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 산내면 의곡중앙길 산내전통시장 안 쪽 버스정류장 한 켠에 젊은 부부가 빵집을 운영하는 ‘느림보 상점’이 있다. 한차례 무작정 찾아갔으나 주인장을 만나지 못하고 허탕을 쳤다. 작고 낮은 빵집은 평화로웠으며 간소했다. 그래서 퍼뜩 ‘위안’이라는 단어가 와닿았는지도 모르겠다. 서울이란 대도시에서 일하던 젊은 부부가 경주 시내서도 40~50분 걸리는 시골인 이곳 산내에 정착해 빵을 굽는다는 사실이 쉬이 믿기지 않았다. 대체 팔리기는 할까. 어떻게 살려고? 언뜻 스치는 생각들이었다.
두 번째 찾아간 이곳은 2018년 1월 개업했으니 만 2년째 영업중이었다. 화요일과 토요일 딱 이틀만 오후 세 시경까지 문을 열고 ‘다팔리면 마감’하니 더욱 애가 탄다. 도무지 손님이 없을 것 같고 잘 팔리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은 분명 기우였다. 작은 가게 문은 수시로 열렸고 빵을 사가며 사람들은 행복해했다.
요식업 일과 바리스타 경력을 갖춘 이곳 주인장 김병기(35) 느린빵 제빵사는 아내인 전지혜(30)씨와 세 살과 10개월 된 아이 둘과 산내에서 산다. 아이 둘을 키우는 엄연한 현실 속에서 건강하게 살면서 바른 먹거리로 건강하게 이윤을 남기는 부부의 삶의 행보는 정직하고 지혜로웠다. 그래서 그들을 느긋하고 편하게 바라보고 응원할 수 있었던가.
상점에는 ‘좋은 재료를 사용합니다. 그날 만들어 그날 팝니다. 바른 식생활을 권합니다’ 라는 문구와 함께 피에르 쌍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한 구절을 인용해 두었다. 굳이 힘주어 말하지 않아도 그들의 삶의 방향을 얼핏 짐작할 수 있었다. 부부는 제빵과 함께 생활 속 환경문제와 행복한 공생을 위한 작은 실천을 커뮤니티와 연계하면서 실천하고 살고 있었다. 동화 같은 공간에서 영화 같은 일을 벌이고 있었다. 기자도 느릿느릿 내려준 커피 한 잔에 초코빵을 곁들였다. 따스하고 고소했다.
-‘느림보의 모든 빵은 우리밀로 만든다’...“저희 병원 말기암 환자들도 이 빵은 먹어요” 11시경 매장을 찾았는데 벌써 대부분의 빵들이 진열돼 있었고 한창 나머지 빵을 굽고 있어 구수한 향이 상점에 그득했다. 서울서 인연이 된 이 부부는 이곳 산내서 아내의 부모님과 나란히 살고 있다.
“부모님이 산내에 살고 계셔서 운 좋게도 이곳에 정착할 수 있었습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큰 돈 벌려고 내려온 것은 아니었고 시골서 생활하며 저희가 추구하는 삶을 꾸려보고 싶었어요”
빵을 진열한 뒤쪽엔 여러 권의 책들이 꽂혀 있었는데 만화 ‘리틀 포레스트’도 눈에 띄었다.
“저 책을 읽고 이곳 산내행을 결심했어요(웃음).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오픈 했어요. 산내에 빵집이 없었기 때문에 일단 도전해 본 거죠. 저희 부부의 작업실도 필요했고요. 생각보다는 문을 열자마자 너무 좋아해주셨어요. 꾸준하게 단골이 늘었구요. 주로 산내면민과 인근도시에서 은퇴 후 산내에서 정착해 살고있는 분들, 귀촌하신 분들도 잘 만들어진 건강한 빵을 드시길 원하셨는데 그 구미에 맞았던 것 같아요. 인근 요양병원 어르신들도 밀가루 음식을 드시고 싶은데 건강한 빵을 찾다보니 합당했던 것 같고요. 경주시내서는 아이 엄마들도 자주 오시고요. SNS로 소통을 자주 하나보니 친분이 쌓이고 서로 소개해주는 거죠”
멀리서 오는 이들은 한꺼번에 빵을 많이 사간다고.
김병기(35) 느린빵 제빵사는 무반죽법으로 빵을 만든다. 무반죽법은 반죽기 없이 오랜 시간 발효하는 방법으로 글루텐 생성이 기존 빵보다는 덜 형성되는 원리로 소화가 용이하도록 돕는 반죽법이다.
“당일 반죽하고 첨가물을 넣어 단시간에 발효시켜 당일 파는 시스템에 비해 전날 반죽해서 12시간 정도 냉장 저온 발효숙성을 거쳐 다음날 새벽에 굽습니다. 신경 써서 체크도 자주 해야 하고 시간과 정성을 쏟아야 하는 반죽법이죠”
인근 의원에서 온 병원 관계자가 “이 빵들은 안심하고 먹을 수 있죠. 저희 병원 말기암 환자들도 이 빵은 먹어요. 속이 편치 않은 환자들도 부대낌 없이 빵을 드시곤 해요”라고 하는 말에 김 대표는 “밀가루 못드시는 환자분들이 저희 빵을 드시고 재방문 해주실 때가 감사하죠. 입맛에 맞고 속이 편하다고 하시면서 좋은 재료와 정성을 들였다는 걸 인정해주시는 거니까요”라며 응대한다.
