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키즈스탄 봉사활동을 다녀와서...(1)
오 창 섭
(서라벌대학 교수)
중앙아시아의 한 나라, 키르키즈스탄.
처음 듣기에 생소하고 낯선 나라이기만 했던 키르키즈스탄. 키르키즈스탄이라는 이름을 처음 접하게 되었을 때 구소련으로부터 독립된 신생국,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중앙아시아 국가 라는게 내가 그곳에 대해 알고 있던 전부였다. 하지만 3주간의 봉사기간은 낯설기만 했던 이 나라를 지금은 그립고도 가까운 나라로 만들었다.
봉사단의 지도교수로서 지원할 때 키르키즈스탄은 처음 희망했던 나라가 아니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혹시 그곳이 안전할까 걱정되는 나라였다. 그러나 한국대학사회봉사협의회(이하 대사협)로부터 키르키즈 봉사단의 단장으로 제안을 받았을 때 나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요청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 봉사자의 합당한 마음이 아닐까, 현지의 사정이 어렵고 힘든 만큼 봉사의 손길이 더욱 필요할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과 함께 염려와 걱정은 기대와 희망으로 바뀌었다.
출발에 앞서 경희대에서 가진 2박3일간의 사전연수는 현지의 이해와 문화적응을 위해, 그리고 봉사단원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고 봉사자로서의 준비와 결의를 다지는 매우 필요하고 소중한 기회였다. 참여학교와 전공, 연령, 참여동기 등이 달랐지만 키르키즈 해외봉사에 함께 참여하게 된 공통의 연대감 속에서 서로의 마음을 열고 앞으로 맞이하게 될 3주간 여정의 동반자로서 뜨거운 유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2003년 7월 23일. 약속대로 우리는 오후 비행기를 타고 키르키즈스탄으로 향했다. 내속에는 기대감과 설렘이 공존했다. 우리가 그곳에 가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머릿속은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로 가득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우리 봉사팀들은 어느새 키르키즈스탄의 까라발타라는 아름다운 마을아래 있었다.
봉사단의 활동은 7월 24일부터 8월 11일까지 이루어졌으며 주요 활동내용은 고려인, 키르키즈스탄인, 러시아인 등 까라발타 주민전체를 대상으로 의료봉사와 이․미용봉사 및 노인정, 정신지체장애자가 살고 있는 재활원과 고아원을 찾아가서 하는 봉사, 주민들의 자녀들을 대상으로 특별활동 교육 실시 (한글, 영어, 태권도, 사물놀이, 유아교육 등) 그리고 현지 대학생들과의 문화교류 및 원주민들의 농사현장 방문 노력봉사 (농장 잡초제거 및 공공시설인 공원벤치 보수 및 페인트 도색작업 / 시청주위 노인정 주변 정리 및 보수 페인트 / 마을 주변 외등 전등 끼우기 등) 등으로 구성되었다.
하루일과는 대체로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일조점호, 구보와 체조 및 세면을 하고, 7시에 식사, 8시에 의료 및 이미용봉사 준비, 8시 30분부터 중식시간을 제외하고는 4시30분까지 봉사활동이 진행되었다. 의료 및 이미용봉사가 진행되는 동안 다른 팀들은 오전일과를 오이농장에서 잡초제거나 공원의 페인트칠과 같은 노력봉사를 실시하였다. 이들은 중식후 오후 4시30분부터 6시까지 진행되는 유아교육과 한글교육, 영어교육 등 교육봉사의 준비로 땀을 흘리게 되었다. 3주기간중 2주간을 까라발타 지역에서 봉사하면서 우리는 어느새 봉사에 익숙해져갔고 1주간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봉사활동을 수행했다.
그동안 학생들과 봉사활동을 함께 하면서 느낀 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이해’와 ‘발견’이다. 더위와 어려운 여건속에서 학생들은 좋은 팀?과 분위기속에서 서로 아끼며 협력하였다. 매일 저녁 평가의 시간에는 학생대표를 중심으로 전원이 참석하여 그날의 활동을 돌아보며 소감을 나누고 다음날의 일정을 점검하곤 했다. 봉사단원들 개개인의 생각과 관심사, 및 봉사에 임하는 자세를 둘러볼 기회가 되었으며 요즘 젊은이들의 번뜩이는 재치와 아이디어, 일처리솜씨에 이르기까지 신세대 문화 이해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대부분 학생들은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으며 봉사활동 후 저녁시간에 맥주잔에 기울이며 자신의 인생과 미래,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특히 값진 발견은 짧은 기간이지만 봉사활동 체험을 통하여 키르키즈스탄의 문화와 민족성, 살림살이 등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 게재 한다.
특히나 무의탁 고려인 노인가정을 방문했을 때는 정말 봉사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순간이였다. 햇볕이 겨우 손바닥 만하게 들어오고, 너무 허름해서 살기조차 엄두가 안나는 정리안된 집을 모두가 두팔 걷고 걸레질하고, 이불을 털고. 봉사시간이 끝나고 헤어질때 너무 안스러워서 팀원 모두가 돈을 걷어주고, 게다가 입고 있던 옷도 벗고, 신발까지 벗어서 고려인 노인에게 주면서 눈물을 흘리던 장면이 지금도 기억에 선하다. 무엇보다도 우리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청소하며 필요가 무엇인지를 살피면서 자신의 것을 나누어주는 모습을 보면서 요즘 충동적인 젊은이들의 또다른 모습을 보게 되는 것 같아 대학생들을 새롭게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궁극적으로 독거노인과 같은 어려운 분들이 이런 어려운 환경에서 벗어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주변에 어려운 이웃들을 도와주는 이런 행사들이 자라나는 우리아이들에게 사랑과 나눔의 정신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교육적 효과가 매우 크지 않을까 생각된다.
