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닥불
백석
새끼 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랑잎도 머리카락도 헝겊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 짖도 캐터럭도 타는 모닥불재당도 초시도 문장門長 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도 땜쟁이도 큰 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 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쌍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버려진 것들이 만들어 내는 새로운 공동체
백석은 일본에서 영문학을 전공할 정도로 현대시의 감각에 조예를 갖고 있는 시인이다. ‘모던 보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준수한 외모를 갖추었고, 영화와 유성기 음반 등 당대적 문화적 감수성에도 예민했다. 그런 그가 전설과 샤머니즘, 풍속 관련의 내용들을 평안도 방언을 사용하여 무수하게 나열된 엮음의 표현방식으로 담아내면서, 당대 시단과 거리를 둔 개성적이고 독자적인 시세계로 현대 시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구축했다는 것은 참으로 뜻깊은 일이다. 「모닥불」은 그의 엮음의 표현방식이 잘 드러나는 시다. 그것은 1,2연의 보조사 ‘도’의 사용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1연의 무수한 ‘도’는 “타는 모닥불”을 수식하는 기능을 하고, 2연의 ‘도’는 주체의 기능을 수행한다. 1연에서 모닥불의 소재를 구성하는 사물들은 제 기능을 잃은 것들, 본체로부터 떨어져 나간 부스러기들이다. 그것들이 마지막으로 타오르며 온기를 전한다. 이는 자기희생을 통한 사랑의 실천이라는 함의도 갖고 있다. (모닥불을 쬐는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배우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살리는 것이 바로 ‘도’이다. “새끼오리” 하나만으로 불을 일으킬 수 없다. ‘헌신짝’, ‘소똥’, ‘갓신창’(가죽신 바닥에 댄 것), ‘개니빠디(개이빨)’ 등이 차례로 던져져 공동체가 되면서 불을 쬐는 대상을 따뜻하게 한다. 그들 사이에는 차별이 없다. 2연에서 ‘도’의 기능도 마찬가지다. ‘도’는 개별자를 지우지 않고 살려내는 기능을 한다. 2연에서 모닥불을 중심으로 원형을 이루며 모인, 마을 사람과 상인, 동물을 망라하는 주체들은 각기 짝을 이루고 있다. 이 짝은 ‘재당(향촌의 최고 어른)과 초시(한문을 좀 아는 유식한 양반)’, ‘문장門長 늙은이(문중의 나이가 제일 높은 어른)와 더부살이 아이’ 등 같은 영역 안에서 지위와 나이의 높고 낮음에 따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닥불을 쬐는 사람과 동물, 그 살아 있는 개별자들이 모두 다 평등하게 모닥불 앞에서 공동체가 된다. 3연에서 시인은 모닥불을 보며 할아버지를 떠올린다. 할아버지는 어려서부터 불쌍하게도 가정이라는 혈연 공동체로부터 벗어난 “몽둥발이가 되는 슬픈 역사가 있다.” 몽둥발이란 ‘ 려 붙었던 것이 다 떨어지고 몸뚱이만 남은 물건’, 즉 고아로 자라난 할아버지 모습의 비유다. 할아버지는 외롭고 힘들게 불을 쬐면서 슬픈 생애를 살아왔을 것이다. 3연은 모닥불의 함축적 의미를 한 개인의 삶의 역사를 통해 드러낸다. 여기서 우리는 새로운 하나의 사실을 발견한다. 1연에서 드러난 버려지고 떨어져나온 것이 바로 3연의 할아버지 같은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해서 이 시는 할아버지 같은 무수한 존재들이 모닥불의 역사를 이루고 있는 주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 기실 이 세상의 빛과 온기를 만드는 것은 잘 난 것들이 아니라 버려지고 소외된, 수많은 하찮은 것들이다. 이는 우리 역사도 마찬가지다. ‘도’의 나열을 통한 리듬감, 1,2연의 댓구와 3연의 종합 등이 개성을 이루는 이 시가 돌올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