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죽은 벽사의 의미로 먹는 음식이다. 동짓날 팥죽을 쑤어 먹기에 앞서 대문이나 벽, 장독대에 발라 놓으면 잡귀를 쫓아 근심을 든다고 여겼다.
그러나 가만히 보면 동짓날 먹는 팥죽은 실상 한겨울 영양 결핍을 막는 기능이 큰 음식이다. 알심이라고 하는 찹쌀 경단까지 넣으면 고탄수화물, 고열량 음식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거나 가게에서 사먹는 형편이 됐지만 불과 20~30년 전까지만 해도 동짓날 팥죽 쑤기 위해 찹쌀로 경단 만드는 집을 예사로 볼 수 있었다. 경단 만드는 일이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일이라 집안 식구들이 총동원 되다시피 했는데 어른들 틈에 낀 아이들이 찹쌀 반죽으로 동물모양을 만들며 킬킬거리기 일쑤였다.
아이들에게 동지팥죽 팥알심은 나이 먹을 때마다 한 해에 한 알씩 더 먹는 통과의례이기도 했다. 아이 때는 마냥 한 알이라도 더 먹고 어른이 되고 싶어 했지만 막상 성인이 되면 알심에 그닥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되니 그래서 어른이 되기 위해 먹는 알심이라 한 것인지도 모른다.
지난 12월 21일에 권원수 님은 페이스북에 사모님의 팥죽 쑤는 모습을 올렸다. 상에 올려놓은 새알처럼 하얀 옹심이 모습이 문득 어린시절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큰 플라스킥 통에 팥을 한가득 쑤어 놓은 것이나 ‘누나들캉 무꼬 담아가는 정이 살아 있다’는 표현을 보았을 때 사모님의 스케일과 정성이 남다른 것을 느낄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사진을 펼쳐 보니 많은 분들이 상에 둘러앉아 함께 팥죽을 들고 계신다. 정겨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누군가의 정성으로 온전히 되살아난 겨울철 세시풍습이 마냥 소담스럽다. 덕분에 어느 새 우리 곁을 떠난 귀중한 수척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