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향가(思鄕歌)                                                         박목월 밤차를 타면아침에 내린다. 아아 경주역. 이처럼막막한 지역에서하룻밤을 가면그 안존하고 잔잔한영혼의 나라에 이르는 것을. 천년을한가락 미소로 풀어버리고이슬 자욱한 풀밭으로맨발로 다니는그 나라백성. 고향 사람들.땅 위와 땅 아래를 분간하지 않고연꽃하늘 햇살 속에그렁저렁 사는그들의 항렬을, 성(姓)받이를. 이제라도갈까 보다. 무거운 머리를차창에 기대이고이승과저승의 강을 건너듯하룻밤새까만 밤을 달릴까 보다. 무슨 소리를. 발에는 족가(足枷). 손에는 쇠고랑이. 귀양 온 영혼의무서운 형벌을. 이 자리에 앉아서돌로 화하는돌결마다구릿빛 시뻘건 그 무늬를. -마음 속에 존재하는 두 개의 고향 박목월에게 고향 경주는 어떤 곳인가? “밤차를 타면/아침에 내”리는 곳(1연), “막막한 지역” 건너편, 다다르고 싶은 “영혼의 나라”(2연)이다. “천년을/한가락 미소로 풀어버리고”(3연), “땅 위와 땅 아래를 분간하지 않고 그렁저렁 성받이가 살고 있는 곳”(4연)이다. 천년 고도로, 무수한 산 자와 죽은 자가 땅 위와 땅 아래를 분간하지 않고 사는 지역이다. 그런데도 화자는 왜 “이승과/저승의 강”(5연)이라는 공간적 거리를 넘을 수 없으리라는 체념에 잠기는 걸까? 여기에 이 시의 문제의식이 있다. 우리는 여기서 시인이 고향을 두 가지 범주로 나누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실적인 고향과 생명의 근원으로서의 본향 말이다. 하룻밤 사이에 도달하는 경주라는 지역은 비근한 현실적인 고향에 불과한 것이고, 생명의 근원인 본향은 영원히 닿을 수 없는 강기슭과 같은 곳이다. 그래서 시인은 자신을 “귀양 혼 영혼”(6연)으로, “발에는 족가, 손에는 쇠고랑”을 찬 사람이라 명명한다. 이는 가장과 직업인으로서의 의무를 넘어선다. 7연의 “구릿빛 시뻘건 무늬”는 그래서 영원한 고향을 그리는 그리움의 무늬이다. 그것은 스스로 고향을 부정하는 심리적 기제가 아니라, 끝내 고향에 닿을 수 없다는 인식에서 발원한다. 결국 이 시의 근저에는 이상적 고향은 경주에 직접 가더라도 찾을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래서 시인은 『박목월자선집4』(삼중당, 1974, 24-25쪽)에서 고향을 “마음의 안식을 갈구하는 그 속에 존재하는 것이며, 본향(本鄕)을 동경하는 우리의 사모와 동경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라 했나 보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