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화로 인해 우리의 일상생활은 많은 변화를 겪게 되었다. 걸어 다니는 것보다 차를 더 오래 타게 되었고, 단독주택보다는 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장을 볼 때도 마트에 가서 1주일 치 먹을거리를 한 번에 사서는 냉장고에 쟁여두고 산다. 집과 학교, 일터는 이전보다 멀어졌으며, 주변에 오래된 것들은 사라졌고 지금도 사라지고 있다. 혹자는 깨끗하고 편리한 환경에서 지내게 되었으니 삶의 질이 더 나아진 게 아니냐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는 그동안 좀 더 빠르고 편리한 방향으로 삶의 방식과 일터의 모습을 바꿔 왔다. 유행처럼 주변을 따라잡으면서 얻은 것들도 있겠지만 정작 놓치지 말아야 할 우리주변의 귀중한 것들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닐까? 누군가 나에게 어떤 도시가 좋은 도시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언 컨데 오래된 것들이 많고 걸어 다닐 수 있는 작은 도시라고 말할 것이다. 오래되었다는 것은 낡은 곳이고, 걸어 다녀야 하는 곳은 교통이 불편한 곳이며, 작다는 것은 뭔가 부족하고 없는 곳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오래된 것이 새 것보다 더 큰 활력과 파장을 불러오고, 걸어 다님으로 인해 보게 되고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많으며, 작은 마을은 넓고 큰 아파트단지에는 없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능력들을 활용하는 것이 지방중소도시이자 역사문화도시인 경주의 지향점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세 가지 도시계획과 관리 방향을 제안한다. 첫째, 아주 오래된 것을 위해 조금 덜 오래된 것을 등한시하지 말자. 역설적으로 오래된 것들은 도시에 젊음과 활력을 불러온다. 여기서 오래된 것들은 역사유적이나 유물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최근 관광객들은 단순히 문화유적만을 보기 위한 목적으로 경주를 방문하지 않는다. 몇 대를 이어온 오래된 맛, 누군가의 흔적이 서린 골목길과 장소를 포함한 모든 것이 도시의 매력요소가 될 수 있다. 문제는 지금 오래되고 가치 있는 것들을 보전하는 것이 더 오래된 것들의 복원에 그 우선순위가 밀린다는 것이다. 지금 남은 소중하고 오래된 것들부터 챙겨야 나중에 아쉬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둘째, 걸어 다닐 수 있는 도시환경을 만들자. 일반적으로 차가 많아 도로가 막히면 길을 넓혀야 되지 않느냐고 한다. 하지만 그 반대로 차도를 줄이면 차가 줄어든다. 서울시에서 청계천 복원사업으로 고가도로를 철거하고 주변 도로를 줄이자 도로용량에 맞게 교통량이 감소했다. 오히려 복원이후 차가 줄어든 청계천 주변을 즐기려는 시민들로 북적이게 되었고 덩달아 주변 상권도 활성화되었다고 한다. 차를 타고 다니는 것은 출발점과 목적지만 있다. 그 중간 경로는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걸어 다니는 도시는 출발하여 목적지에 이를 때까지 도시의 여러 풍경들과 마주하며, 그 도시를 즐기며 다닐 수 있다. 관련하여 최근 사람들이 도시를 걸으며 즐기려고 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바로 황리단길, 읍성길과 같은 걸으며 즐기는 명소들이 전국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차를 타고 다니면 느낄 수 없었던 길의 매력에 사람들이 빠져든 것이다. 마지막으로 작은 도시를 지향하자. 작은 도시는 높은 건물이 아닌 낮은 건물과 넓지 않은 길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주택과 일상생활을 위한 가게들이 적절히 섞여있는 곳이다. 아파트 단지의 주변 도로에는 인적이 드물지만, 아담한 가게들과 주택들이 모인 마을길은 사람들로 활력이 넘친다. 집안일을 하며 창밖으로 애들이 뛰어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차를 타고 마트에 가지 않아도 집근처에서 생필품을 구할 수 있으며, 이웃들과 마주치고 안부를 전할 수 있는 소통기회가 많아지게 된다. 사람들이 많은 작은 마을은 소위 ‘거리의 눈’이라 불리는 이웃들의 시선이 있어 굳이 CCTV가 없어도 안전한 마을이 될 수 있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경주는 오래되고 걷기 좋은 작은 도시를 지향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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