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서 가장 긴 줄
노향림
순식간에 줄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쏟아지는 햇빛 아래 지리멸렬 흩어져 있다가금방 생기 도는 얼굴들로 일직선을 그어나간다.뎅뎅 소리가 울리기도 전에기다림은 이 골목 저 골목에서 덩달아 튀어나와순서대로 일사불란하게 줄을 만든다늦을세라 절뚝이며 낡은 유아용 빈 보행기를 밀며 오는 아낙지팡이 짚고 오는 노인들도 이때만은 표정이 환하다서로 밀치거나 새치기도 없어 불평을 쏟지 않는다붉은 작업모를 눌러쓴 일일 노동자들도한 끼의 밥을 위해 긴 줄 마다하지 않고 기다린다.고무줄 같은 탄력으로 누가 끌어당기는지줄은 일순 숨 막힐 정도로 고요해지고건물 안으로 배급받은 식판들이 흡입되듯 빨려들어간다.늪처럼 끈적하게 고여 있는 허기를 안고떼 지;어 오는 어린 양들처럼 그들에겐 한끼의 밥이 삶이라고한번도 얼굴 내민 적 없는 종지기는 정오가 되면 지상의 가장 긴 줄을 오늘도 팽팽하게 잡아당긴다.
-한 끼의 밥이 만드는 신성한 줄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방영했던 수도원 다큐멘터리에서 어떤 수도사가 복도에서 긴 줄을 잡아당겨 뎅뎅, 공중에 파문을 울리는 종소릴 내는 것을 보았다. 은수자들을 불러 모으는 그 소린 확실히 어떤 아날로그나 디지털의 신호보다 광휘가 있었다. 한 해를 돌아보며 오늘 우리가 읽을 시 한 편이 바로 색다른 종소리의 위력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그 소린 정오가 되기 오래 전부터 “이 골목 저 골목에서 튀어나와” “늪처럼 끈적하게 고인 허기를 안”은 채 흩어져 있던 사람들을 활기에 차게 만드는 소리, 생기 도는 얼굴로 일직선을 만드는 소리다. 그 종소리가 만든 일직선엔, 지팡이를 짚고 오는 노인들도, 절뚝이며 낡은 유아용 빈 보행기를 밀며 오는 아낙도, 붉은 작업모를 눌러쓴 일일 노동자들도 서 있다. 그들은 한끼의 밥을 위해 환한 표정으로 새치기도 불평도 쏟아내지 않고, 숨 막힐 정도의 고요로 일사불란하게 식판을 들고 빨려들어간다. 한 끼의 밥의 위력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시인도 그것을 읽었을 것이다. 그런데 표현은 참 새침 떼듯 말한다. “정오가 되면 지상의 가장 긴 줄을/팽팽하게 잡아당”기는, “한번도 얼굴 내민 적 없는 종지기”가 가장 신성하다는 듯 말이다. 그가 당기는 줄은 두 가지 줄이다. 그가 직접 당기는 줄이 하나요, 흐트러지고 지리멸멸하게 흩어진 줄을 고무줄 같은 탄력으로 만드는 줄이 다른 하나다. 그래서 이 시인의 눈이 예사롭지 않다는 말이다. 아직도 우리 주변엔 한 끼의 밥이 삶인 이웃이 적지 않다. 이 도시에도 ‘이웃집’이라는 이름을 내건 무료급식소가 있어, 끼마다 일백 서른 분의 어르신이 식사를 하신다는 말을 들었다.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이 시점에 우리가 보듬어야 할 정신이 있다면, 이웃들과 함께 하는 ‘한없이 낮은 자세’가 아닐까고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