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라는 ‘직업’은 19세기 중반쯤에 생겨난 것으로 추정된다. 리스트의 사위로 유명하지만, 바그너에게 아내를 뺏긴 남자로서 더 유명한 뷜로(H. von Bülow/1830-1894)가 최초의 전문지휘자라고 한다. 이전에는 작곡자가 직접 초연을 지휘하는 이른 바, 초야권을 가졌다. 이 초야권은 베토벤에 이르러서 소멸한 것으로 본다. 그는 귀가 완전히 멀어 희대의 걸작인 합창교향곡을 혼자의 힘으로 지휘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작곡가가 지휘할 수 있는 걸 굳이 전문 지휘자가 할 필요가 있을까 말이다. 19세기 전에는 악단규모가 많아야 30명이어서 지휘라는 전문영역이 필요하지 않았다. 작곡가가 연주까지 하면서 지휘를 했던 것이다. 하지만 19세기 중반 이후 오케스트라의 규모가 100명에 육박할 정도로 엄청나게 커지면서 사정은 달라진다. 효율적인 악단관리를 위해 ‘지휘’만 하는 스페셜리스트가 필요해진 것이다. 요즘도 코믹한 오케스트라 지휘로 큰 웃음을 주는 개그맨 김현철을 보면, 괜스레 지휘가 우스워 보인다. 누구라도 지휘봉으로 허공을 가르면 소리가 만들어지는 걸로 생각하기 쉽다. 물론 지휘자 없이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가능하다. 다만 그저 그런 음들이 들릴 뿐이다. 지휘자의 색깔을 낼 수 있는 연주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휘자는 작곡가의 악보를 해석하여 자기 나름의 연주를 오케스트라를 통해 구현한다. 같은 말러 교향곡이라도 이를 해석하는 지휘자에 따라 연주의 색깔이 달라진다. 이는 같은 ‘라 트라비아타’라도 연출자가 누구냐에 따라 오페라의 맛이 확 다른 것과 비슷하다. 곡의 해석이나 연출은 오케스트라 지휘자나 오페라 연출자가 존재하는 이유가 된다. 관객들은 이런 차별성을 소비한다. 우리나라에선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지휘자가 까탈스럽고,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로 각인되어 있다. 강마에로 분한 김명민의 열연 덕분이다. 그럼 현실의 지휘자들은 어떨까? 아바도(C.Abbado/1933-2014)처럼 민주적인 ‘천사표’ 지휘자도 있지만, 보통은 독재자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토스카니니(A.Toscanini/1867-1957)는 별명이 아예 ‘독재자’였고, 첼리비다케(S.Celibidache/1912-1996)는 ‘독설가’로 불렸고, 솔티(G.Solti/1912-1997)는 ‘악쓰는 해골’이었다. 자신들만큼이나 까탈스런 단원들을 다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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