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산강 부조장터 중명리 마을 형산(兄山) 바로 남쪽에 중명리(中明里)란 동네가 있다. 포항과 경주의 접전지역으로 150여 년 전 우리나라 3대시장의 하나인 형산강 부조장터로 크게 번성했던 지역이다. 당초 경주 강동면 소속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포항에 이속 되었다. 동네 입구에 노거수들이 더러 있고, 부조장시절 유공현감들의 공적비가 두어 개 설치되어 있다. 이 동네는 신라시대 연오랑과 세오녀가 왜국으로 떠나고, 신라 땅에서 해와 달이 없어지자, 왕이 이를 다시 찾기 위해 사신을 보내 그들을 만나게 했다. 사신이 이들로부터 가져온 비단옷을 놓고 제사를 지내니, 해와 달이 다시 나타나고, 이때 광명이 비추는 한가운데 이 마을이 있었다고 하여 「중명(中明)」이라 불렀다고 한다. 동네와 맞물려 소형산(小兄山)이 있고,「부조정」이란 정자와 그 안내판이 이 산 정상에 있다.▶중명리 옥녀봉 이야기 중명리에 골짜기 따라 생태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뒷산 주변에 둘레길이 있어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산봉우리에 오르면 이곳 옥녀봉에 대한 전설이 다음 가 같은 내용으로 안내판에 적혀있다. 옛날 형산강변 마을에 옥녀라는 착하고 아름다운 소녀가 어머니와 함께 살았는 데, 어머니가 병이 들자 좋다는 약초를 뜯어 보살폈으나 별 차도가 없었다. 어느 날 약초를 팔러 부조장터에 나갔다가, 마음씨 좋은 젊은 상인을 만나게 되고 좋은 약을 구해 어머니 병을 낫게 했다. 그로인해 두 남녀는 서로 사랑하게 되었고, 얼마 후 혼인을 약속하고, 마을 앞에 결혼서약으로 서로 나무 한그루씩을 심었다. 그 후 상인은 열심히 돈을 벌며 옥녀 집을 들리곤 했는데, 어느 날 부터 발길이 끊어졌고, 그리고 세월이 지나 어머니마저 돌아가셨다. 그 후 옥녀는 날마다 산봉우리에 올라 형산강을 바라보며 그를 기다렸다. 그리고 부조장터를 돌며 젊은 상인을 수소문 하고 다녔으나 그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를 애타게 기다리다 심신이 지쳐 갔고, 기어코 어느 날 산봉우리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 후 사람들은 옥녀의 지극한 효성과 정절을 기려, 이곳을 옥녀봉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택전리의 연리목 이야기 중명리에서 중단리를 지나, 택전리로 가는 길은 한적한 신작로 길이다. 길게 백일홍 나무가 이어있고, 익어가는 나락 풍경, 논두렁 콩 등 주변이 완연한 가을 시골 풍경이다. 옛날 신라시대 어느 권세 있는 재상이 형산강 변 좋은 터에 대궐 같은 집을 짓고 살면서부터 그 앞으로 마을이 생겼다는 전설에 따라 동네 이름이 택전(宅前)이 되었다고 전해온다. 이 마을에 큰 회화나무와 느티나무가 서로 붙어 자라는 아름드리 큰 연리목(連理木)이 있다. 옛날 옥녀와 젊은 상인이 혼인서약으로 심었다고 전하는 나무로, 남녀가 서로 붙어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그 주변에 30여 그루의 큰 나무들이 숲길을 형성하며 하늘을 가리고 있어, 봄여름에는 시골 들바람이 불어 시원하고, 가을에는 단풍경치로 아름답고 고적하다. 연리목을 중심으로 택전 마을의 쉼터로 이용되고 있다. ▶언약의 숲과 작은 행복문고 숲속 쉼터에는 큰 나무 의자 5~6개가 놓여있고, 펑퍼짐한 바위들이 띄엄띄엄 좌석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에 작은 도서함이 마련되어있고, 누구든지 책을 뽑아 볼수있게 되어있다. 높이 2미터 정도의 책 나무 상자에 도서 40여권이 꽂혀있는 게 전부다. 책들은 낡아 있고, 손 떼가 묻어 있다. 시골사람들의 체온과 정감을 느끼게 한다. 서고에 적힌 이름이‘숲속의 작은 행복 문고’이다. 이 마을 에는 음력 7월7석이면 이 연리목에서 중명리의 옛날 옥녀와 젊은 상인, 두 연인이 만난다고 믿어 오고 있다. 사람들은 그 때 젊은 상인이 돌아오지 않아, 옥녀가 기다리다 지쳐 죽게 된 것은 마음이 변해서가 아니라 그가 풍랑에 숨진 탓이고, 이렇게 연리목이 되어 우람하게 잘 크고 있음은 옥녀와 하늘나라에서 혼인도 하고, 잘 살고 있다는 증표로 보고 있다. 세월이 흘러 지금에도 이 앞에서 남녀가 사랑을 다짐하면 꼭 이루어진다고 전해오고 있다. 옥녀와 젊은이가 잘 돌봐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연리목을「언약의 나무」라고하고, 이 나무가 있는 택전리 마을의 숲을 「언약의 숲」으로 부르고 있다. 이종기 문화유산해설가·시민전문기자 leejongi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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