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스트라 연주가 시작되기 직전, 지휘자가 아닌데도 박수를 받으며 입장하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그를 콘서트마스터(concertmaster)라고 부른다. 우리말로는 악장(樂長)이라고 하는데 대개 제1바이올린의 수석주자가 맡는다. 그래서 악장은 지휘자의 왼쪽 가장 가까이에 위치한다. 무대에 등장한 악장은 누군가에게 눈짓을 한다. 악장의 눈짓을 받은 사람은 오보에 연주자다. 그는 A(라)음을 불어 다른 악기들의 튜닝을 유도한다. 연주에 앞서 마지막으로 음정을 조절하는 것이다. 먼저 관악기가 음을 맞춘다. 이어서 현악기가 뒤따르는데 바이올린 연주자인 악장도 이때 튜닝을 한다. 연주회가 서곡 없이 바로 피아노협주곡으로 시작될 때에는 오보에 연주자가 수고하지 않아도 된다. 피아노가 이미 무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악장은 피아노의 ‘라’음을 치는 걸로 튜닝 유도를 대신한다.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악기는 매우 예민하다. 잠깐 동안의 공연장 조명도 음정변화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인터미션 후 연주를 재개할 때도 처음과 동일한 튜닝행위를 한다. 그럼 오보에는 어떻게 튜닝의 기준악기가 되었을까? 오보에는 물리적으로 외부환경의 영향을 덜 받는다. 게다가 다른 악기와 구별되는 독특한 소리를 떨림 없이 낼 수 있어 음정을 조율하는 악기로서는 최적이라는 것이다. 위치도 정중앙에 있어 다른 연주자들이 듣기 쉽다. 오케스트라의 모든 악기가 오보에의 도드라진 소리를 기준으로 음을 조율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연주회를 위한 엄숙한 의식처럼 보이기도 한다. 바로 이 의식을 주관하는 사람이 악장이다. 튜닝이라는 의식이 끝나면, 비로소 지휘자가 등장하고 연주가 시작된다. 연주 중에 보우잉(bowing)을 통일하는 것도 악장의 중요역할이다. 어떤 음에 활을 올리고 내려야할지를 정해준다. 현악기군이 물 흐르듯 일사불란하게 연주하는 아름다운 모습은, 바로 이 덕분이다. 19세기 중엽 이후 전문 지휘자가 등장하기 전에는 악장이 지휘자를 겸하는 일이 흔했다. 근래에도 악장이 지휘를 하거나 아예 지휘자로 전업하는 일이 있지만 흔한 일은 아니다. 한편 유명 오케스트라의 악장은 바이올린 솔리스트에 버금가는 연주 실력을 갖춘 경우가 많다. 악장이 협주곡의 협연자로 나서는 일이 있을 정도다. 악장은 오케스트라의 연주자를 대표하는 사람이다. 지휘자가 무대에 등장하여 악장과 악수를 나누는 것은 ‘연주자의 대표자’에 대한 경의를 표시하는 행위다. 악장과 지휘자 모두 대외적으로 오케스트라를 대표하는 자리이기는 하지만 그 역할은 다소 다르다. 악장이 반장이라면, 지휘자는 담임선생님 정도 아닐까? 물론 다른 교과목 선생님은 객원지휘자에 해당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