 반복하여 말한 사건’ 등이 예시되어 있다. 그러나 현실로 들어가면 이것이 과연 불공정한 업무 지시인지 또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되는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이를테면, 부장이 직원의 휴가를 승인해 주면서 이번 휴가 땐 누구와 어디로 가는지 묻는다면 이는 단순한 친밀감의 표시인가 아니면 지나친 사생활의 침해에 해당하는 것일까?
미디어윌이라는 매체가 2018년에 ‘직장생활 동상이몽’이란 주제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선호하는 조직문화에 대해 사원·대리는 ‘일과 사생활을 철저히 구분하는 문화’(40.2%)를 선택한 반면 과장 이상은 ‘서로 챙겨주는 가족 같은 문화’(41.8%)를 선호했다. ‘가족 같은 문화’를 선호하는 입장에서는, 휴가를 어디로, 누구와 가는지 관심을 가지는 것은 가족 같은 친밀감을 위해 당연한 것인 반면, ‘일과 사생활의 철저한 구분’을 선호하는 입장에서는 상급자의 그러한 질문은 중대한 사생활의 침해에 해당한다. 어느 세대의 사고방식이 절대적으로 맞거나 틀리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습관적으로, 그리고 악의가 아닌 호의를 가지고 해 오던 질문이나 행위도 경우에 따라서는 그것을 불편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는 인식을 항상 하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권익위의 공공기관 청렴도 조사에서 경주시가 3년 연속 종합청렴도 5등급으로 최하위 등급을 받았다고 한다. 이에 경주시는 비위 공직자에게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는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하며 클린 경주 추진기획단을 운영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와 덧붙여 경주시에서도 직장 내 괴롭힘과 같은 내부 갑질은 없는지, 요즘의 밀레니얼 세대가 수용하기 어려운 권위주의적인 조직 문화는 없는지 한번 살펴볼 일이다. 내부에서부터 부당하게 권위를 악용하는 문화가 사라진다면 공무원이 협력업체를 상대로 갑질을 한다거나 금품·향응제공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문화는 당연히 사라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