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선생님은 2019년 11월 18일 오후 6시 28분에 돌아가셨습니다. 남산 봉우리의 구름은 흐린 듯 갠 듯 언제나 지나가고, 선도산의 아침 햇살과 저녁노을로 온통 단풍은 짙게 물들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선생님께서 평생 거니시던 동부동 뒤안길의 늙은 감나무에 잎은 모두 떨어지고 빨갛게 익은 홍시만 주렁주렁 매달려 있습니다. 탐스럽고 먹음직스럽습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선생님께서 한 가지를 꺾어다 책상 앞에 매달아 둔 그 감나무 말입니다. 아마 오래 전에 돌아가신 어버이가 그리웠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속세의 모든 연을 끊으시길 바랍니다. 가지고 가실 것은 아무런 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남겨 둘 것도 없습니다. 옛 사람들이 삶은 무상하다 공(空)이다 하는 말은 이를 두고 이른 것입니다.
그렇지만 선생님, 인간의 이별이란 참으로 괴롭고 아픈 일입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누구나 겪는 섭리이지만, 선생님의 삶을 뒤돌아보면 너무나 아쉬운 일들이 많습니다. 제가 경주문화원에서 처음 선생님을 만나 뵀을 때 항상 미소를 띠고 계시던 그 풍모를 잊을 수 없습니다. 자상하심은 선생님이요, 인자하심은 어버이였습니다. 선생님은 1929년 2월 28일 경주시 북부리 167번지에서 5남 3녀 중 여섯째로 태어났습니다.
1952년 국립대구사범대학 문학부 국문학과를 졸업하시고 모교 경주중학교에 부임하였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뜻밖에 경주중학교 야구부 감독을 맡아 1959년 8월에 대통령 친서 우승기 쟁탈전 겸 제5회 전국중학교연식야구선구권대회에서 우승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믿기 어려운 성과였습니다. 선생님은 어린 선수들과 숙식을 함께하며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며 집념을 불태웠던 것입니다. 전국 제패의 우승컵은 너무나 값진 선물이었고 지금까지 없었던 일을 해냈습니다.
그러나 경주역에서 도열한 환영 인파의 함성이 채 가시지 않은 마당에서 야구부는 해단되고 말았습니다. 감독 교사로서 참담한 현실을 감내할 수 없었겠습니다. 이후 모교 교단을 오래 지키지 못하시고 영천고, 경주여고, 근화여고 등을 전전하였습니다.
1968년에 경주청년회의소 소장, 1973년 경주지역관광협의회 사무국장, 1987년 동부산대학 강사를 역임하시고, 2006년 『경주시사』 집필 및 편집상임위원, 2007년 경주문화원부설 경주전통연보존회를 창립하였습니다. 1934년에 간행된 조선총독부 생활상태조사(7) 『경주군(慶州郡)』을 국역하여 경주 근대사 자료 발굴에도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마침내 2012년에 제7대 경주문화원장에 취임하여 여든 셋의 노령임에도 불구하고 노익장으로 활동하였습니다. 2014년에 경주문화원 50년사 발간 및 ‘경주문화인의 다짐’ 비를 건립하였고, 한국의 역사마을 양동 활용사업 7개 사업을 적극 추진하는 등 경주 역사문화 창달에 이바지 한 바가 적지 않았습니다.
2014년 봄에 선생님은, 평생 자호(自號)를 사용해 본 적이 없었다며 저에게 부탁을 하셨습니다. 저는 이를 감당하지 못한다며 고사(固辭)했으나 굳이 청하셨습니다. 며칠 후 저는 ‘동암(東庵)’이란 두 글자를 정서해서 보여 드리니, 선생님은 ‘내가 동도(東都) 동부리(東部里) 사람임을 그대가 어떻게 그리 잘 알았느냐’며 파안을 하시고 흐뭇해하였습니다. 특히 2015년 6월 일성 조인좌 선생 현창발기인대회 준비위원장을 맡은 선생님은 해방 후 격동기 때 일성 선생의 은공에 보답하게 되어 매우 기쁘다며 기적비(紀績碑) 건립에 적극 앞장섰습니다.
2017년 10월에 『남기고 싶은 경주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아흔에 가까운 연세이었지만 선생님의 기억은 매우 맑았습니다. 경주읍성과 관부 및 시내 일원의 근대 유적 변천 과정을 19개 항목에 걸쳐 소상하게 밝혔습니다. 하마터면 묻힐 뻔 했던 경주역사의 중요한 사료로 지금 후인들의 지남(指南)이 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건강이 좋지 못한 최명자(崔明子) 여사를 두시고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슬하 3남 1녀의 따뜻한 보살핌이 있을 것이니 걱정하지 마시고 두터운 신심으로 다니시던 천주교의 교리에 따라 편안히 가시기 바랍니다.
평소 자주 찾아뵙지 못하고, 병석에 계실 때도 따뜻하게 문후 한 번 드리지 못한 제가 이제 영전에 몇 자의 글을 올리려니 회한과 눈물이 옷자락을 적십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넓으신 아량으로 굽혀 보살펴 주실 것으로 생각하며, 이만 황사(荒辭)를 줄이려 합니다. 아!, 애통합니다.
-조철제 경주문화원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