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돌아온 초딩 아들이 툴툴댄다. 이제 반에서 스마트폰이 없는 건 자기뿐이라고 말이다. 27명 전부가 가지고 있는 걸 혼자만 없다는 건, 아마 녀석의 부모 성질이 고약하거나 나름의 교육 철학이 있거나 둘 중 하나다. 우리는 후자라고 주장하지만 녀석은 전자라며 눈을 흘긴다.
그래서 타협안으로 사준 게 손목에 차고 있는 ‘와치’ 아니냐고, 전화 기능도 있고, 간단한 문자도 보낼 수 있으니 스마트폰과 똑같다고 우겨보지만 아들의 얼굴은 여전히 일그러져 있다.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들이 숙제를 ‘반 톡방’에다 공지하고 학생들도 핸드폰이나 태블릿으로 관련 자료를 조사해서 바로 업로드해버리는 세상이다. 당연히 안다. 하지만 이렇게 아들과 (그냥 폰을 쥐어줬더라면 하지 않아도 될)싸움을 힘겹게 이어가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오늘날 성인의 3분의 2가 겪고 있다니 큰 문제다. 얼마나 심각하냐면 부작용으로 다음과 같은 증상을 보일 수도 있단다. 심장 질환, 폐 질환, 식욕 부진, 체중 조절 장애, 면역력 저하, 질병 저항력 감소, 통증 민감성 증가, 자극에 대한 느린 반응, 심한 감정 기복(이게 딱 우리 아들의 경우다), 뇌 기능 저하, 우울증, 비만, 당뇨, 특정 유형의 암 등등.
바로 ‘만성 수면부족’으로 야기하는 부작용들이다. 참고로 아들은 잠이 많다. 엄마 닮아 아침잠도 많고 아빠 닮아 저녁잠도 많다. 수면 부족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처럼 빛을 내뿜는 각종 전자 기기가 등장하면서 생긴 골칫거리다. 자료에 따르면 성인 중 95%가 잠들기 전에 (빛을 발산하는) 전자 기기를 사용한다고 한다.
사실 잠자리에 눕는다고 바로 잠이 드는 건 아니다. 오늘 있었던 이런저런 일들을 생각하다 보면 또 몸도 뒤척이다 보면 자연스레 잠이 들곤 한다. 그런 우리의 수면 모드를 스마트폰이 바꾸어버린 것이다. 잠들기 전 그 최소한의 시간조차 무료하고 비생산적이라고 느끼게 된 것이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말이다.
심각한 것은 성인 중 50%가 스마트폰에서 벗어나지 못해 밤잠을 설친다고 한다. 보통은 혹 안 읽은 메일이라도 있나 확인하는 정도로 가볍게 시작된다. 그러다 뉴스 사이트로, 쇼핑 사이트로, 유튜브로 끊임없이 이어진다. 잠을 설쳐가며 이렇게 바쁘게 돌아다니니 수면의 질은 현격히 떨어진다. 특히 지난 20년간의 저하 폭은 매우 가파르다는데, 왜 이 지경이 됐을까?
인간으로부터 잠을 빼앗은 주범은 전자 기기에서 새어 나온 푸르스름한 빛이다. 지난 세월 푸른빛은 오직 낮에만 존재해 왔다. 적황색의 촛불이나 장작불, 병아리색의 달을 제외하고 밤에는 따로 조명이 없었다. 지난 수천 년 동안 우리 뇌는 붉은빛을 잠자리에 들 신호로 해석해 왔다.
반면 우리 뇌에 푸른빛은 아침을 알린다. 문틈으로 푸르스름한 빛이 감돌면 어김없이 날이 밝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스마트폰 화면에서 쏟아져 나온 푸르스름한 빛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아침으로 인식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잠자리에 누웠지만 스마트폰의 빛 때문에 밤을 아침이라고 착각하는 시차증(時差症)을 야기하게 된다. 이런 반복은 수면의 절대적 부족으로 이어지고 결국 만성으로 굳어진다. 스마트폰으로 궤도가 수정된 인간의 새로운 진화 양상이다.
2013년 과학자들은 한밤중에 고글을 쓴 상태에서 2시간 동안 태블릿을 하게 했다. 그리고는 실험 참가자의 멜라토닌 분비량을 측정해 봤다. 참고로 인간의 뇌 안쪽에는 이름도 이쁜 솔방울샘에서 멜라토닌이 분비된다. 밤이 되면 하품과 졸음을 유발하는 바로 그 호르몬이다. 주황색 고글을 쓴 참가자들은 역시나 멜라토닌이 왕성하게 분비되었다. 태블릿을 하고 있지만 몸은 잠들 준비가 된 것이다.
고글을 바꾸어 봤다. 파란색 고글을 쓰니까(또는 맨 눈으로 태블릿을 하니까) 멜라토닌 분비량이 확 줄어들었다! 스마트폰의 푸르스름한 빛은 지구에서 가장 머리 좋은 영장류를 바보로 만들어 버렸다. 2020년 경자년 새해 달력도 벌써 보름이 지났다. 새해를 맞아 여러 계획들을 세우실 텐데, 침대에서 스마트폰을 추방하여 보다 건강하고 스마트한 새해를 맞이해보는 건 어떨지 제안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