-사람들과의 교류와 인연 중시...“저희 빵을 즐겨드신 분들이 소문을 내주고 계세요” 왜 ‘베이커리’가 아닌 ‘상점’일까? 빵만을 파는 국한된 이미지를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도자기와 여러 농산물도 팔고 있으니까요. 책도 매개로 하고 싶고 원하는 일이 너무 많아서 가능성을 열어둔 겁니다” 느릿느릿 살면서 여러 시도를 할 수 있는 장(場)으로 확장시켜 둔 것.
이곳에선 디저트 빵이 아닌 주로 식사용 빵으로 주식을 대용할 수 있는 빵을 구워낸다. ‘지리산 통밀 느림보 식빵’을 비롯해 시골빵, 모닝빵, 호두빵, 초코빵 등이 그것이다. 김병기 대표의 서울에서의 바리스타 경력 덕인가. 커피도 기가 막힌다. 원두를 갈아 직접 내려준 커피.
“커피는 테이크아웃을 하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머신을 사용하지 않고 수증기를 이용해 원두에서 커피를 추출하는 모카포트를 사용하므로 5분이상은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서 많이들 그냥 가시죠. 멀리서 오시거나 저희와 이야기 나누기를 원하시는 분들과의 매개로서 커피를 드리고 있어요”
“지난해는 화,목,토 3일 일했는데 둘째가 태어나고 하루를 더 줄였습니다(웃음). 나머지 날은 주로 함께 육아를 해요. 장인어른 버섯 농삿일을 돕기도 하고 시내서 뜻이 통하는 지인들과 마켓을 기획하고 있는데 거기 참가하는 일도 하구요”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거점으로 저희를 응원해주는 사람들과의 교류와 인연을 중시하는 작은 마켓(‘달팽이 시장’을 황오동 ‘오늘은 책방’에서 운영)을 운영중이고 거기서 저희 빵을 즐겨드신 분들이 소문을 내주고 계세요. 이곳까지 오시기도 해요”
취재중에도 단골손님이 전화로 빵을 주문했다. 일주일에 두 번 맛볼 수 있는 공간이라 소진되기 전 아예 빵을 주문해둔다고 한다. 대부분 오후 한 시경이면 대부분의 빵이 다 팔린다.
“경북 여러 곳에서도 오시기도 합니다. 제가 서울 살다와서인지 서울서도 오시구요. SNS로 소통하던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오시죠”
-“저희가 가고자 하는 방향은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틀어질 방향은 아닙니다” “주어진 삶에 방향을 설정하고 더불어 살고 싶어요” 이 상점에선 이들 부부의 부모님이 제작하고 생산한 생활도자기 몇 점과 표고버섯을, 산내면 우라리 ‘꿈우라’ 생산품, 건천 아화 도리마을에서 생산한 농산물들도 함께 팔고 있다. 공유하고 커뮤니티를 구성해 조화롭게 공생하는 모습이었다.
“내년엔 아내와 둘이 함께 매장을 좀 더 확장해 일 할 계획입니다. 아내와 제과도 시도할거고 다음달 경 재정비 차원에서 리모델링을 구상 중입니다. 또 환경과 연관된 제품들, 즉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포장을 줄이거나 재활용이 가능한 재료를 사용해서 쓰레기를 줄이려는 세계적인 움직임)를 하기 위한 전시공간도 구상중이고요.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고 싶어요. 쿠키나 빵도 비건(vegan, 완전한 채식주의) 옵션을 만들어 동물성 식품이 들어가지 않아도 충분히 맛나게 먹을수 있다는 것과 그들을 줄여햐 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도 하고 싶습니다”
부부는 케익을 찾는 수요도 꾸준해서 향후 제과도 구상중이다.
매장 확장도 염두에 두고 있는데 아내 전지혜 씨는 “저희가 가고자 하는 방향은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틀어질 방향은 아닙니다. 행복에 대한 가치 추구나 환경을 생각하는 방안, 함께 살고자하는 마음들은 시간이 지나도 동일하게 가져갈 생각이고 상황마다 거기에 맞춰서 조화롭게 살 겁니다. 육아에서 다소 편해지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일을 할 수 있겠죠. 주어진 삶에 방향을 설정하고 더불어 살고 싶어요”라며 야무지게 말한다. ‘흔들림없는 선함과 지식, 지혜, 친절함과 사려깊음’..., 그들은 자신들이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알고 최대한 그 삶의 방향을 실현하려 애쓰는 이들이었다. 산내라는 시골에서 평범하게 육아에 지치기도 하며 빵을 만드는 일상적 소소함을 즐기며 열정적 삶의 태도를 견지하고 있었다. 요란하게 꾸미지 않은 수수한 상점의 외관과 그들 부부의 외모는 자신들이 추구하는 빵을 만드는 정신에 그대로 닿아있었다. 방향성이 같은 다른 이들과의 공생을 염두에 두고 다른 이들을 배려하고 생각하는 부부였다. 산내면 시골, 느림보 상점에서 새어나오는 노란 불빛은 희망과 위로의 매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