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기의 발레는 남성 중심의 예술이었다. 태양왕 루이14세가 발레리노였다는 사실을 봐도 알 수 있다. 이런 현상은 18세기에도 계속되었다. 여성 무용수는 치렁치렁한 긴 치마에 굽 높은 구두를 신었다. 아무래도 바지를 입은 남성 무용수보다 동작에 더 많은 제약을 받는다. 치마에 갇혀있는 다리는 기교를 부려도 보이지 않아 무용지물이다. 게다가 여성이 발목을 노출하는 건 시대의 금기사항이었다.이때 발레계의 반항아가 나타난다. 1726년 파리에서 데뷔한 벨기에 태생의 마리 카마르고(Marie Camargo/1710-1770)는 치마를 발목 위로 잘라버리고 무대에 등장하여 금기를 깨버린다. 카마르고의 이런 파격적인 행위는 매우 큰 호응을 얻었다. 치마길이는 고작 발목 위 15cm까지였지만 여성 무용수들을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발레복으로부터 해방시킨 혁명이었다. 당시 카마르고의 발레의상은 큰 인기를 끌었다. 더불어 그녀의 헤어스타일, 의상, 그리고 신발까지도 카마르고 풍이라 불리며 유행했다. 그녀는 오늘날로 치면 최고의 패셔니스타(fashionista)였던 것이다. 아무튼 카마르고가 남성 중심의 발레에서 벗어나 19세기에 발레리나의 전성시대를 여는 선구자 역할을 담당한 건 분명하다. 1832년 파리에서 초연한 라 실피드(La Sylphide)에선 전에 없던 발레동작이 등장한다. 발가락 끝으로 서는 쉬르 레 푸앵트(sur les pointes)라는 동작으로 일명 ‘까치발’이라고 한다. 이 동작은 이탈리아 출신의 마리 탈리오니(Marie Taglioni/1804-1884)가 처음 선보였다. 당시에는 토슈즈가 나오기 전이라 순간적으로 올라섰다가 바로 내려오는 것에 불과했겠지만 탈리오니의 까치발은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라 실피드는 지젤과 함께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발레다. 공기의 요정(실피드의 사전적 의미)들이 입는 종 모양의 로맨틱 튀튀(romantic tutu)는 카마르고의 혁명적인 치마를 계승한 것이다. 발목 아래로 보이는 여성 무용수의 까치발 동작은 발레사의 중요한 한 페이지가 되었다. 카마르고의 치마가 없었다면 탈리오니의 까치발도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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