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명대의 장편 무협 소설인 수호지에 ‘무송타호(打虎武松)’라는 말이 있다. 무송이 주막에서 술을 거나하게 마시고 큰 바위 위에서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나자 맨손으로 때려잡았다는 이야기이다. 이 무송과는 비교할 수 없는 대단한 사람이 신라에 있었다. 진덕여왕 때의 일이다. 알천공·임종공·술종공·호림공·염장공·유신공이 남산 우지암에 모여서 나랏일을 의논했다. 이때 큰 범 한 마리가 좌중에 뛰어들었다. 여러 사람들이 모두 놀라 일어났지만 알천공만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태연히 담소하면서 범의 꼬리를 잡아 땅에 메쳐 죽였다. 『삼국유사』 「왕력」편에 나오는 이야기로 알천공의 힘은 무송과 비교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부처님의 나라에서는 또 이 알천공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용장이 있으니 바로 금강역사이다. 석굴암 전실을 지나 비도 입구 좌우 양쪽에 웅건하고 용맹한 모습의 금강역사상이 있다. 금강역사(金剛力士)는 인왕(仁王)이라고도 한다. 금강석은 가장 강한 광물이니 금강역사는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역사로 어진 인왕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다. 하지만 맹자에 ‘인자무적(仁者無敵)’이라는 말이 있다. 어진 사람은 천하에 대적할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금강역사와 인왕은 그 의미가 같은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또 야차(夜叉)라고도 하는데 『근본비나야잡사경(根本毘奈耶雜事經)』에 의하면, 급고독장자(給孤獨長者)가 기원정사(祇圓精舍)를 세워 채화(彩畵)로서 장엄하려고 석가모니 부처님께 물었을 때, 석가모니 부처님이 ‘문의 양쪽에 집장(執杖)의 야차를 만들라’고 하신 것에 유래를 찾을 수 있다.
탑 또는 사찰의 문 양쪽을 지키는 수문신장의 역할을 하는 이들 머리 뒤에는 원형의 두광이 있어 이 역사가 단순히 힘만 센 것이 아니라 신성한 지혜를 갖춘 존재임을 나타내고 있다.
두 상 모두 밖에서 안으로 한 팔을 올리고 한 팔은 내린채, 아무런 무기도 가지지 않고 안정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전신에 생동하는 힘, 서 있는 듯하지만 사실은 날쌘 동작의 순간을 포착한 듯한 옷자락, 무서운 표정, 침범할 수 없는 표정이면서도 조금도 악의가 없는 얼굴이다. 이는 신라 무인의 면목을 방불하게 하는 것 같고 중국이나 일본의 금강역사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이다.
일제강점기 제1차 수리 때에 굴 안에 쌓인 흙 속에서 금강역사상의 머리와 왼팔, 왼손과 함께 작은 보탑이 발견되었다. 이는 현존 금강역사상이 여러 차례의 조각을 통해서 비로소 완성된 작품임을 짐작하게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보다도 앞서 있었던 조각상이 파손된 뒤에 새로 조성됐을 것이다.
본존을 향하여 왼쪽의 역사는 입을 크게 벌려 ‘아’ 소리를 내는 모습이고, 오른쪽의 역사는 입을 굳게 다문 채 방어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밀교에서는 이 역사에게 많은 신비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데 입을 열고 있는 역사를 아금강역사, 입을 다물고 있는 역사를 훔금강역사라고 한다. ‘아’는 산스크리트 문자의 첫째 글자이고 ‘훔’은 그 끝 글자로 각각 그리스어의 알파(α)와 오메가(Ω)와 같은 의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불법을 수호한다는 뜻이다.
아금강역사와 훔금강역사를 각각 나라연금강, 밀적금강이라고도 한다.
나라연금강은 천상계 최고의 역사(力士)로 그 힘의 세기가 코끼리의 백만 배이다. 밀적금강은 부처님의 온갖 사적(事跡)을 남김없이 알고 손에 금강저를 쥐고 항상 부처님을 호위하는 500 야차신의 우두머리이다.
기해년 한해를 보내면서 채근담에 나오는 이 구절이 떠오른다.日旣暮 而猶烟霞絢爛(일기모 이유연하현란)하루 해가 저물었으되 오히려 노을이 아름답고歲將晩而更 橙橘芳馨(세장만이경 등귤방향)한 해가 장차 저물려 할 때 귤 향기가 가득하다.경주신문 독자여러분새해 경자년에는 노을처럼 현란하고, 귤 향기 가득한 그런 나날 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