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다 공을 던지면 부딪친 공은 되돌아온다. 약하게도 해보고 세게도 던져보면 딱 그만큼 세기로 되돌아온다. 탁구 경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승기를 잡은 공격수는 온 힘을 다해 스매싱을 날린다. 테이블 너머 상대편 선수는 쏜살같이 날아오는 공에 라켓을 갖다 댄다.
그저 톡 하고 건드렸을 뿐인데 공은 온몸으로 던진 스매싱마냥 빠르게 넘어온다. 몸은 눈보다 덜 기민했던지 스매싱을 한 선수는 본인의 테이블 끝으로 날카롭게 떨어지는 공을 그저 쳐다볼 뿐이다. 리시브도 스매싱만큼이나 강하고 날카롭다. 탁구공은 녹색 테이블 위에서 때론 빠르게 때론 각도 있게 꺾이며 소위 ‘관계’를 그려간다.
‘애인의 눈을 4분 동안 쳐다보면 생기는 일’이라는 동영상을 본 것은 와이프 생일 선물로 뭘 살지 우연히 핸드폰을 만지작거릴 때였다. 영상에 따르면, 뉴욕주립대 아서 아론 교수는 4분 동안 서로 눈을 맞추는 것만으로도 상대에 대한 친밀도가 높아진다고 주장한다. 처음 만난 커플에서부터 닮은 사람끼리 만났는지 아님 서로 나이 들다가 보니 닮아졌는지 결혼 30년 차 커플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실험 대상자들이 서로를 응시하고 있다.
딱히 목적이나 지향점 없이 자연스레 굴러다니는 우리 눈으로 상대방을 그것도 일정 시간 동안을 바라보는 식이라면··· 하고 시작된 나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비관적으로 말이다. 상대방을 바라본다는 건 어느 정도 의식적인 행동일 테니 눈을 평상시보다 덜 깜빡이게 될 것이며,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점액이 분비되어 눈의 건조를 막을 것이며, 이걸 상대는 자신을 보고 흘리는 ‘사랑의 눈물’이라고 지레 결론짓게 되겠지 하던 나는, 동영상을 본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눈물이 터져버렸다! 남의 영상인데, 게다가 남의 상대방을 바라보는 걸 본 것뿐인데도 말이다.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가만히 울고 있는 한 실험 참가자는, 헤어스타일 같은 외형은 많이 변했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상대의 눈은 변하지 않았고, 그 눈을 쳐다보고 있자니 눈물이 나더란다. 애절한 배경음악에 취했는지 아무튼 다들 서로 앞에서 따뜻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서로는 서로의 인생에 어떤 의미인지 그 눈물만으로도 충분히 둘의 관계를 묘사하고도 남는 따뜻함이 있다. 그럼 왜 다들 눈물이었을까 하고 되짚어 봤다. 눈물은 슬플 때도 그렇지만 한없이 기쁠 때도 터져 나오는, 인간만이 가진 진한 태초의 느낌 아닐까 싶다. 본인의 눈물이 부끄러웠는지 “슬퍼서가 아니라 그냥 뭉클해서”라는 참가자도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는 “앞으로도 이렇게 지내자”는 다짐은 관계의 지속을 말하는 것일 테다.
타인, 그것도 남성의 눈을 보고도 우는, 감성적으로 아주 발달한 나는 와이프가 집에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핸드백을 낚아채며 얼른 여기 앉으라고 손을 잡아 끌 거다. 분위기상 뭔가 근사한 깜짝 선물일 거라고 기대라도 하는지 와이프는 “왜 그래?” 하며 웃는 얼굴로 앉겠지? 4분 후면 둘 다 질질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있겠지만 말이다.
지금 온 나라가 어수선하다. 이웃나라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국가 간의 관계를 임의로 뒤흔든 그 나라 총리 때문이다. 국가 간의 관계는 개인 간의 그것과 다르다. 좋다고 더 다가갈 수도, 싫다고 헤어지거나 어디 다른 데로 이사를 갈 수도 없다. 운명적으로 맺어진 관계를 보다 효과적으로 지속하기 위해서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상대가 주먹을 내밀었다고 우리도 같이 주먹을 내서는 안 된다. 관계만 악화될 뿐이다. 차라리 보자기를 내야 한다. 분노는 그걸 감싸고 무마시키는 포용을 이길 수 없으니까. 같은 이치로 보자기는 가위를 이기지 못하고, 그 가위는 또 주먹을 이기지 못한다. 절대 강자도 절대 약자도 없는 게 관계의 법칙이다.
이참에 양국이 새롭게 자리매김하는 관계가 더욱 건강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이 아닌 상대방의 눈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