둘째는 ‘감사’와 ‘반성’이다. 우리의 봉사활동은 현지주관기관의 계획과 도움속에서 효과적으로 이뤄질 수 있었다. 고려인돕기운동회는 현지 봉사에 필요한 충분한 이해와 정보를 주었고 그동안 많은 방문팀을 맞아 본 경험속에서 봉사단의 활동에 많은 힘과 도움을 주었다. 특히 현지 봉사자가 자신의 가정을 개방하면서 보여준 친절과 열린 마음들은 잠시나마 이국의 나그네된 학생들의 마음에 위로가 되었으며 봉사단원을 하나로 묶어주는 좋은 촉매제가 되었다.
봉사활동을 통해서 현지의 고려인을 비롯한 키르키즈사람들이 얼마나 우리의 도움과 협력을 원하며 필요로 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고 깨달을 수 있었다. 특히 의료봉사의 경우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기 때문에 번호표 발급과 매일의 진찰인원을 제한해야 하는 실정이었다. 그래도 평균 7-80명의 진료는 할 수 있었다. 정신지체자촌을 방문할때 달려나와서 맞이하는 정에 굶주린 그들, 그리고 진료와 이미용을 마치고 나올 때 빽빽이 몰려나와서 우리들의 탄 차가 자신들의 눈앞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며 전송하는 그 나라 아이들의 소박한 모습과 눈동자가 지금까지도 기억속에 선명히 남아있다.
3주가 지난 마지막 평가회때 학생들은 봉사기간 내내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이 이렇게 따뜻하고 행복하다는 것과 누군가 내 옆에 있다는 것이 든든하다는 걸 그때서야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다고 고백하였다. 그리고 얼마나 도전도 많이 받고, 시간의 소중함도 깨닫고 이렇게 몸 건강히 봉사를 할 수 있다는 자체가 참 행복이라는 것도, 봉사라는 것이 아픈 사람이나 어려운 사람에게 베푸는 것인 줄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내가 주는 것보다 느끼고 받는 것이 참 많구나 라는 것을 서로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가슴이 벅찼다.
외국에 다녀온 사람치고 애국자가 안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하는데 이번 봉사활동을 통해 우리나라가 얼마나 잘 사는지, 그리고 소중한지를 깨닫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우리의 생활태도와 철학, 가치관에 반성하게 되었다. 어학실력의 부족함과 나태에 대해서도, 봉사정신의 부재에 대해서도.....,
셋째는 ‘결단’과 ‘도전’이다. 우리 젊은 대학생들에게 국제경험과 봉사능력을 향상시키고 문화교류를 통한 국제 친선과 상호이해 증진에 기여하기 위한 이번 봉사활동은 학생들에게 다양한 세계문화의 체험과 더불어 국제경험을 통한 자기개발의 기회를 제공받음으로써 자각을 통해 지금까지의 삶을 반성하고 새로운 인생을 결단하는 기회가 된 것 같다. 학생들은 이러한 발견과 휴식을 통하여 새로운 인생의 설계를 탐색해 보는 기회가 되었고 지구촌 공동체 의식 함양의 중요한 기회가 되었다.
또한 현지주민들에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한 인간애로 사랑을 전함으로써 그들과 일체감을 형성했고 그들에게‘ 한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어 준 것은 앞으로도 지속될 해외봉사단 파견이 세계속의 한국을 알려 주는 민간외교사절단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한다는 점을 일깨워 주었다.
그 나라 청소년들의 경우 주변여건 때문에 그런지 자연스럽게 러시아어와 키르키즈어, 영어나 우즈벡어, 터키어, 한국어, 경우에 따라서는 일본어까지 4-5개 국어를 구사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지금까지 죽도록 영어 하나만 공부해도 서툰 우리네 실정을 감안할때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 학생들은 엄청나게 충격과 함께 크나큰 자극이 되었다. 아마도 앞으로 열심히 공부하지 않을까....
이제 봉사활동을 마치고 돌아온 지금 이 소중한 경험과 깨달음이 한국에서의 삶, 곧 캠퍼스의 현장에서 분명한 변화로 나타나고, 학생들의 장래를 바꾸는 열매로 맺혀가도록 돕는 일이 남아 있다.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값진 경험을 통해 앞으로도 전진하고 또 전진해야 함을 느낀다. 아직은 무엇을 배웠고 우리가 얼마나 성숙했는지는 결론 내릴수 없지만 살아가면서 그때 순간순간을 기억한다면 우리의 삶은 의미있고 풍성하리라.
돌아온지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키르키즈스탄에 있다..........
(키르키즈스탄의 생활상과 주요 경관, 살림살이, 봉사활동, 에피소드 등에 대해서는 A4 6장 분량의 자료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필요하면 요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