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 유명한 병원이 하나 있다. 환자를 잘 봐서 사람들이 줄을 선다거나 그런 의미는 아니다. 의사 선생님의 독특한 버릇으로 유명한 병원이다. 아침저녁으로 기온 차가 심한 환절기가 와서인지 침을 삼키는 게 영 불편해 또 그 유명한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그저께부터 그랬는데, 목이 점점 아파요, 침 삼키기도 힘들고요” 정말 아픈 표정을 구현(!)하고자 얼굴을 좀 과하게 우겨보지만 의사 선생님은 컴퓨터만 쳐다본다. "목소리도 갈라지고요, 이렇게 이런 식으로 저음만 나와요” 하고 주의를 끌어 봐도 마찬가지다. 잠시의 정적이 있는 다음 선생님은 간호사로부터 건네받은 기구로 내 목구멍을 들여다본다. 이리 보고 저리 보더니 다시 건네받은 기구로 내 콧구멍 속도 들여다본다. 10센티도 안 되는 거리에서 당신은 내 목구멍 속이 궁금하겠지만 환자인 나는 당신 속이 궁금하다. 진지하게 내 속살(?)을 봐가며 체크해 주는 건 정말이지 고맙지만 굳게 닫힌 그 입 속은 도통 알 수가 없다.
궁금해 하는 나를 뒤로 하고 그 선생님은 다시 컴퓨터를 쳐다보며 타닥타닥 뭔가를 두드린다. “삼 일 후에 다시 오세요” 앗, 드디어 의사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선생님과 눈이라도 마주치려고 여태 노력했건만 모든 게 허사다. 간호사가 문을 활짝 열며 “다음 환자분 들어오세요”하는 소리에 아, 오늘도 아이 콘택트(eye contact)는 물 건너갔구나 싶다.
그랬다. 그 의사 선생님은 환자랑 절대 눈을 마주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 병원이 손님으로 북적거리는 건 두어 가지 이유에서 일 것이다. 진료를 잘해 잘 낫거나, 아니면 독한 약을 써서 웬만한 병은 다 낫거나, 아님 그 선생님과 미처 해보지 못한 눈싸움에 대한 오기 아닐까 싶다. 참고로 나는 세 번째다. 인간의 눈은 여느 동물과 다르다. 개만 해도 검은 눈동자 주변에 흰자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눈이 큰 퍼그나 불도그가 사랑을 받는 이유다. 반대로 사람의 눈동자는 검은 눈동자 주변에 흰자가 많다.
이 말인즉슨 인간은 지금 어디를 쳐다보는지 쉽게 알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검은 눈동자가 목표를 향해 움직이면 주변의 흰자와의 조화로 식별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진화론적으로 볼 때 인간은 타방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사회적 동물임 일 상징하는 눈이기도 하다. 상대가 내 말에 집중하는지 딴짓 하는 지는 눈만 보면 알 수 있다.
사춘기도 아이가 엄마·아빠 눈을 의도적으로 피하는 데서 시작되지 싶다. 초등학교 6학년인 우리 아들만 해도 그렇다. 엄마보다 이젠 머리통 하나 더 커진 녀석은 엄마 잔소리에 등으로 반응한다.
아빠가 “아들, 양치질하고 나가” 하고 소리치면 뒤도 안 보고는 “응, 아니야~” 하고 문을 쾅 닫아버린다. 그나저나 요즘 애들이 잘 쓰는 “응, 아니야”는 응(yes)이라는 말인지 아니(no)라는 말인지 도통 모르겠고, 덩달아 기분까지 찝찝해지니, 이 역시 아이 콘택트의 부재가 가져온 부작용이다.
어떤 사람이 부처님께 "저는 하는 일마다 되는 게 없어요. 도대체 왜 이럴까요?” 하고 한탄하자, 부처님은 "그것은 자네가 남에게 베풀지 않기 때문이다" 라 했다. 그 사람은 "저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빈털터리라서 남에게 보시할 것이 없는데요?” 하자, 부처님은 "아무리 재산이 없더라도 보시할 게 있느니라" 하며 ‘돈 안 드는 최고의 보시[무재시:無財施]’를 가르쳐 준다. 부드럽고 웃는 얼굴로 남을 대하는 화안시(和顔施),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언시(言施), 깊은 사랑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심시(心施) 등이다.
친구 딸이 좋은 대학에 합격했다는 소식에 웃는 얼굴로 수화기를 드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내 아들도 같이 지원했지만 아쉽게 떨어지고 친구만 붙었다면 우린 과연 웃는 얼굴로 축하할 수 있을까? 절대 쉽지 않다. 돈 한 푼 들지 않는다는 무재시는 아무리 많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다는 점이 포인트다.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기가 그래서 쉽지 않다. 눈과 눈으로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는 그 보시가 쉬울 리 없다.
목도 못 가누고 눈도 못 뜨는 아기를 하루 종일 지키는 아기 엄마들이 우울증에 걸리기 쉬운 이유 중 하나는 원활치 못한 아이 콘택트 때문이라고 한다. 충분한 근거가 있다 싶다. 아무튼 우리 동네 의사 선생님, 제가 좀 뒤끝 있는 성격이라 죄송한데요, 목구멍만큼만 저도 좀 봐주시면 안 될까요? 부탁 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