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발레가 급격히 퇴조하면서 19세기의 마지막 30년은 프랑스 발레의 암흑기였다. 발레계는 점점 부패하고, 유망한 안무가와 무용수는 러시아로 떠났다. 이때 무희의 화가라 불리는 에드가 드가(Edgar De Gas/1834-1917)는 1,500여점의 발레 그림을 남긴다. 그러나 드가가 발레의 아름다움을 그림으로 표현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물론 그림은 아름답지만, 그가 화폭에 담은 건 프랑스 발레의 암흑기에 드러난 더러운 현실들이었다. 그림을 보면, 무대로 뛰쳐나가는 에투알(‘스타’ 즉, ‘주연 발레리나’라는 뜻) 뒤에 검은 정장을 한 신사의 모습이 보인다.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그는 에투알의 스폰서로 귀족이나 돈 많은 상인이다. 당시엔 주로 신분상승의 욕구가 강한 하층계급의 딸들이 발레를 했다. 그리고 가난한 어린 소녀들은 돈 많은 아저씨를 애인삼아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했다. 배경을 알게 되니, 그림이 달리 보이지 않는가? 드가는 스폰서가 무대를 들락날락 할 정도로 타락한 파리의 현실을 보여준 것이다.
이번엔 드가의 조각 작품을 보자. 튀튀까지 입힌 이 작품의 주인공은 마리라는 이름의 실존했던 무용수로 당시 14세였다. 마리는 가난한 벨기에 이민자 가정의 둘째 딸이다. 아버지가 죽자 스폰서를 얻기 위해 발레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드가의 전시회마다 따라다니는 이 조각상도 달리 보인다. 고개를 살짝 뒤로 젖히고 눈을 감은 마리의 모습이 참으로 애잔하다.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가 오버 랩된다. 드가가 파리오페라하우스를 드나든 건 바순을 연주하는 친구덕분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피트에 있는 관현악단 연주자들의 연주장면을 그리다가 점점 무대 위로 시선을 옮긴다. 그는 왜 무희들의 아름다움만을 묘사하지 않았을까? 드가는 13살 때 어머니와 삼촌의 부적절한 관계를 목격한 후 지독한 여성혐오증에 빠졌다고 한다. 그의 삐딱한 시선이 작품에 투영된 것이다. 그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다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