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 보면 감동이 배가되는 작품들이 있다. 영화는 ‘러브 액츄얼리’, 오페라는 ‘라보엠’, 발레는 ‘호두까기인형’, 그리고 클래식 음악으로는 ‘합창교향곡’이 그렇다. 이중에서 베토벤(L. Beethoven/1770-1827)이 사망하기 3년 전에 초연(1824년)한 합창교향곡은 인류의 위대한 문화유산이 되었다. 청각을 잃은 악성(樂聖)의 작품이라 그 위대함은 더욱 빛을 발한다. 베토벤이 합창교향곡을 구상하기 시작한 건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유서를 쓸 무렵(1802년)이라고 한다. 나이 서른 전에 이미 청각의 일부를 상실한 베토벤은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죽음의 유혹을 극복한 다음에는 하이든과 모차르트를 넘어서는 음악적 성과물을 내기 시작한다. 3번 영웅과 5번 운명이 이 때 나왔다. 이 무렵에 베토벤은 괴테와 쌍벽을 이루었던 당대의 유명 시인인 프리드리히 실러(F.Schiller/1759-1805)가 1785년에 지은 ‘환희의 송가’에 꽂혀있었다. 세계평화와 인류애를 담은 이 시는 20년이 지나 합창교향곡 4악장의 텍스트가 되었다. 실러의 시는 교향곡에 성악이 도입되는 파격을 낳았다. 베토벤이 고전파 교향곡의 형식을 완성시키는 동시에 교향곡의 형식을 깨뜨려 낭만주의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받는 것이 바로 이 대목이다. 이후 고전주의는 브람스가 계승하고, 낭만주의는 브루크너가 잇는다. 브람스의 1번 교향곡을 베토벤의 10번 교향곡으로 간주하거나, 교향곡이 아주 작은 소리에서 서서히 시작되는, 이른바 브루크너 오프닝은 모두 합창교향곡의 영향이다. 한편, 낭만파의 거두 바그너는 베토벤의 9번 합창으로 교향곡의 시대는 끝났다고 단언하고, 성악이 있는 교향곡은 음악극에 다름 아닌 것으로 본다. 합창교향곡의 영향력은 오늘날에도 수그러들지 않는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레너드 번스타인은 합창 교향곡의 지휘로 통독을 축하했다. 세계평화와 합창교향곡은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가 되어 전세계인을 감동시켰다. 다큐영화 댄싱 베토벤(Dancing Beethoven/2016)을 통해 우리는 현대무용의 거장 모리스 베자르가 합창교향곡을 안무하는 창의력을 목격한다. 특히 환희의 송가에 맞춰 80여명의 무용수가 손을 맞잡고 행진하는 모습은 전율을 느끼게 한다. 또한 영화 카핑 베토벤(Copying Beethoven/2006)은 1824년 합창교향곡 초연 당시의 상황을 감동적으로 묘사한다. 청력을 완전히 상실한 베토벤은 연주가 끝났어도 끝난 줄 모르지만, 가상인물인 안나 홀츠(다이앤 크루거 扮)의 도움으로 관객들의 환희를 목격하게 된다. 이처럼 베토벤과 합창교향곡은 오늘날에도 꾸준히 여러 예술가들에게 창작의 원천이 되고 있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세계의 평화와 인류애를 갈구하는 ‘합창’을 꼭 감상해 보시라! 공연을 찾아도 좋고, CD로 들어도 좋고, 유튜브로 봐도 좋다. 합창교향곡이 국내외를 막론하고 송년음악회의 단골 레퍼토리가 된 이유를 알게 될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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