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에서는 게르만인보다 못하고, 기술력에서는 에트루리아인보다 못하고,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인보다 뒤떨어진 로마인들이 어떻게 지중해를 통합하고..... 오랫동안 번영할 수 있었을까.” 시오노 나나미는 이런 의문을 가지고 「로마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같은 의문을 우리 고대사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군사력에서 고구려에 뒤떨어지고, 문화적으로 백제보다 앞서지 않았던 신라가 어떻게 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을까? 시간나는 대로 주변의 유적을 둘러보며 늘 곱씹었던 의문이다. 역사에 문외한으로서는 해답을 구하는 것은 쉽지도 않을 뿐더러, 가능할 것 같지도 않다. 그러나 나름대로 생각하건데, 새로운 것에 대한 포용이 아닐까 싶다. 박혁거세나 석탈해, 김알지 그룹의 집권이 피비린내를 동반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황룡사를 세우기 위해 아비지를 초청했다는 점에서, 처용 그룹으로 대표되는 아라비아인들과의 교류 등 포용을 통해 사회를 바꾸고 역사를 주도해간 신라인의 모습은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 ‘새로운 것을 포용한다’는 것은 제 것을 버리고 맹목적으로 새 것을 추종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기존 사회를 지탱해왔던 낡은 사고를 버리고 끊임없이 사회를 혁신하려는 의지의 다른 표현인 것이다. 그래서 신라 발전의 키워드를 혁신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우리 사회 곳곳에서도 혁신의 물결이 거세게 일고 있다. 국가 기관이 그렇고, 지역 사회가 그렇다. 세계화의 거센 물결 앞에서 기존의 낡은 방식으로는 국가나 지역 사회, 기업이나 개인은 이제 더 이상 생존조차 쉽지 않게 되어 간다.
이런 점에서 우리 지역의 생존과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우리는 어떻게 혁신해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방향과 전략은 어떤 것인지, 한번 쯤 되짚어볼 시점이 아닌가 한다.
관공서는 관공서 나름의 구조를 통하여 혁신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나가겠지만, 역사적인 경험에 비춰볼 때, 관공서만의 혁신이 성공에 이른 경우는 매우 드물다. 민간이 함께 하지 않으면 혁신은 자칫 슬로건으로 끝날 공산이 높다. 이제 더 이상 정부 조직이 사회를 주도하는 시대는 아니다. 다양한 민간 자원이 함께 사회를 엮어가는 시대다. 전세계 비영리민간단체의 활동을 돈으로 환산하면 약1조 달러에 이르며, 경쟁력에서 8번째를 차지한다는 통계조사도 있지 않은가.
경주에도 다양한 민간 조직들이 있다. 시민단체, 문화단체, 노동단체, 복지단체 등 다양한 민간의 역량들이 저마다 경주 발전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이들 단체들이 때로는 한자리에 모여 의견을 결집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체로 이슈가 있을 때마다 한시적으로 모일뿐 상설적인 협의체제를 구축하고 있지는 않다. 그리고 때때로 소모적인 경쟁과 이기주의로 인한 갈등이 드러낼 때도 없지 않다.
지역 혁신을 위해서는 이런 소모적인 경쟁과 이기주의에 의한 갈등을 벗어나 민주적이고, 역동적으로 지역의 공론을 형성해나가는 협력적이고 상설적인 네트워크 구축이 필요하다.
천년전 찬란한 문화를 건설했던 신라인들이 그랬듯이, 작은 차이를 뛰어넘어 지역의 발전을 위해 대승적인 차원에서 서로 협력하고, 건전하게 공론을 이끌어낼 수 있는 상설 협의 체제, 이를테면 경주시민단체협의회 구성을 제안한다. 지역의 혁신적인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많은 민간 단체의 참여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