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모(歲暮)의 언저리 마주서서 바라보는 천문관측첨성대는 비상을 꿈꾸듯 새롭다. 380여개 부재 화강암 곧고 반듯하게 깎아 쌓은 돌 층층이, 동녘햇살과 맞물려 빛을 짜는 고전미 생생한 천년이다.
세시풍속(歲時風俗)의 첫 마중인 설은 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역법의 시발점에 있다. 한 해의 기점인 설을 출발점으로 시간의 눈금자리에 천체물리학을 접목시켜, 그 시대 과학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구조물로 세워진 첨성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고대천문학의 근간을 입증하는 아름다운 국보다.
신라시대 설날의 기록은 첨성대를 세운 27대 선덕여왕 김덕만(金悳曼)의 사촌여동생 승만(勝曼) 28대 진덕여왕(眞德女王:647~654)시절, 중국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때 ‘정월 초하루 신년축하 의식으로 정단례(正旦禮)를 시행했다’는 【삼국유사】 제1 기이(奇異) 편과,【삼국사기】「신라본기」 권5, 진덕여왕 5년(651) 춘정월삭 왕어조원전 수백관정하 하정지례 시어차(春正月朔 王御朝元殿 受百官正賀 賀正之禮 始於此) ‘진덕여왕 5년 춘정월 삭일(음력 1월 1일) 왕이 조원전에 행차하여 백관들의 하정례(賀正禮)를 받았다. 신년 하례의 의식이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설날은 묵은 달력을 넘기고 만물의 이치를 새롭게 펼치는 까닭에, 해와 달 별 천지간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덕담으로 세배하는 정초의례다.
그옛날 신라인의 신년하례 풍속도 그러하기에 새해를 맞는 가슴이 온고지신(溫故知新)으로 겸허하다. 최치원(崔致遠) 고운집(孤雲集)엔 궁궐에서 멀리 떠나 있는 신하들은 하정표(賀正表) 요즘의 연하장을 지어 신년하례를 치렀고, 최치원 역시 왕에게 덕담 가득한 하정례를 지어 올렸다는 문장이 전한다. 하정례 내용엔 “천계(天鷄)가 새벽을 알리므로 멀리 구석진 곳까지 따라 수창(首唱)한다” 김알지 설화에 등장하는 첫새벽을 깨우는 닭울음소리 숨 가쁜 천계 계림과 마주한 첨성대는, 새해의 시작 설빔 차려입은 치마폭으로 단아하다.
『한서』「천문지」4가지 연말연시 송구영신(送舊迎新) 알리는 글귀를 보면, 첫째: 동짓날은 만물이 움트는 기운을 생성하고, 둘째: 명일(名日)은 묵은해를 보내고 같이 어울려 음식을 나누며 양기를 부추기는 초세(初歲), 셋째: 정월 설날은 군왕이 세수(歲首)로 삼고, 넷째: 입춘(立春)은 사계절의 첫걸음으로 삼는다’
한 해의 시작인 설을 기점으로 농경의례를 향한 영성(靈星)은 농사짓는 밭을 하늘 별자리로 올린 천전성(天田星)의 별칭이어서, 농사짓는 터전인 농전(農田)을 기리는 의미가 있다.
천전성 위치에서 28수의 첫째이며 청룡좌 동쪽에 빛나는 각성(角星)이 떠오를 무렵이 1년 농사의 시작인 경칩절기다.
농사짓는 시점을 알려주기에 각성을 용성(龍星: 청룡의 으뜸 별자리)이라 칭하고, 한 해의 농사를 하늘에 기원하는 하늘밭(天田) 별자리 영성으로 해석되어진다.
『한서』에 명기되어 있는 기성(箕星)은 바람의 별, 필성(畢星)은 비의 별.
뭇별들의 속내를 읽으며 별무리 흩어진 흔적을 훑어, 인간의 불가사의한 자연섭리를 별자리로 점치던, 옛사람들의 순박한 과학적 이해방식과 우주만물의 근원을 천체의 역법으로 소통하려는, 철학적 인생관이 주문(呪文)으로 꽉 박힌 첨성대.
해 그림자, 별자리 시계 삼아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천체운행을 관측하여, 24절기 인식을 삶의 달력으로 걸었을 신라인들의 마음 베낀 첨성대, 명(命)줄 질긴 숨결인 양 하늘땅 연결하는 사랑축대(築臺)로 빛 부신 이 아침, 신라가시나 되어 정일근詩人 -연가- 시 한 편 별꽃엽서로 띄우는 마음, 그리움에 사위어진 초승달로 수줍다.********************* 허락하신다면, 사랑이여 그대 곁에 첨성대로 서고 싶네, 입 없고 귀 없는 화강암 첨성대로 서서 아스라한 하늘 먼 별의 일까지 목측으로 환히 살폈던 신라 사람의 형형한 눈빛 하나만 살아, 하루 스물네 시간을, 일 년 삼백예순닷새를 그대만 바라보고 싶네 사랑이란 그리운 사람의 눈 속으로 뜨는 별 이 세상 모든 사랑은 밤하늘의 별이 되어 저마다의 눈물로 반짝이고, 선덕여왕을 사랑한 지귀의 순금팔찌와 아사달을 그리워한 아사녀의 잃어버린 그림자가 서라벌의 밤하늘에 아름다운 별로 떠오르네, 사람아 경주 남산 돌 속에 숨은 사랑아, 우리 사랑의 작은 별도 하늘 한 귀퉁이 정으로 새겨 나는 그 별을 지키는 첨성대가 되고 싶네 밤이 오면 한 단 한 단 몸을 쌓아 하늘로 올라가 그대 고운 눈 곁에 누운 초승달로 떠 있다가, 새벽이 오면 한 단 한 단 몸을 풀고 땅으로 내려와 그대 아픈 맨발을 씻어주는 맑은 이슬이 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