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표를 세워서 일월의 흐름을 관찰하고/ 구름을 살펴 별들로 점을 쳤네.// 찬란했던 궁궐은 모두가 허물어져/ 세상은 무너져도 너만은 홀로남아/ 쌓은 돌 우뚝하게 풍우 밖에 섰구나. -매계 조위의 詩 첨성대- 천상의 굵은 눈물방울로 맺혀 지상의 내리막길 가뭇없이 타버린 별똥별처럼, 삼국유사 선덕왕(632~647) 별기 ‘시왕대연석축첨성대(是王代鍊石築瞻星臺)’ 아홉 글자 기록으로 우뚝한 첨성대는, 지금의 우리가 다 풀지 못하는 숨은 비밀, 천년수수께끼로 신통하기에 학자들 사이 논쟁의 여지가 다양하게 추정된다. 60년대 전상운의 태양이 비추는 첨성대 해 그림자로 24절기를 인식했다는 규표설. 70년대 김용운의 중국 고대 천문학⦁수학의 이론서인 『주비산경』의 내용을 함축한 천문대의 부속 건축물 주비산경설. 수학자 백인수도 수학적 비례에 대한 가설을 제시했다. 이용범의 김유신 집터에서 발견된 재매정(財買井) 우물과 연관 불교적 우주관점에서 수미산설. 과학자 나일성, 남천우는 천문대설 주장이다. 일본의 ‘야부우치’ 천문학사학자도 천문대설을 피력하고 있다. 건축가 송민구는 첨성대가 천문대로서의 기능뿐 아니라 여러 가지 복합된 의미가 내포돼 있다는 절충안을 내놓았다. 조세환이 불교문화에 기인되었기 보다는 토착신앙에 기반을 둔 우물이 가졌던 여성성과의 이미지를 통해 ‘농사의 풍요 기원’이라는 첨성대의 조경관측론적 해석. 박성래, 이은성, 김일권의 토속신앙에 따라 농업신인 영성(靈星) 숭배의 뜻을 담은 영성제단설. 정연식은 첨성대 형상을 성조황고(聖祖皇姑) 선덕여왕의 이미지 창조와 연결시켜, 첨성대를 석가모니 탄생설과 결부 출입문 창구를 석가모니가 탄생한 마야부인옆구리로 해석했기에, 선덕여왕 탄생설도 어머니인 마야부인과 동등하게 일치시켜 첨성대 자체를 선덕여왕 표상으로 상징 시켰다는 주장이다.
2000년 한국고대사학자 김기홍은 우물을 확장 해석한, 지상세계와 천상세계를 연결하는 통로 ‘우주우물’설로 상정했다 이설 중에 장윤성 장활식 등이 첨성대 몸통의 구조 분석을 통해 장대석들이 회위정(回囲井)이라는 글자를 이루고 있음에 따라, 첨성대가 건축될 당시의 건축명이 ‘회위정’이었을 것이라는 가설을 내놓았다. 『경주 순창설씨 세현편』에서 “설총이 항상 백구정에서 놀았는데, 첨성대 상층 대(臺) 이름 석자는 공의 친필이다”라는 근거로 하여 설총의 친필을 회위정(回囲井)으로 추정 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성서러운 탑인 지구라트를 모방했다는 지구라트설 등 다양한 학설이 제기된다. 2016년 한국여성학회지 <첨성대 여신상이자 신전> 김명숙 논문에 이르기까지, 학자들은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을 시도 했다. 한국천문연구원 양홍진은 “경주첨성대는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관측대다”라고 지목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엔 천문(天文)을 담당하는 일관(日官)의 등장이 읽히는데, 체계적인 전문 관측자가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첨성대 관련 문헌을 살펴보면 삼국유사(三國遺事:1281)⦁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1454)⦁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481~1499)⦁동사강목(東史綱目:1758) 기록이 전해진다. 금오승람(金鰲勝覽): ‘첨성대는 부의 동쪽 3 리에 있다. 선덕여왕 때에 돌을 다듬어 대(臺)를 쌓았는데 위는 모나고 아래는 둥글다. 높이는 19척이며 그 가운데로 오르내리면서 천문을 관측하였다’ 천상에서 지상으로 찰나의 순간 홀린 듯 사라진 유성(流星)의 싸늘한 꼬리를 더듬어, 품은 별 그대로 막역한 천년지기 첨성대는 사람들 가까이 깊어서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