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밤잠을 설쳤다. 밤새 뒤척이게 했던 일이 다음날 보니 별것 아니었다는 말이다.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아닌 일에 몸은 이삼일은 족히 흐느적대야 할 것 같다.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봤을, ‘마음이 저지르고 몸이 뒤처리하는’ 일이다. ‘아, 그때 그렇게 했었어야 했는데...’하는 가정법에서 우울증이 시작되기도 한다. 지우고 싶고 부정하고 싶은 일을 애써 부정하는, 그래야만 마음이 편할 것 같은 ‘그때 그렇게 했더라면...’ 식의 가정은 불행히도 침대에 누운 사람을 이리 메치고 저리 내동댕이친다. 부정적 생각을 끝없이 계속하는 소위 ‘반추사고(rumination)’는 우울증에 불면증을 부른다. 끝없이 반복되는 생각에 몸은 지칠 대로 지쳐있지만 정신은 오히려 또렷해지니 그 부조화로 밤을 홀랑 새우는 건 당연하다. 신나게 놀고 있는 아이들을 가만히 지켜보면, 가령 1살짜리 아기는 반경 1m에만 관심을 두고 3살짜리는 3m 정도까지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뭔가 온전히 집중하는 게 어려워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어른이 되면 고려할 게 그만큼 많아지고 마음속 고민하던 게 나이 수만큼 많아지기에 눈앞에 본 것도 잘 기억하지 못하고, 방금 들은 것도 잘 까먹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분산된 마음을 ‘지금 바로 여기(right here and now)’로 끌어다 놓는 연습을 해야 할 이유다. 애들은 보통 눈앞의 것에 온 주의를 기울인다. 모든 게 신선하고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비 오는 날, 땅 속 지렁이는 하나둘 기어 나온다. 커다란 학교 가방을 메고 우산을 든 채 쪼그리고 앉아 그 생경한 생명을 살피는 아이들 눈은 경이로움 그 자체다. 김새는 타이밍이지만 그 아이들은 사실 우리였다. 호기심으로 반짝거렸던 내 어린 눈을 지금 여기서 다시 찾아야 할 절실함은 그래서 충분하다. 몸은 한 방향으로 쓰다 보면 금방 뻣뻣해진다. 어르신들을 뒤에서 보면 한쪽 어깨가 올라가 있는 모습을 본다. 익숙한 데로만 움직여온 습관이 몸에 남아서다. 그래서 평소와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여야 몸이 부드러워진다. 유연한 아이들이랑 달리 굳이 시간을 내어 스트레칭을 해야 한다. 마음도 몸과 똑같다. 마음도 여태 익숙하고 편안한 방식으로만 작동한다. 그것이 바로 잡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이런저런 생각으로 지금 그리고 여기를 채우고 있다. 잡념으로 머리가 복잡한 이런 상태를 몽키 마인드(monkey mind)라고 한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원숭이의 특성을 포착해 만든 개념이다. 그 원숭이가 밤새 내 마음속을 헤집고 다니니 시뻘건 눈을 한 채 홀로 괴로운 것이다. 그럼 여기서 그 원숭이를 길들이는 팁 두어 가지. 먼저 원숭이에게 무관심할 줄 알아야 한다. 사람은 잡념을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나와 잡념을 동일시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괴롭다. 나는 나고 잡념은 잡념일 뿐이다. 비유하자면, 나는 그저 산이고 잡념은 내 주위를 오고 가는 구름일 뿐이다. 이제 잡념에 대한 방관자 또는 관찰자가 되어야 한다. ‘아, 지금 이런 생각 때문에 내가 화가 나 있었네’하고 나에게서 원숭이를 분리시키는 거다. 원숭이를 하나의 키워드 안에 집어넣는 방법도 있다. 잡념이라는 이름의 인지왜곡에 이름표를 붙이다 보면 그 해결책이 쉬이 떠오른다. 나를 괴롭히는 잡념은 의외로 한정적이다. 한평생 나를 괴롭히는 다양한 콤플렉스를 하나하나 찬찬히 역추적하다 보면 ‘아, 통통한 내 얼굴이 맘에 안 드는구나’하는, 단일의 근원에 도달하게 된다. 결코 충족될 수 없었던 내 마음 그 깊숙한 욕구(deep needs)에 이름표를 하나씩 붙여나가다 보면 어느새 해결책이 떠오르게 된다. 접근 방식을 바꾸어보는 것도 좋다. 만약 불면증으로 고생한다면 ‘오늘은 꼭 세 시간은 자고야 말겠어’ 하는 생각보다는 조용한 음악을 들어본다거나 방을 어슬렁거리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두 시간 넘게 걸리는 마라톤도 결국 한 발자국으로 시작되고 끝나듯, 문제 전체를 보지 말고 삼킬 수 있는 한 모금씩 한 숟가락에만 집중해 보는 방식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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